공대생 10명에 4명 정도만 취업
반도체 위기에 관련 기업들 휘청
중견 협력사들 줄줄이 채용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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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이달 14일 발표한 ‘2025년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월 15~29세 취업자 수는 360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21만 8000명 감소했다. 2021년 1월(-59만7000명)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서울시내 한 대학교 채용게시판에 관련 공고가 게시돼 있다. [뉴시스] |
#. 토익 980, 조기 졸업, 차석 졸업, 반도체 관련 프로젝트 다수. 인서울 상위권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A(26)씨의 스펙이다. 다른 지원자보다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씨는 지난해 삼성전자, 하이닉스 1차 서류에서 떨어졌다. 정씨는 “경기가 안 좋다하지만 이정도로 취업 시장이 안 좋았던 건 처음”이라며 “공대 나오면 먹고 살 걱정 없다던 말은 다 옛말”이라고 토로했다. ▶관련기사 6면
취업시장에 한파가 들이닥치면서 문과보다는 상황이 낫다고 여겨지던 공대생들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졸업 후 바로 취업이 쉽지 않다보니 이른바 ‘전화기(전기전자공학과·화학공학과·기계공학과)’ 공대생들이 너도나도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전공을 살리지 않고 공기업 시험을 보는 공대생들도 목격된다.
통상 공대생들의 취업자리는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반도체 업계의 경우 재작년과 작년 불황으로 취업문이 가뜩이나 좁아졌다. 특히 경력직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는 상황 속에서 대기업 입성의 관문으로 여겨지던 중견 협력사들 마저 채용을 줄이면서 공대생들의 취업문이 더욱 좁아졌다. 인서울 상위권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년째 취업 준비 중인 B(27) 씨는 “졸업한지 꽤 지났는데 주변 친구들 10명 중 4명 정도만 취업한 것 같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주변 지인들의 지난해 서류 합격률이 10%도 안 됐다. 코로나 때보다도 취업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한다”고 설명했다. 공대 특성상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면 다른 분야에 지원하기 어려운 것도 취업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가령 반도체를 전공했다면 지난해 호황이었던 방산에 지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마다 호황인 산업군이 달라 채용 규모에 따라 취업문이 좁아지거나 넓어진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경우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주요 대학에 계약학과를 만든 경우도 있다. SK하이닉스와 연계된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나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학교 시스템반도체공학과가 대표적이다. 계약학과가 늘어나면서 공채 규모가 줄어 계약학과 졸업생이 아닌 공대생들은 회사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SK하이닉스의 ‘청년 하이포(Hy-po)’ 같은 기업 연계 수업을 듣기도 한다.
C씨는 “석유화학 쪽을 희망하는데 요새 중국의 영향으로 업계 사정이 좋지 않아 SK가스 같은 대기업은 4년에 한 번씩 신입을 뽑는다”며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 선배들한테 취업 정보를 받고 빨리 공채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준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학원으로 눈길을 돌리는 공대생들도 늘어나면서 ‘학력 인플레이션’도 일어나고 있다. 취업이 어렵자 석사 학위를 따 경쟁력을 높여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학부 졸업생과 석사 졸업생이 공채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일도 빈번하다. LG 등 대기업은 학부생과 계약을 맺어 석·박사 등록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자사 연구원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어렵다보니 공기업 등 공학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눈을 돌리는 공대생도 찾기 쉬워졌다.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