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코앞 53년 7월18일 작전중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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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폭격의 명수’로 불린 고광수 공군 대위(전쟁 당시 중위)를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전쟁기념사업회] |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6·25전쟁의 ‘폭격의 명수’ 고광수 공군 대위가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강원도 고성 351고지 폭격작전 수행을 비롯해 총 51회에 달하는 전투 출격에서 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해 폭격의 명수로 불린 고광수 대한민국 공군 대위(전쟁 당시 중위)를 3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고광수 대위는 1929년 10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 양동에서 태어났다.
1949년 6월 육군 항공사관학교(현 공군사관학교) 제1기생으로 입교한데 이어 1951년 7월 소위로 임관한 뒤 이듬해 12월 제10전투비행전대 강릉전진기지에 배치됐다.
당시 제10전투비행전대는 1952년 10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동부전선 351고지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던 국군 제15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근접항공지원 및 후방차단 작전을 전개하던 중이었다.
351고지는 강원도 고성 남쪽의 월비산으로부터 동쪽 2㎞에 자리하고 있다.
동해안으로 침투하는 적의 활동 감시에 매우 유리한 고지인 동시에 원산에서 강릉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있는 교통망의 요충지로 국군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고지였다.
제10전투비행전대 소속이었던 고광수 대위는 351고지전투 항공지원 작전 등 중동부 전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의 지상작전을 지원하며 전황을 유리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전투기 출격 시 매번 적의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해 선·후배 조종사들로부터 폭격의 명수로 인정받았다.
혁혁한 공을 세운 고광수 대위는 정전협정 체결을 불과 며칠 앞둔 1953년 7월 18일 작전을 수행하던 중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중위에서 대위로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