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넘게 깎아줘도 안 나가” 악성 미분양 11년만 최대…건설사는 도산[부동산360]

국토부 ‘2025년 1월 주택통계’ 발표
수도권 미분양 두자릿수 증가율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후 미분양은 4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한 공동주택에 분양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홍승희·박로명 기자] 다 짓고도 분양하지 못한 ‘악성 미분양’이 11년 3개월만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이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 전국을 덮친 미분양 사태가 건설사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중소건설사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는 한편, 대형 건설사까지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본사 건물을 매각하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나섰다.

‘준공 후 미분양’ 11년 3개월만 최대…일반 미분양 수도권이 견인


국토교통부가 지난 28일 발표한 ‘2025년 1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지난 달 말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2624호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7만173호) 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 소위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이 2014년 이후 약 10년 만에 2만호를 넘어섰는데, 지난 달에는 그보다도 6.5% 증가한 2만2872호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13년 10월(2만3306가구) 이후 11년 3개월 만에 최대치다.

미분양을 겪고 있는 서울 도봉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상가가 통으로 비어 있다. 김희량 기자


주목할 점은 수도권이 이번 미분양 급증을 유도했다는 점이다. 지난 달 말 수도권의 미분양 규모는 1만9748호로, 전월(1만6997호) 대비 16.2% 증가했다. 수도권의 미분양은 지난해 10월 1만3948호를 시작으로 11월 1만4494호, 12월 1만6997호를 기록하며 꾸준히 늘고 있다. 1월 말 지방 미분양은 5만2876호를 기록해 전월(5만3176호) 대비 0.6% 감소했다.

미래 공급의 선행지표로 여겨지는 준·착공도 감소하고 있다. 착공은 지난 달 말 1만178호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5.7%나 감소했다. 특히 수도권이 3985호로 전년 대비 68.4% 급감했으며, 지방도 6193호로 같은 기간 40.1% 감소했다. 준공 물량의 경우 총 4만1724호로 전년 동기 대비 13.5% 증가했지만, 수도권은 1만6032호로 전년 대비 19.4% 감소했다.

하나 둘 무너지는 건설사, 대형사도 현금확보 ‘안간힘’


대규모 미분양 사태는 고스란히 건설사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58위의 신동아건설을 시작으로, 대저건설(103위), 삼부토건(71위), 안강건설(116위)까지 올해만 벌써 네 개의 중견 건설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빚투성이’ 건설사라는 점이다. 일례로 최근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 삼부토건의 부채비율은 838%였다. 신동아건설은 429%였다. 대저건설은 115%, 안강건설은 157%에 해당했다. 적자가 거듭되자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법정 관리를 신청을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법조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회생신청을 하는 데에는 이익을 회수하지 못한 건설 현장이 많다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브랜드 ‘엘크루’ 등 건설사업을 영위하다 자본잠식 상태가 된 대우조선해양건설도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1969년 세림개발산업으로 시작한 대우조선해양건설은 지난 2022년 회생관리 신청으로 부동산개발업체 스카이아이앤디에 인수됐지만, 이 회사가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더 많은 건설사들이 이들처럼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외부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는 건설사(건설 외감기업) 중에서 이자보상배율 1 미만 업체는 2023년 기준 1089개사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2292개사 중에서 47.5%의 비중이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영업이익을 금융비용(이자비용)으로 나눠서 산출한 값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대출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얘기다.

실제 소형 건설사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며 사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폐업신고를 한 종합건설업체는 총 443곳으로 통계가 시작된 2005년 이래 가장 많았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2008년(309건)보다도 43% 증가한 수치다. 폐업신고를 한 건설업체 대부분은 폐업 신고 사유로 ‘사업 포기’를 적어냈다.

미분양 단지[연합]


대형건설사도 예외는 아니다. 시공능력 10위권 안의 대형 건설사들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롯데건설은 전날 그룹 차원의 재무구조 개선 전략에 따라 ‘잠원동 본사 부지’ 매각을 포함한 1조원 규모의 자산 유동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1980년부터 사용해 온 약 1000㎡의 본사 부지를 팔아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본사 사옥으로 사용하던 ‘D타워 돈의문’ 매각으로 약 13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DL그룹은 호텔 부문인 글래드호텔앤리조트를 매물로 내놨다. 글래드 여의도, 글래드 강남 코엑스, 메종 글래드 제주 등 3곳이 매각 대상으로, 전날 우선협상자로 싱가포르투자청이 선정됐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미분양 대책을 통해 건설사들이 경영난을 극복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정부는 지난 19일 지방 미분양 주택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양도세·취득세 면제와 같은 각종 세제 혜택 및 대출금리 인하 등 업계가 건의한 핵심안은 빠졌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국적으로 주택 미분양과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선 주택을 매수했을 때 세금을 덜 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자산 가격 상승 폭이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자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있다고 생각하면 주택을 매수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각종 세금 규제를 완화하면 얼어붙어 있는 지방 주택 시장과 건설사의 경영난을 살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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