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김판선x언노운피에스 신작
‘타임 이즈 스페이스, 스페이스 이즈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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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이즈 스페이스, 스페이스 이즈 타임’ [언노운피에스 SNS]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리스 조각상처럼 우아하고 르네상스맨처럼 진취적인 무용수 다섯 명이 높다란 구조물 위에 우두커니 존재한다. 그는 신처럼 지상을 내려다 보기도, 또 다른 조물주를 찾듯 허공을 응시하기도 한다. 아주 많은 세월을 살아낸 과거 같기도, 살아가는 현재의 숨표같기도 한 신화적 존재들. 고요하고 깊은 어둠에서도 짙은 ‘흔적’을 남긴 이들을 올려다보며 누군가 천천히 다가선다. 그는 나일까, 당신일까. 아주 가까이 접근한 마지막 걸음에 스러지고 마는 어떤 ‘존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시작된다.
6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안무가 김판선과 그가 이끄는 언노운피에스(UNKNOWNPS)의 신작 ‘타임 이즈 스페이스, 스페이스 이즈 타임(TIME IS SPACE, SPACE IS TIME)’의 첫 장면. 그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린 소멸하거나, 흔적을 남기거나, 존재 자체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며 “몸이라는 본질적 매체를 통해 시공간 속의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현대인의 삶은 직선으로 흐른다. 촘촘히 나열된 타임 스케줄을 달리는 경주마처럼, 눈앞의 오늘에 몰두한다. 어제는 존재했겠지만, 다가올 날들의 무게에 그날들은 한없이 가벼워진다. 내일을 고민하겠지만, 알 수 없는 예측불가의 미래다. ‘타임 이즈 스페이스, 스페이스 이즈 타임’은 모든 시간을 공평하게 배분한다. 그리고는 하나의 존재가 살아오고 살아가고 살아갈 날들의 유기적 과정을 그린다. 선형적 흐름의 시간을 뒤섞어 순환의 흐름을 만든다.
무대는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에선 현재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 다섯 개의 구조물 위에 올라선 과거 어느 시점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판선은 “사람일 수도, 사물일 수도, 의식일 수도 있다”고 했다.
무대는 한 편의 무용극처럼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이어진다. 어쩌면 안무가 김판선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에게서 시작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관객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김판선이 만들어내는 무대는 자신의 경험과 감각, 삶에 대한 성찰 위에 세워진다.
안무가는 이 작품의 영감을 미술관에서 찾았다. 그는 “전시장에서 몇 백 년, 몇 천 년 전의 조각과 그림을 마주할 때 다양한 감정이 일었다”며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겨진 존재의 의미를 현시점에서 바라보며 만약 이렇게 남겨진 흔적과 기억과 인물, 이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느낌을 곱씹어봤다”고 말했다. 구조물 위에서 스스로 ‘하나의 흔적’이 된 사람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난데없이 소멸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선 그는 ‘리와인드’하듯 자신의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 그것이 진짜 ‘과거’인지 ‘현재’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 하지만 안무가는 조각상처럼 거룩한 흔적이 된 무대의 첫 장면을 미래로 두고, 시계를 되돌려 그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그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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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이즈 스페이스, 스페이스 이즈 타임’ [언노운피에스 SNS] |
무용수들의 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완성되나, 공통된 일관성이 읽힌다. 모나지 않은 유연함이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으로 연결돼 각각의 인물이 살아낸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연속되는 자연스러운 동작들은 마치 플립 북(애니메이션의 일종 책장마다 연속적인 그림을 포함하고 있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면 그림이 움직이는 듯하게 보이는 효과가 있는 책)을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때론 여러 무용수가 뒤엉키고, 때론 두 사람이 완벽한 합을 이뤄 장면을 만들어내지만, 이들의 모든 움직임은 한 사람이 살아온 모든 날들의 사건들을 응축해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강렬하게 적힌 키워드의 연속인 것처럼, 1장이 드러내는 춤과 이야기는 아주 진한 흔적을 남긴 인생의 명장면들이다.
2장에 접어들면 무대는 또 달라진다. 이제 모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2장의 접근은 보다 추상적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듯 양 어깨를 짓누르는 5m에 달하는 기다란 쇠붙이는 발광하다 사라지고, 소멸하다 빛을 얻는다. 저마다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이야기엔 삶의 희노애락이 묻어난다. 누구나 마주하는 인생에서의 아픔, 좌절, 두려움, 불안, 비탄의 감정들이 중첩된다. 김판선은 전작 ‘두려움에 갇혀’(2019)에서도 매일을 살아가며 안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을 그려냈다. 무대는 그러나,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지 않는다. 안무가는 “두려움을 갖고 사는 한, 우리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고 말한다. 이 작품에선 공감과 연대가 삶을 지속하는 힘이다. 서로의 무게는 사람과 사람을 스치고, 그 무게를 기꺼이 나눈 관계는 서로를 보듬으며 존재한다. 가장 무거운 삶의 정서가 공존의 몸짓으로 빚어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소멸은 다시 생성의 시작이라는 ‘순환의 고리’를 이야기한다.
무대는 의도적으로 텅 비워냈다. 완전히 개방된 극장 무대는 화려한 치장은 덜어냈다.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듯 오로지 한 줄기 빛과 그것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과 순환을 보여준다. 텅 비워낸 무대는 소음 같은 음악이 덧입혀지기도 하고, ‘레퀴엠’(위령미사곡)을 연상케하는 소멸을 향한 위안의 곡조를 입기도 한다. ‘레퀴엠’을 입은 무대에선 고통과 좌절, 두려움의 날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무용수들의 몸짓처럼 이어지다 도미노처럼 일순 스러져 새로운 날로 일어선다.
끊임없이 ‘사유하는 무용수’가 그려놓은 세계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절망의 무게를 딛고 쏜살같이 내달려온 삶에서 우린 어떤 흔적과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 남길 수 있다면 과연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