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넷플릭스 공개 ‘폭싹 속았수다’
아이유·박보검 만남 화제…문소리·박해준도
65년 인생사 600억 원 대작으로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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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아이유, 박보검이 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 때 봄이 봄인 걸 알았더라면, 까짓거 더 진하게 살아볼걸.” (‘폭싹 속았수다’ 애순의 대사 중)
귀밑 1㎝ 남짓 짧은 단발머리에 거뭇한 얼룩을 얼굴에 묻힌 아이유(애순 역)가 울고 웃는다. “죽어도 서울 놈한테 시집 갈 거라 섬 놈은 죽어도 안된다”는 애순의 옆에 찰싹 붙은 섬 소년 박보검(관식 역)은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1960년대, 노란 유채꽃밭을 거닐던 꿈 많고 욕심 많은 ‘요망진 소녀’ 애순이 2025년 좌판에서 오징어를 파는 씩씩한 엄마가 되기까지, 누구도 아닌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 조부모 세대에 대한 헌사이자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 세대에 대한 응원가 같은 드라마”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 방언으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으로, 제주라는 공간은 특히나 상징적이다. 김 감독은 “육지로 나가고 싶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애순에게 ‘섬’은 희망이 부재한 곳”이라며 “거친 돌과 바람, 해녀의 존재와 같은 제주하면 연상되는 요소가 드라마에선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이자 제주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65년을 관통하는 긴 시간 동안 제주라는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과 이 곳에 닥친 현대사의 단면들은 드라마를 끌어가는 중심 사건이다. 6·25 이후의 피란민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4·3항쟁의 아픔을 안고 사는 지역민,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어우러진 공간이라는 점은 제주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김 감독은 “‘여명의 눈동자’ 이후 이토록 긴 시간의 흐름을 하나의 드라마 안에 담은 작품은 없었다”며 “시대의 변화가 주인공들에게 좌절과 시련을 주며 영향을 미치기에 시대성을 표현하는 것이 이 드라마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라고 했다. 600억 원의 대규모 제작비가 들어간 이유도 각 시대의 사실적 구현을 위해 미술 분야에 굉장한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특히 오픈 세트로 지어진 촬영 현장은 드라마를 보다 실감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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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준(왼쪽부터), 문소리, 아이유, 박보검이 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
이 드라마는 네 명의 배우에게도 선물 같은 작품이다. ‘김원석 감독과 임상춘 작가’의 조합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박보검은 “김원석 감독님의 섬세한 연출을 워낙 좋아한다. 대본 역시 애순과 관식의 사계절이 굉장히 예쁘고 사랑스럽게 그려졌다”며 “먼훗날 가족과 봤을 때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의 아저씨’로 김 감독과 함께 했던 아이유는 “(대본을) 읽자 마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하고 싶었다”고 했고, 박해준은 “혹시나 캐스팅이 변경될까 싶어 걱정이 될 정도로 대본이 재밌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극중 애순은 한 마디로 ‘요망진 반항아’다. 김 감독은 “임상춘 작가의 대본은 연기를 엄청 잘해야 하다”며 “애순은 새침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서글픈 마음에 펑펑 울기도 한다. 이같은 ‘요망진 알감자’ 이미지를 표현할 배우로 아이유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고 했다. ‘요망지다’는 ‘똑똑하고 야무지다’는 제주도 방언이다.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후 중년의 애순으론 단연 문소리를 떠올렸다. 엄청난 연기 내공과 문학소녀 이미지가 안성맞춤이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문소리는 “대본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울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면서도 “어린 애순이 아이유라는 이야기에 ‘이건 좀 곤란한데’, ‘아이유가 문소리가 되는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난감했다”며 웃었다.
애순으로 이어진 아이유와 문소리는 드라마에서의 연결성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을 아이유는 “애며드는 (애순에게 스며드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문소리의 집과 작업실을 오가며 애순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했고,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문소리는 “연결성을 염두해 서로의 대사를 바꿔 해보기도 하고, 아이유 얼굴에 작은 점이 있어 촬영 동안 내 얼굴에 그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이유가 커서 이런 애순이 된다는 시그널을 얼굴의 점으로 삼았다는 것이 문소리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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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해준(왼쪽부터), 문소리, 아이유, 박보검이 5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 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
애순의 곁을 단단한 바위처럼 지켜주는 관식은 박보검과 박해준으로 이어진다. 김 감독은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착한 배우라는 점이 캐스팅 기준이었다”며 “박해준은 내가 아는 가장 착한 배우로, 썰렁한 농담조차 착해서 용서가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박보검은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착한 배우’로 정평이 나있다. ‘우직하고 섬세하며 착한 배우’라는 것이 김 감독의 박보검에 대한 평이다.
드라마를 통해 아이유와 박보검은 10대 시절 처음 만난 이후 마침내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박보검은 “10대 때 광고현장에서, 20대 땐 아이유가 출연했던 드라마 ‘프로듀사’(KBS2)에 특별출연하며 만난 적이 있다”며 “동갑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알록달록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요망지게 표현한 아이유 덕분에 관식을 더 잘 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이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상대 배우와 상의하며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잘 통한 동갑 친구 박보검 덕분’이라며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유는 드라마에서 애순이면서, 후엔 애순이 낳은 딸까지 1인 2역을 하게 된다.
엄혹한 근현대사를 살아낸 빛나는 청춘과 고단한 중년을 그려갈 이 작품은 오는 7일부터 넷플릭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4편씩, 4주 동안 공개된다. 김 감독은 “‘몰아보기’와 1.25배속 보기가 대세이나 ‘폭싹 속았수다’는 그렇게 봐선 정수를 느낄 수 없다”며 “문소리 씨의 말처럼 ‘곶감을 하나씩 빼먹듯이 보면 인생 사계절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했다. 호흡이 느리다고 해서 지루하지는 않다. 정신없이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켠에 온기가 돋는다. 극중 웃음 담당은 박보검이 연기할 관식이다.
“돌이켜보면 저의 청춘은 언제나 불안했어요. 그 불안은 지금의 세대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해요. 애순과 관식은 불안한 청춘을 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견뎠고, 그 사랑과 함께 하며 이겨냈어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니, 불안은 결국 같이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땅의 모든 불안한 이들에게 손 내미는 드라마이길 바랍니다.” (김원석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