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아이폰 낸드 납품 소식에 업계 ‘발칵’
올 1월 업계 첫 294단 낸드양산 “기술 쿠데타”
삼성·SK와 격차 2년으로 줄이며 턱 밑 추격
7년전 외면받던 적층 기술, 이제 삼성도 채택
![]() |
중국 우한에 위치한 YMTC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왼쪽)과 자사 특허 기술인 ‘엑스태킹(Xtacking)’을 적용한 YMTC의 64단 낸드 |
![]() |
2022년 3월 반도체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산 낸드플래시 반도체가 애플 아이폰에 탑재될 것이란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한국·미국·일본 3국이 주도하는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중국은 그동안 변방으로 취급됐다. 그랬던 중국의 낸드플래시 제품이 애플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납품 계약까지 체결했다는 소식은 일대 ‘사건’과도 같았다.
애플이 아이폰에 들어가는 낸드플래시의 40%를 중국 업체로부터 조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도 전해졌다.
실체 없이 소문만 무성했던 중국산 낸드의 ‘진격’에 시장은 들썩였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이 점차 주류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평했다.
당시 낸드 업계를 뒤흔든 주인공은 바로 중국 YMTC(江存·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였다.
애플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키옥시아 제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YMTC의 낸드 성능이 경쟁사에 비해 떨어지지만 20% 저렴한 것도 한몫했다.
그러나 이 계약은 최종 성사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부랴부랴 YMTC를 수출통제 대상 기업으로 추가 지정하면서 애플은 YMTC 낸드를 조달하는 계획을 중단했다. YMTC의 아이폰 입성은 결과적으로 무산됐지만 이 사건은 기존 반도체 업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한·미·일 기업이 일제히 뛰어들어 공급이 넘쳐나는 낸드 시장에서 중국까지 참전하면 ‘치킨게임’만 격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YMTC의 수율(결함 없는 합격품 비율)과 공급능력은 여전히 의문이었지만 애플의 저울질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반도체 또한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2016년 ‘삼성 잡겠다’며 우한서 탄생…시진핑도 힘 실어줘=중국은 2014년 ‘3차원(D) 낸드 플래시 메모리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배하는 낸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6년 중국 칭화대가 운영하는 칭화홀딩스 산하 칭화유니그룹과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의 합작으로 비로소 YMTC가 위용을 드러냈다. 초대 회장은 칭화대 출신 자오웨이궈 칭화유니그룹 회장이 겸임했다. 그는 중국 반도체 굴기의 1세대 선봉장으로 꼽힌다.
YMTC는 곧바로 240억달러를 투자해 양쯔강이 흐르는 우한에 첫 번째 공장을 짓기로 한다. 2017년 말 완공하며 1년여 만에 생산체제를 갖췄다.
YMTC의 이름이 중국을 넘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8년이다. 시진핑 주석은 4월 YMTC의 자회사인 XMC 생산시설을 시찰하며 반도체 굴기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급기야 같은 해 8월 사이먼 양 YMTC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낸드플래시 행사 ‘플래시 메모리 서밋(FMS)’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세계 무대 데뷔전과도 같았던 이 자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YMTC의 특허 기술 ‘엑스태킹(Xtacking)’을 공개했다. 32단 낸드 양산이 임박했다는 사실도 발표했다.
훗날 삼성전자도 도입하게 되는 YMTC의 엑스태킹 기술은 당시엔 외면을 받았다. 면적당 메모리 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칩 1개를 만드는 데 2개의 웨이퍼를 사용하다보니 비용 상승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삼성전자·마이크론이 모두 90단이 넘는 낸드 양산에 나선 시기여서 YMTC의 32단 제품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1월 업계 첫 294단 양산 ‘기술 쿠데타’…삼성·SK 턱 밑까지=YMTC는 후발주자이지만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등에 업고 차근차근 로드맵을 실현하며 선도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여갔다.
2019년 9월 64단 낸드 양산을 시작한 YMTC는 다음 단계인 96단을 건너뛰고 곧바로 128단 개발에 착수했다. 그래야만 경쟁사들을 빨리 따라잡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D램의 경우 회로의 선폭을 줄여 작게 만드는 미세화 경쟁이 핵심이라면 낸드는 저장용량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높게 쌓는 것이 중요 과제로 꼽힌다.
낸드 업체들이 데이터를 저장하는 셀(cell)을 아파트처럼 쌓아 올리는 적층 경쟁을 벌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말해 누가 최고로 높이 쌓아 최대 용량을 구현하느냐가 이 싸움의 핵심이다.
YMTC는 2020년 4월 128단 제품 개발 사실을 공개하고 연말 양산을 시작한다고 발표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128단 제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만 양산에 성공한 상태였다.
YMTC는 곧이어 196단 개발에 나서려던 계획을 바꿔 200단 이상 제품으로 직행했다. 당시 200단 이상 낸드는 기술 난도가 높아 ‘꿈의 기술’로 불렸다.
2023년 10월 YMTC가 232단 낸드 양산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32단 낸드를 출시한 지 불과 5년 만이었다. 시장조사업체 욜그룹은 이를 두고 “중국 제조업체가 ‘기술 쿠데타(technological coup)’를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YMTC는 내친김에 올 1월 세계 최초로 294단 낸드까지 양산하며 다시 한 번 치고 나갔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선도 기업들을 턱 밑까지 쫓아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 격차가 다소 적은 범용 메모리 시장에서 낮은 단가에 많은 물량을 쏟아내는 전략을 활용한다면 점유율은 올리면서 단가 경쟁에서 선두 업체들을 제칠 수 있다”며 “대규모 정부 지원금으로 격차를 좁혀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외면받던 YMTC 고유 기술, 삼성도 도입…특허소송도 불사=YMTC의 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 전체 낸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2년 기준 한·미 기업들과 YMTC의 기술 격차는 약 2년으로 평가됐지만 최근 들어 더 좁혀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D램에 비해 낸드 제품의 기술 복잡도가 낮아 그만큼 격차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분석이다.
YMTC가 고속 성장의 근간으로 내세우는 것 중 하나가 앞서 설명한 엑스태킹 기술이다. 원가 부담 때문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기술은 최근 각 업체들이 400단대 낸드 개발 경쟁에 돌입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단수가 400단을 넘으면 하단부 회로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져 수율 저하가 문제로 지적된다. 그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인 YMTC의 엑스태킹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420~430단대 낸드 제품에 YMTC의 기술을 적용하기로 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욱 관심이 높아졌다. 갈수록 낸드 단수가 높아지면서 YMTC의 특허를 우회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웨이퍼에 ‘페리’(셀의 동작을 관장하는 각종 회로들로 구성)를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메모리 셀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YMTC의 엑스태킹은 메모리 셀과 페리를 각각 웨이퍼에서 따로 제조한 후 그 두 웨이퍼를 붙이는 방식이다. YMTC는 이 기술을 특허로 등록하고 64단 낸드부터 적용해왔다.
업계는 앞으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도 YMTC의 기술에 의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YMTC는 이미 2023년 11월 마이크론의 낸드 제품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캘리포니아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했다.
불과 7년 전만 하더라도 실체조차 인정받지 못했던 중국 업체가 이제는 선도 기업들도 무시할 수 없는 ‘특허 괴물’로 변신한 것이다.
다만 미국이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어 YTMC의 추격 속도도 한 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YMTC의 엑스태킹 기술을 떠받쳤던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도 미국의 수출통제 탓에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종욱 삼성증권 테크팀장은 “미국의 제재로 장비 수급이 어렵다. 특히 400단 이상의 최신 낸드를 생산하려면 도쿄일렉트론(TEL)의 극저온 식각 장비가 필수인데 미국·일본·네델란드의 삼각동맹으로 인해 YMTC의 구매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