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금융지원프로그램 확장판’
바이오·AI·로봇 등 금융 지원 확대
지분투자, 후순위보강 방식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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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전략산업 전반을 폭넓게 지원하기 위해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사진은 반도체 공정 현장 [헤럴드 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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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일 신설하기로 한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은 말하자면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의 확장판이다. 일단 규모를 기존 17조원에서 세 배가량 늘렸고 지원 대상을 첨단전략산업 전반으로 확대했다. 지원 방식도 기존 대출 중심에서 지분투자, 후순위보강 등 기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다양화했다.
그간 반도체 분야 대출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만 이뤄졌던 금융지원의 규모와 대상, 방식을 확대함으로써 반도체는 물론 그 외 이차전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방산, 로봇, 미래차 등 주요 첨단전략산업의 경쟁력을 폭넓게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보다 공격적인 첨단전략산업 지원 필요”=정부가 이번에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한 배경에는 주요국의 첨단전략산업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보다 공격적인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녹아 있다.
세계 각국은 첨단전략산업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국가 단위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 및 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일본은 경제안전보장추진법·산업경쟁력강화법, 중국은 ‘중국제조 2025’ 등을 통해 주요 첨단산업에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투자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저리대출 등을 통해 첨단전략산업을 뒷받침하고 있으나 규모가 작은 데다 대출에 한정돼 있고 금융규제상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권유이 금융위원회 산업금융과장은 “주요국의 대규모 투자로 그간 우리가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던 다수 산업에서 기술력 격차가 축소되고 있다”면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 출범을 계기로 각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자국우선주위가 더욱 강화되고 있어 수출의 근간인 첨단전략산업에 대한 지원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산업은행 본체와 회계가 분리된 기금을 신설해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일종의 ‘부스터샷’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산업 생태계 전반에 대규모로 투자·대출·보증 등 종합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 자금을 기초로 산은 본체·시중은행과 협력해 총 100조원 이상을 첨단전략산업에 집중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강기룡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이번 기금은 기초적인 투자 수요 등을 봤을 때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최대치로 파격적이고 충분한 규모”라며 “정책금융으로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생태계 전반 폭넓게 지원…방식 다양화=첨단전략산업기금은 5년간 최대 50조원 규모로 산은에 조성된다.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 중 2026~2027년분 12조7500억원을 기금으로 통합하고 37조원 내외의 재원을 새롭게 투입하는 것이다. 올해분 반도체 저리대출은 예정대로 산은 본체에서 운영한다. 대상은 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된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방산, 로봇 등과 조세특례제한법상 국가전략기술을 보유한 업종인 백신, 수소, 미래형 이동·운송수단, AI 등이다.
첨단전략산업 특화 기금이지만 도입 취지를 고려해 국가 미래전략이나 경제안보에 필요한 산업도 향후 대통령령으로 지정해 지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속에 국내 주력산업이나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지원 소요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당장 트럼프발 추가 관세가 예고된 철강이나 자동차,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로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등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강기룡 국장은 “기본적으로는 첨단전략산업에 특화된 기금으로 가겠으나 미국 신정부의 통상 공세 등을 포함해 경제안보에 대응하는 재원으로도 탄력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첨단전략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이 제고될 수 있도록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까지 규모에 제한 없이 지원할 계획이다. 재원은 기본적으로 정부보증채로 조달하고 각종 경비나 이자비용 같은 운영자금은 산은 자체재원으로 기금에 출연해 충당할 계획이다. 정부보증채는 자금소요나 채권시장 여건을 감안해 매년 국회의 정부보증동의 한도 내에서 순차 발행하는데, 연 10조원 규모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지원 방식도 차별화했다. 그간 정책금융기관이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던 지분투자, 후순위보강 등을 통해 기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합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일단 시장성 차입·저리 대출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는 지분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는 물론 특수목적법인(SPC)이나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통한 직접투자도 가능해진다. 예컨대 반도체 팹이나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야드(건조장)를 신설하는 경우 지원기업과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할 SPC를 설립하고 기금이나 기금이 출자한 펀드에서 일정 수준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또한 전력·용수 등 초장기 인프라 사업처럼 리스크(위험)가 큰 사업의 경우 기금이 후순위로 7.4% 이상 출자하는 펀드를 구성하게 되면 함께 참여하는 은행의 위험가중치(RWA)가 최대 400%에서 100%로 감축되기 때문에 산은 본체와 은행의 출자 부담을 낮추면서도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밖에 반도체 외 첨단산업에 대해서도 설비투자·연구개발(R&D) 등 자금을 국고채 수준으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은행·산은과의 공동대출(신디케이션)을 통해 전체 지원 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다만 단순 운영자금 또는 기존차입금 상환목적 자금 지원은 반도체 분야에만 한정 적용된다.
방산과 같이 글로벌 경쟁국과 조 단위의 수주 경쟁을 펼치는 첨단전략산업의 경우 구매 상대방에게 금융지원 패키지를 제공하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연내 프로그램 가동해 지원토록 속도”=첨단전략산업기금은 기금운용심의회를 설치해 운영할 계획이다. 지원대상 산업 추가나 연도별 운용 규모 등 주요 정책사항에 대해서는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기금 설립을 위해서는 산은법 개정과 함께 첫 회에 정부보증동의가 필요하다. 정부는 3월 중 신속하게 법 개정안과 보증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조속히 기금을 출범시켜 지원을 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강기룡 국장은 “첨단전략산업 지원에 대한 의지는 여야를 막론하고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기금 신설에 대해 여야 간 별다른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없다”면서 “연내 프로그램이 가동돼 실제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김은희·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