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고용’ 女사장, 그 시작은 한국전쟁[북적book적]

전쟁·전염병 이후 가족 생계 위해 나와
한국전쟁 땐 상업 종사 여성 7배 폭발
사업체 확대는 한계…가부장적 분위기 원인


[123rf]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늘 집에서만 지내야 했던 여성들이 경제인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사실 한 세기가 채 되지 않는다. 특히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 앞에 ‘여(女)’라는 생경한(?) 수식어를 붙여 만들어진 ‘여사장’이란 말이 상용화된 것도 사실 한국전쟁 이후다.

여성학 박사인 김미선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신간 ‘여사장의 탄생’을 통해 그간 한국 경제사에서도, 여성 노동사에서도 배제된 ‘여사장’들의 족적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여사장’의 등장은 일제강점기 이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이 ‘셀프(Self) 고용’의 형태로 자영업에 뛰어들며 시작됐다. 독립운동이나 국가 동원 등으로 인한 남편의 부재로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성들이 생활 전선에 나서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하게 된 것이다.

특히 가장의 빈자리가 두드러진 한국전쟁 때 여사장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실제로 한국전쟁 직전인 1949년 상업에서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8만1204명에 불과했지만, 전쟁 중인 1951년에는 59만3264명, 1952년엔 59만7257명 등 3년 새 7배 가량 급증했다. 전쟁과 남성의 동원이 자의든 타의든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때 여사장들이 전쟁통에 나와 할 수 있는 일은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로 여겨진 음식이나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난전에 좌판을 벌여놓고 전이나 국밥을 만들어 팔거나 길 모퉁이에 재봉틀을 놓고 즉석에서 옷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일부 여사장들은 예전에 배웠던 파마 등 미용 기술을 활용해 돈을 벌기도 했다. 이에 전쟁통에서도 큰돈을 번 여사장들이 제법 많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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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이 사업체를 키우고 거대 기업의 운영자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밥벌이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살림, 출산, 육아 등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받았기에 사업 확장엔 한계가 있었다. 이와 함께 집에 있어야 할 여성이 밖에 나와 ‘이윤 추구’를 하는 것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도 그들이 사업체를 키우는 데에 방해가 됐다. 그들 자신마저도 외부에서 ‘돈벌이’를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에 너그럽지 못했다.

다만 1980년대 이후엔 ‘여성 경영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긴 했다. 국내에 가족 경영으로 대변되는 재벌기업이 부상하면서 재벌가 여성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경그룹을 오랫동안 운영해 온 장영신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저자는 최근 2030 젊은 여성들의 창업이 늘어나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들은 과거의 그녀들처럼 경제적 소득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서 일자리를 갖기 보다 자아실현과 성장,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다. 노동 시장 진입 과정 및 그 이후에 이뤄지는 차별적 대우와 그 과정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 하는 사회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창업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인터넷 기반의 쇼핑몰이라는 기술적 진보가 있어 가능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여사장의 탄생/김미선/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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