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단골 메뉴는 경제 참사·좌파로 인한 대재앙”[북적book적]

신간 ‘극우, 권위주의, 독재’
독재자·권위주의 정치인의 ‘각본’ 해부
선전·부패·폭력·마초주의로 권력 유지

2021년 1월 미국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 몰려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극우 지지자들이 2020년 11월 대선 결과(트럼프의 패배)에 항의하며 의사당 난입을 시도하고 있다. [EPA/연합]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독재자는 대개 낮은 곳에서 올라와 그보다 더 낮은 구덩이로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이다. 온 세상이 그를 지켜본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공허로 뛰어든다.”

찰리 채플린은 1939년 독재자와 추종자 간의 핵심을 이 같이 포착했다. 86년이 지나 세기가 바뀌었지만 독재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새롭게 출현하고 있다. 개인의 야욕에서 출발한 그들의 집권과 몰락은 그 자신뿐 아니라 전 국민의 삶, 국가 전체, 나아가서는 세계를 망가뜨린다.

파시즘 연구 권위자인 루스 벤 기앳 뉴욕대학교 역사 및 이탈리아학 교수의 신간 ‘극우, 권위주의, 독재’는 독재자나 권위주의적 정치인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각본’에 대한 해부집이다. 독재로 가는 권력자들이 선배 정치인들의 매뉴얼을 참조해 자신의 정치에 활용할 각본을 만들어 내는 것은 20세기의 베니토 무솔리니에서 21세기의 도널드 트럼프까지 이어져 왔다.

현재 미국, 유럽을 비롯해 전세계적으로 정치의 극우화가 성행한다. 권위주의 정권뿐 아니라 민주주의 정권에서도 극우 정치인과 우파 포퓰리스트, 독재자의 출현이 흔한 현상이 됐다. 특히 트럼프 집권 2기에 들어서면서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1세기의 반(反) 민주주의적 독재주의는 아직 공통된 용어로 정립되지 않은 가운데 ‘하이브리드 정권’이나 ‘선거제 독재 국가’, ‘신독재주의’ 같은 명칭으로 불린다.

저자는 독재 통치를 1919~1945년 파시스트 시대, 1950~1990년 군사 쿠데타 시대, 1990년부터 현재까지의 신독재주의 시대의 세 시기로 나눠 17명의 독재자를 낱낱이 살핀다. 그 중 중심이 되는 8명 가운데 무아마르 카다피를 빼고는 모두 민주적 체제에서 권력을 잡았다는 점은 새삼 놀랍다.

민주 국가에서 나타난 독재 성향의 통치자들은 폭력이 아니라 유혹과 호소를 통해 집권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들은 도덕적·제도적 힘이 부족한 곳을 파고들어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데 성공한다.


통치의 도구는 네 가지다. 첫째는 ‘선전’으로, 지도자가 반대 여론에 발빠르게 대항하거나 자기가 소유하거나 친화적인 언론을 통해 자기 입장을 뿌리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들을 매수하고 순종적인 공무원을 확보하는 ‘부패’다. 셋째는 ‘폭력’이다. 협박와 위협에서 신체적 상해와 비판자 제거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넷째는 ‘마초주의’로 지도자가 국가의 구원자라는 인식을 퍼트린다.

특히 독재자들은 남성성을 과시해 정치적 정당화를 꾀하곤 한다. 1935년 무솔리니가 웃통을 벗고 밀을 타작하는 몸을 과시하고,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이 헴치크강에서 상의 탈의를 하고 낚시하는 모습을 공개한 것은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극우 정치인과 독재자들이 내세우는 명분 또한 유사하다. “쿠데타는 언제 어디서든 경제 참사 혹은 좌파로 인한 대재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자행된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게 하는 충격적인 일이나 중대한 사건은 독재적 역사를 촉진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저자는 이들 지도자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라 대부분 불안정하고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정치적 천재성보다는 교활함을 지녔고, 의외로 게을러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의 의견을 정책으로 삼곤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분할 통치’ 전술과 유토피아, 향수, 위기라는 프레임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한다.

각국의 독재자들은 서로를 참조하고 모방하며 지지하는 데서 힘을 얻는다. 이들은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면 사회를 분열시켜야 한다’, ‘스스로 언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국가의 편집장 역할을 자임한다’, ‘국가 자원 약탈에 방해되는 기후변화 관련 과학은 억압한다’, ‘TV나 소셜미디어에 나오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같은 전략을 공통적으로 구사한다.

저자는 권위주의 통치자를 뒷받침하는 추종자도 조명한다. 추종자들이 자신과 국가가 큰 대가를 치르는 것과 상관없이 독재자에게 협력하는 배경에 대해 고찰한 결과, 그들이 그를 믿는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따. 또 그들은 확신에 찬 신념가가 아니며 더이상 참과 거짓,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든 국가는 그 국가가 받아 마땅한 불한당을 얻는다.”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를 두고 전 파르티잔이 한 이 말은 오늘날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도 적용되는 섬뜩한 경고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와 혐오가 확산될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골을 더 깊이 팔지, 아니면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연대, 사랑, 대화로 반대편을 향해 손을 내밀어 새로운 파괴의 굴레를 멈출지는 국가의 주인인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극우, 권위주의, 독재/루스 벤 기앳 지음·박은선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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