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에 좋다고 소문나더니” 씨 말랐다…어쩌다 이 지경까지 [지구, 뭐래?]

그물에 걸린 바키타 돌고래.[Save the Whales 홈페이지 갈무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쓰이는 곳도 없는데, 대체 왜?”

눈 테두리에 검은 무늬가 있어 ‘바다의 판다’로 불리는 바키타 돌고래. 그런데 이 돌고래는 이제 지구 상에 10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

무자비한 어업 때문인데, 그 이유가 더 참혹하다. 서식지를 공유하고 있는 한 대형 어류가 정력·불임에 좋다는 거짓 소문이 퍼지면서 이를 잡기 위한 일이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대형 그물에 같이 바키타 돌고래가 휩쓸렸다. 그리고 이제 멸종위기다.

무자비한 해양 생태계 파괴가 주인이 없는 바다, ‘공해’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야말로 무법지대다. 심지어 공해는 전 세계 바다의 61%를 차지한다. 주인 없는 바다이니 보호를 위한 별다른 규제도 없다. 경쟁적인 파괴가 허용되는 셈.

이에 국제연합(UN)은 공해를 보호하고, 해양생물을 보전하기 위한 해양조약을 제정키로 했다. 각국의 참여도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해당 조약에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무분별한 해양 파괴…생태계 사라진다


그린피스가 지난 4일 시사회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의 한 장면.[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는 지난 4일 국회에서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 시사회를 개최했다. 빠르게 파괴되는 해양생태계를 보여주고, 글로벌 해양조약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한 목적에서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우리나라의 해녀를 비롯한 어업 종사자, 해양학자 등 바다의 변화를 느껴온 7명을 화자로 설정해, 해양 파괴의 심각성을 조명했다.

바키타 돌고래.[바키타CPR 홈페이지 갈무리]


그중에서는 전 세계에서 8마리가량 남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키타 돌고래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됐다. 바키타 돌고래는 멕시코 캘리포니아만에서 발견되는 고유종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속하는 멸종위기종에 속한다.

바키타 돌고래가 멸종 직전에 다다른 것은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대형 어류 토토아바의 부레가 정력, 불임 등에 좋다는 정보가 중국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이를 잡기 위해 설치한 그물에 걸려 폐사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부레의 효력에 대해서는 입증된 바가 없다.

부레가 제거된 채 버려진 토토아바.[Sea Shepherd 유튜브 갈무리]


국제 해양생물보호단체 시셰퍼드에 따르면 1997년 약 600마리에 달했던 바키타 돌고래는 2023년 6월 기준 8마리까지 줄었다. 어부들이 저인망 그물(바닥을 끌며 포획하는 대형 그물)을 사용하며, 토토아바보다 몸집이 더 작은 바키타 돌고래까지 속수무책으로 혼획되고 있다.

이날 그린피스가 공개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바키타 돌고래를 지키면서 어업을 이어가는 어부 호세의 사연도 담겼다. 호세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 비교적 남획이 적은 대안그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해당 지역서 대안그물을 사용하는 어선은 단 세 척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셈이다.

그린피스가 지난 4일 시사회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의 한 장면.[그린피스 제공]


이밖에도 다큐멘터리에는 제주 바다의 변화를 느낀 해녀 이유정 씨, 호주 수중사진작가 다니엘 니콜슨, 바다 보존을 위해 탐험대를 꾸린 로우라 멜러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바다가 망가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욕심이 그 원인이다.

무법지대 ‘공해’…보호조약 체결될까


유독 바다가 빠른 속도로 망가지는 원인 중 하나는 국가의 관할이 없는 무법지대 ‘공해’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공해는 전 세계 바다의 61%를 차지하지만,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주체가 없어 무분별한 남획과 파괴가 이뤄지고 있다.

그린피스가 지난 4일 시사회에서 공개한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에 출연한 제주 해녀 이유정 씨.[그린피스 제공]


대표적인 게 다양성 파괴. 모든 상어와 가오리 종의 37%는 멸종위기에 처했으며, 매년 1억마리의 상어가 포획되고 있다. 태평양 장수거북, 참다랑어 등은 최근 30년도 새 개체수 90% 이상이 줄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박에서 공해에다 기름, 플라스틱 쓰레기 등을 무분별하게 배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접적으로 지형을 파괴하며, 해양생태계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심해 채굴 또한 다수가 공해에서 추진되고 있다.

해안가에 버려진 쓰레기.[게티이미지뱅크]


유엔 생물다양성협약(CBD)의 자연보호 의무에 따라 각국은 자국 경계 내의 자연을 보호하고, 공해에서 자국민의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강제성은 없다. 자국 및 특정 기업의 욕심에 따라 바다를 파괴할 수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에 유엔은 지난 2023년 법적구속력이 있는 글로벌 해양조약인 BBNJ 협정을 합의했다. 이후 지난 5일까지 스페인, 프랑스 등 18개 국가가 비준을 완료했다. 유럽연합 또한 글로벌 해양조약의 비준 동의안을 가결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 시사회에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우리나라는 2023년 10월 해당 협정에 서명하며 해양보호에 대한 의지를 보였지만 비준은 아직 하지 않았다. 비준안은 현재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동의 절차만 남은 상황이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김연하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는 “BBNJ 협정은 공해 내 해양생물 보전을 목표로 하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최초의 조약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며 “하지만 60개국 이상의 비준이 있어야 비로소 발효될 수 있기에, 한국이 이 흐름에 서둘러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SEAGNAL(씨그널)’ 시사회에서 김연하 그린피스 해양 캠페이너가 발언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한편 오는 4월에는 부산에서 해양오염, 해양안보 등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인 아워오션컨퍼런스(OOC)가 개최된다. 이에 OOC 개최 이전에 비준에 참여해, 개최국으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린피스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OOC 개최 이전에 비준에 참여해, 비상시국 속에서 정부의 회복탄력성을 국제사회에 입증하고 대외 신뢰도를 강화해야 한다”며 “고위급 국제회의 개최국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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