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과거 유사사례서 경찰에 무죄 판단
사망에 따른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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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3시 10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한 골목에서 출동 경찰관이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지고 있다. 해당 경찰관은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했고, 실탄에 맞은 남성은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전 4시께 사망했다. [연합] |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지난달 26일 새벽 출동 경찰들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던 피의자가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기 사용의 적절성을 둘러싼 경찰 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과거 유사 사건에서 확립된 대법원 판례에서는 총을 쏜 경찰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형사상 무죄가 확정된 이 같은 사건도 사망에 따른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별도로 인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형사1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004년 3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 이모 씨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원심법원인 창원지법에 돌려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창원지법은 2004년 9월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진주경찰서 동부파출소 소속 경찰관(경사) 이씨는 2001년 11월 동료 경찰관(경장) 김모 씨와 함께 ‘A씨가 집에서 칼로 아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 상해 사건 용의자인 A씨와 몸싸움을 벌였다.
당시 진주시내 일반부 씨름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힘이 셌던 A씨는 이씨와 김씨를 밀어 넘어뜨린 뒤 김씨의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이씨는 A씨가 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공포탄 1발을 발사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A씨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동료 김씨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A씨가 김씨의 허리춤에 손을 대는 것을 보고 총을 꺼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실탄 1발을 발사했다. 흉부를 관통당한 A씨는 이후 입원한 병원에서 패혈증 등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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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경찰청 청사 [연합] |
이때도 이번 ‘광주 경찰관 피습·흉기난동범 총격 사망’ 사건처럼 총기 사용의 적절성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씨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총기를 소지한 경찰관으로서 가급적 총기 사용을 자제해야 하고, 설령 총기를 사용하더라도 상대방의 대퇴부 이하를 조준해 발사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검찰은 현장에 경찰 2명이 출동해 범인 1명을 검거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힘을 합하면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제압할 수 있었을 거라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경찰관인 이씨가 공포탄 발사 이후 근접한 거리에서 A씨의 몸을 향해 실탄을 발사한 것은 사회 통념상 총기 사용 허용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정당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씨는 1·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과는 다른 판단을 내놨다. 이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취지에서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파출소 근무자로부터 ‘술집에서 맥주병을 깨 다른 사람의 목을 찌르고 현재 집으로 도주해 칼로 아들을 위협하고 있다’라는 상황을 고지받고 현장에 도착한 이씨로서는 A씨가 칼을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태에서 칼을 소지한 것으로 믿고 있었던 A씨와 다시 몸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이씨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공포탄 1발을 발사해 경고했는데도 동료 경찰관의 몸 위에 올라탄 채 계속 폭행을 하고 있었고, 또 언제 칼을 꺼내어 공격할지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권총을 발사한 것”이라며 “이를 경찰관직무집행법상 허용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행위라거나 업무상과실치사의 죄책을 지울만한 행위라고 선뜻 단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공무원인 이씨의 행위에 관해 국가가 국가배상책임을 질 것인지는 별도의 관점에서 검토돼야 할 것”이라며 민사상 책임 여부는 형사 판결과는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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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임세준 기자 |
실제로 사망한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사건 발생 1년여 뒤인 2002년 1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창원지법 진주지원은 2003년 11월 유족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2005년 12월 국가에 “총 1억2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형사재판에서 이씨가 무죄를 받았더라도 총기 사용으로 발생한 A씨의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에 비춰볼 때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경찰관으로서 피해자 A씨의 흉기 소지 여부를 신중히 관찰한 뒤 권총을 사용할 정도로 급박한 위험성이 있는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실제로 칼을 갖고 있지 않았던 A씨를 다른 경찰관들과 협력해 저지했어야 했고, 부득이 권총을 사용하더라도 대퇴부 이하를 향해 발사하는 등 위해를 최소한도로 해야 했음에도 이씨가 그렇게 하지 않았던 점을 중대한 과실로 판단했다. 다만 사망한 A씨에게도 경찰들에게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폭력을 행사한 책임 등이 있다며 과실 비율을 60%로 산정했다. 대법원도 2008년 2월 원심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최근 발생한 광주 경찰관 피습 사건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이호영 경찰청장 직무대행도 4일 경찰청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총격 사망에 대해)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현장 출동 경찰관이) 불가피하게 총기를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며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과거 대법원 판례에 비춰볼 때 경찰관직무집행법과 총기 사용 매뉴얼을 지킨 이번 사건은 형사상 책임을 면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총격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한 만큼 유족 측이 민사상 배상책임을 제기할 여지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