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빠 생각…아이의 결핍 나와 닮아”…‘천개의 파랑’ 효정·진호 [인터뷰]

서울예술단 ‘천 개의파랑’ 두 시즌 주연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 된 뮤지컬”


‘천개의 파랑’ 진호 효정 [서울예술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내겐 당신들 모두 ‘천개의 파랑’이었음을….”

2035년 대한민국의 어느 경마장.‘찬란하다’로 시작해 ‘아름답다’로 끝맺을 때까지, 그 사이에 자리한 콜리의 세상에 새로운 이름이 적힌다. 투데이, 우연재, 우은혜, 김보경. 하나 하나의 이름은 그에게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행복이자 기쁨이며, 그리움이었다.

“하늘이 저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겠냐”고 말하는 조금 이상하고 특이한 휴머노이드. 기수로 태어났지만, 실수로 들어간 부품 탓에 더 깊은 인간의 세계를 알아버린다. 브로콜리의 색을 닮아 콜리라는 이름이 붙여지자, 마치 행복하다는 듯이 “브로콜리 그냥 콜리”라며 노래하는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로봇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됐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국 ‘천개의 파랑’(3월 7일까지ㆍ국립극장)이다.

공연을 앞두고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룹 팬타곤과 크레즐(남성 사중창단)의 멤버인 진호와 오마이걸 효정은 “초연에 이어 재연 무대에 서며 많은 점이 달라졌다. 매번 위로받고 있다”고 말했다.

효정에게 ‘천개의 파랑’은 첫 뮤지컬이다. 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에서 효정은 로봇 개발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고교생 연재 역을 맡았다.

그는 “기회가 온다면 뮤지컬은 꼭 하고 싶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자유롭게 노래하며 또 다른 행복과 짜릿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연재가 되기 위해 효정은 원작 소설을 탐독했다.‘책을 잘 읽지 않는’ 자신도 “원작 소설을 3일 만에 읽었을 만큼 술술 읽힌 이야기”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캐릭터를 들여다 보며, 다양한 감정을 연구하고 각 인물을 대할 때의 감정 변화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배우로 더 성장해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효정은 “사실 초연 땐 쑥스러움도 있었는데, (지금은) 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며 웃으며 말했다.

‘천개의 파랑’ 효정 [서울예술단 제공]


얼핏 효정과 연재는 닮은 점이 없어 보인다. 오마이걸 내에서도 ‘미소천사’로 꼽힐 만큼 늘 웃는 얼굴의 밝은 성격인 효정과 달리 연재는 말수도 적고 잘 웃지 않는다. 그런데도 효정은 ‘천개의 파랑’과의 만남은 ‘운명’ 같았다고 말한다.

“연재는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못하는 데다 가족에 대한 결핍이 있어요. 저 역시 늘 밝은 모습이지만, 연재처럼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열두 살에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8년 정도는 가족 누구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연재를 만나며 우리 가족을 돌아보게 되고, 그 아이의 결핍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효정)

공연을 보러 온 효정의 언니는 엄마 보경의 이야기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혼자가 된 엄마의 힘들고 아픈 부분을 뮤지컬을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효정은 “그래서인지 무대에 설 때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한다.

로봇연구원의 미래를 그렸지만, 아픈 가족사로 꿈을 접고 방황하는 소녀 연재과 연재 가족(엄마 보경, 언니 은혜) 삶에 변화의 동기를 주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는 진호가 맡았다.

‘천개의 파랑’ 진호 [서울예술단 제공]


진호는 무대에서 상당히 바쁘다. K-팝 업계에서도 ‘노래 잘 하는 가수’로 워낙 유명했지만, 노래와 연기에 더해 콜리를 본떠 만든 퍼펫(인형)까지 조종해야 한다. 퍼펫은 진호와 함께 퍼펫 전문가 두 사람이 함께 움직인다.

그는 “혼자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세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 많다. 모든 동작들이 군무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종종 내가 원하는 위치로 퍼펫을 움직이는 것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지금은 동기화되며 자연스러워지고 있다”고 했다.

진호 역시 콜리를 만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말수가 적은 그는 콜리를 연기한 후 주변에서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람의 말을 배우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콜리에게 물들어갔기 때문이다.

“요즘 말이 많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저도 밝아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성격이 딱딱했던 제가 사람들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편해졌으니 완전 이득이에요.” (진호)

초연부터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아이돌 선후배이자 뮤지컬계 선후배로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효정이 첫 뮤지컬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기까지 선배 진호의 도움이 컸다. 진호는 2017년 ‘올슉업’을 시작으로 ‘여신님이 보고 계셔’, ‘태양의 노래’ 등의 뮤지컬 무대에 섰다. 이 작품은 전작 ‘태양의 노래’에서 만난 김한솔 작가와의 인연 덕분에 하게 됐다.

‘천개의 파랑’ 진호 효정 [서울예술단 제공]


효정은 “낯설어 할 때마다 진호 오빠가 긴장을 많이 풀어줬다.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해라’,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줬다”며 “특히 ‘오늘 소리 왜 이렇게 좋아’라고 말해주면 굉장히 든든했다”며 웃었다. 효정의 이야기에 진호는 “자칫 평가가 될 수 있어 뮤지컬 연습 때는 배우들끼리 서로의 연기와 노래에 대해 피드백을 하지 않는데 효정이가 워낙 밝고 해맑은 모습으로 ‘이거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물어보니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의 발달이 일상으로 스며든 ‘가까운 미래’를 다룬 인간적인 SF ‘천개의 파랑’은 경주마의 고통을 이해하는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를 통해 인간과 로봇, 동물이 종을 뛰어넘는 연대와 성장의 과정을 담는다. 장애인의 이동권, 동물의 존엄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두 사람에게 ‘천개의 파랑’은 가슴 한켠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작품’이다.

“요새 힘든 일이 많은 시기인데,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MBTI 성격유형검사에서 전 극T(사고형)로 나오거든요. 그런 저도 무대에선 F(감정형)가 될 만큼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에요.” (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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