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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소포를 분류하고 있다. [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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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한국은행(한은)이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그 결과 기준금리는 연 3.00%에서 연 2.75%가 됐다. 내수 부진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한은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1.5%로 낮추고 수출 기여도를 ‘0’으로 전망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키운 불확실성 때문에 금리를 내려 내수에 숨통을 틔우려는 한은의 결정이 애처롭다. 한은은 올해 1-2차례에 걸쳐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해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고자 한다. 한은의 정책이 제대로 먹힐지 분석해 보기로 한다.
1400원대 환율이 초래하는 여러 부작용들
지난달 28일 우리나라 증시가 전일 미국 증시가 크게 내린 것을 빌미로 상당히 내렸다. 코스피는 3.39%, 코스닥은 3.49% 내려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이었다. 올 초 오른 부분은 상당히 줄었고 놀라운 것은 외국인의 선물과 현물매도 수준이다.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1조5533억원을 현물로, 코스피 200 선물을 1조8000억원 넘게 순매도(역대 5위 규모)를 던졌다. 선물과 현물을 합하면 3조 3533억원을 하루에 판 것이다. 그동안 국민연금과 당국 덕에 내려오던 환율은 치솟기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1429원으로 끝난 환율이 3일 후 28일에는 1463월까지 올랐다. 한은이 기준 금리 결정에서 환율과 경기 부양사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다시 우리는 미국과 2%포인트란 역대 최고 금리 차와 마주했다. 행여 이번 조치가 우리나라 정치 상황과 경제 불확실성과 맞물려 외국인 자금유출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달 21일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약 10% 낮아진 64.7로 발표됐다. 그럼에도 1년 후 기대인플레이션은 4.3%로 조사돼 1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1970년대 미국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을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환율상승은 수입 물가를 올려 우리 가계의 구매력을 약화시킨다. 시차가 있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화한 관세 전쟁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우리 경제에 충격을 주고 물가의 높은 상승이 재발될 가능성은 걱정거리다.
환율 기조에 대한 국내산업 전반의 우려는 점증하고 있다. 수출 증대 효과라는 긍정적 기대감보다는 원자재 수입비용 및 해외투자비 상승에 따른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1400원대 환율은 중소기업의 채산성 악화에 악영향을 준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고환율 기조는 바이오·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정유·디스플레이·섬유패션·식품산업 전망을 흐리게 한다.
반면, 조선·자동차·기계 산업의 전망에는 긍정적이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환율 예측과 대응 역량이 부족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환리스크 관리를 별도로 하지 않는다고 답한 기업은 전체의 49.3%나 됐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원·달러 환율이 1,334.6원을 웃돌면 영업손실이 발생해 최근 두 곳 중 한 곳이 환율이 급등하는 피해를 봤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달 중소기업중앙회는 1월 중소기업 360곳을 대상으로 고환율 관련 실태조사를 했다. 그 결과 조사 시점 기준 영업손실이 나기 시작하는 ‘손익분기점 환율’은 달러당 평균 1,334.6원이었다. 목표 영업이익 달성을 위한 적정 환율은 평균 1,304.0원이었다. 전례 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통화정책은 상황 변화에 맞추어 유연하고 기민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는 환율에 매우 민감하다. 환율의 추가 하락만이 외국인 투자자를 국내 주식이나 채권 시장에 안정적으로 불러 올 수 있는 길이다.
구조조정의 골든 타임 이미 놓치고 있지 않은 지를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의 저성장 고착화 우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산업도 구조조정도 없는 우리 경제의 실력이 그 정도이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과 성장 동력이 허약해졌다. 과거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1%대 성장을 위기라지만 구조조정 없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산업을 키우지 않고 기존 산업에만 의존해 왔는데 1%대는 당연한 결과란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잠재성장률 이상을 성장하려면 재정을 동원하고 금리를 낮춰야 하는데, 이 경우 가계부채가 늘고 재정건전성에도 문제가 생겨서 나라 전체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다.
한은의 연속된 기준금리 인하는 가뜩이나 위태로운 환율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가계부채와 부동산을 들썩이게 할 재료로 기능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전에도 한은의 금리인하와 관련한 논쟁은 있었다. 어려움을 겪는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차입비용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낮춰줄 필요가 있었다는 게 한은의 일관된 취지다.
기준금리가 낮아짐에 따라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이 자금 경색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얻을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청난 가계대출을 더 늘리고 좀비(한계)기업의 사업을 연명하게 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을 지연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돌아봐야 한다. 이자보상 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한계기업이 문제를 방치하면 일본의 과거 사례처럼 무서운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자보상 배율은 기업의 1년 영업이익을 그해 금융기관에 갚아야 할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한해 가용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며 국가의 산업 정책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돈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이나 기술력을 보유한 혁신 기업으로 흘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이들 기업이 성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와 투자의 선순환이 일어나 경제 성장률이 높아질 수 있다. 과거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진 것은 구조조정을 거치지 않고 경쟁력 없는 기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연명했기 때문이다. 과감히 제살 도려내기를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신산업은 없고 좀비기업만 양산하니 금리만 내리는 게 오히려 화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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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는지 검토를
유동성 함정은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통화를 주입해도 시장 이자율을 낮추지 못하거나 통화정책을 강화시킬 수 없을 때의 상황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유동성함정의 특징은 이자율이 0에 가까울 때 발생한다. 그동안 지금보다 높은 금리에서도 한국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다는 우려가 컸었다. 얼마 전 3%대의 기준 금리에서도 시중에 풀린 돈이 국내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생겨 유동성 함정 논쟁이 발생했다. 시중에 돈의 씨가 마른 현상은 없다.
한국은행은 기준 금리 말고도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장적 통화정책을 펼쳐 왔다. RP(Repurchase Agreement, 환매조건부 매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풀기도 했다. 기준 금리를 그동안 1.75%포인트 내렸지만 소비와 투자가 크게 증가했다는 느낌은 없다. 경제가 불확실하니 금리를 내린다고 선뜻 투자에 나서는 기업이 얼마나 있겠나.
은행 예금 잔액과 통화공급량이 역대 최고를 찍어도 돈이 돌지 않는 현상이 지속되니 금리인하가 과연 경제 성장률에 영향력을 주는지 회의감이 든다. 일본은 제로 금리, 나아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실시하기까지 했는데도 유동성 함정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이 들었다. 최근에서야 성장률도 오르고 물가도 오르니 일본 정부는 기뻐하며 마이너스 금리를 폐지하고 금리 인상 기조에 들어섰다.
제로 금리도 아닌 상황에서 유동성 함정이야기를 논하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 무리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성장률을 0.07%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내려가면 가계 대출의 이자 부담은 연간 3조 원가량 줄어든다. 연간 1인당 15만 4,000원가량, 자영업자의 경우 1인당 55만 원가량 줄어든다고 한다. 1인당 대출액이 더 많은 고소득층(상위 30%)이 저소득층에 비해 이자 경감 효과가 더 크다고 하는데 한계 소비 성향은 저소득층이 높다. 이자 경감 효과가 고소득층, 비취약 차주, 4050세대에서 더 높게 나타나기에 기준 금리 인하만으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지금 상황에서는 적극적 재정정책 동반해야
재정건전성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만능일 수는 없다. 윤석열 정부가 감세기조 하에 세수 결손이 는 것은 재정건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지난 정부에서 돈을 지나치게 푼 반작용 효과도 컸을 것으로 생각한다.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유동성 함정 논란이 있을 때는 재정이 함께 나서야만 한다.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인하하면 환율·물가·가계부채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현재의 저성장 구조를 타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세계경제전망(WEO)’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가 증가했다고 경고했다. 완화적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적정 수준의 추가적 재정 지원을 주문했다. 지금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금리를 인하하고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 다행히 여·야·정은 2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에는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비롯한 민생 지원, 인공지능(AI) 혁명 시대에서 첨단 미래산업에 대한 지원과 연구개발(R&D) 확산, 트럼프 정부의 관세 퍼붓기에 대한 통상 대응은 추경의 세 축이 아닐까. 민생을 살리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높이려면 현재로서는 재정정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는 감세기조, 재정확대, 금리인하, 규제 완화를 통해 자국 제조업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고자 한다. 당장은 연방준비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AI 패권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서 필요한 첨단 산업에 재무부의 재정정책으로 돈을 맞춤형으로 지원하려고 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놓인 우리에게 여야가 따로 없다. 하나 된 심정으로 이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