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배우자 상속세 폐지로 가닥 잡았지만
현행 최대 공제 30억, 자녀 세납 유예 그칠 듯
배우자 먼저, 자녀 나중 옵션 전략 잘 짜야
배우자 ‘금융자산’, 자녀 ‘부동산’ 설계 가능
공제한도 확대 규모·유산취득세 전환 등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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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상속세 체계를 현행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여야는 배우자 상속세를 폐지하는 방안에 의견 합치를 봤다.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김은희·김벼리 기자] 상속세 개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의 ‘배우자 상속세 폐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히면서다. 정부의 상속세 개편 방안도 임박했다. 최고세율 인하나 유산취득세 전환, 최대주주 할증 폐지 등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갈리지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더불어 상속세 공제한도를 확대하는 방향성에는 뜻을 모으면서 이번에는 상속세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무업계는 정치권의 적극적인 상속세 개편 논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만으로는 중산층의 세금 감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미 배우자의 상속분은 최대 30억원까지 공제해 주고 있어서다. 일괄공제 규모 등 실질적으로 공제한도가 얼마나 확대되느냐에 따라 세 부담 완화 효과는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최고세율 인하나 최대주주 할증 폐지에는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유산취득세 전환에 대해선 비교적 열려있는 만큼 과세방식 변경에 따른 세 부담 감소도 기대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최근 상속세 개편 논의에 불이 붙은 배경에는 우리나라 상속세가 지금의 경제 현실에 맞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일반상속 일괄공제 한도는 1997년, 과세표준과 최고세율은 2000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조정되지 않았다. 수십 년의 경제 성장과 자산가격 상승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과거 ‘부자의 전유물’이었던 상속세가 점차 보편화, 대중화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8일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자산은 2013년 2억6831만원에서 2023년 4억3540만원으로 10년간 약 1.6배 늘었다. 같은 기간 상속세 결정세액은 1조3630억원에서 12조2901억원으로 9배 급등했다. 우리 국민의 상속세 부담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상속세를 내는 사람도 급증했다. 상속세 과세 대상 피상속인 수는 2023년 1만9944명으로 2013년(6275명)보다 3.2배 늘었다. 지금의 상속세 틀을 도입한 2000년 당시에는 1389명만이 상속세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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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가 중산층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에는 우리 국민 자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영향이 크다. 통상 일괄공제 5억원에 배우자공제 최저 5억원을 더한 10억원을 상속세 면제 기준으로 삼는데 10억원을 넘는 주택이 많아진 것이다.
헤럴드경제가 부동산114에 의뢰해 서울 아파트 가격대별 분포 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난 7일 기준 10억원 초과 아파트는 전체 조사 대상 154만6705채의 52.5%인 81만2352채로 집계됐다. 7년여 전인 2017년 12월 말 전체 124만1559채 가운데 18.7%인 23만1917채가 10억원을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비중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서울에 아파트를 가진 사람 중 절반 이상이 잠재적 상속세 납부 대상자라는 의미이자 상속세가 고액 자산가에게만 부과되는 세금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 하나금융연구소가 지난해 40~70대 중산층 500명에게 설문한 결과 전체의 44%가 상속이 더 이상 부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속세 마련에 애를 먹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과 거주주택을 포함한 부동산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성인 400명 중 상속 경험이 있는 202명에게 상속 과정에서 어려운 점을 물어본 결과 상속세 마련을 지목한 이가 37.6%(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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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각론에서는 입장이 다르지만 상속세 부담을 낮추자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일괄공제 확대 자체에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 적어도 공제한도에 있어서는 상속세 개정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배우자 상속세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당은 당초 배우자 상속세 공제 최저 한도를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국민의힘이 아예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자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 동의할 테니 최고세율 인하와 같이 여야 대립이 첨예한 사안은 빼고 공제한도 확대 문제만 조율해 상속세법을 처리하자는 게 민주당의 의견이다.
일괄공제액을 높이는 방향에 대해서도 여야의 의견은 같다. 물론 국민의힘은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민주당은 8억원으로 각각 확대하겠다는 안을 가지고 있어 합의는 필요하다. 다만 민주당도 배우자 상속세 폐지로 배우자 공제가 없어지면 전체 공제액이 줄어들 수 있는 만큼 일괄공제액 상향 정도에 대해서는 조정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어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세무사들은 상속세 공제한도가 늘면 그만큼 세 부담이 줄겠지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 자체만으로는 실질적인 세 부담 완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법상 배우자는 최대 3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30억원을 초과하는 재산을 상속받을 경우에만 배우자 상속세 폐지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상속을 받은 배우자가 추후 사망하면 자녀가 결국 상속받게 되는데 이때 상속분 전체에 대해 일괄공제를 받기 때문에 자녀 입장에서는 부담이 여전하다. 되레 협의분할 시 전체 세액을 줄일 수 있는 혜택인 배우자 공제마저 사라지는 꼴이 돼 세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자녀 세대로의 상속이 늦춰지는 과정에서 자산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 그 역시도 세 부담을 늘리는 요인이 된다.
한 세무사는 “배우자 상속을 한 뒤 자녀에게 상속하는 경우 자녀로서는 그저 세금을 낼 시점이 조금 유예되는 것뿐”이라며 “자녀가 실질적으로 세금 감면을 받으려면 유산취득세 도입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배우자 상속세 폐지와 유산취득세 전환을 동시 추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행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이 남긴 유산 전체에 세금을 매기고 이를 상속인이 나눠 내는 유산세 방식이다. 유산취득세는 각 상속인이 받은 유산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에 누진세율 구조상 세 부담이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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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제59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낡은 상속세를 개편할 때”라며 유산취득세 개편안을 이달 중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최 대행이 격려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 |
정부는 상속세 체계를 유산취득세로 개편하는 것과 함께 자녀공제를 종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해 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 배우자 상속세를 면제하는 주요국은 자녀공제 한도를 늘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유산취득세 전환 의견에 일부 동의하나 이는 상속세 체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에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일괄공제의 경우 유산세 방식을 일부 보전하기 위한 것이기에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필요 없어지지 않겠냐”고 설명했다. 자녀공제에 대해선 현행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배우자 상속세가 폐지되면 배우자에게 먼저 재산을 상속하고 남은 배우자가 사망할 때 자녀에게 상속하는 식의 상속 설계가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배우자로서는 경제공동체로서 함께 이룩한 재산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고 넘겨받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되고 상속받은 재산 일부를 자녀에게 미리 증여하는 등 추가 절세의 기회도 얻을 수 있게 된다.
다만 자산 구성이나 상속 간격, 사전증여 여부 등에 따라 유불리가 나뉠 수 있는 만큼 잘 따져봐야 한다고 세무사들은 지적한다.
예컨대 상속받은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 자산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면 향후 자녀가 부담해야 하는 상속세 부담이 오히려 크게 늘어날 수 있다. 또한 기존 유산세 체계에서는 연대납세가 가능해 세금을 배우자가 모두 내는 방식으로 자녀 세대의 세 부담을 줄여주기도 했는데 유산취득세 구조에서는 현금 증여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이 역시도 유의해야 한다.
김종필 세무사는 “배우자에게 가야 할 몫과 자녀에게 가야 할 몫을 따져 언제 어떻게 분배하는 게 유리한지 봐야 한다”면서 “자산 가격 상승폭이 큰 부동산은 자녀에게, 생활자금으로 사용하기 용이한 예금 등 금융자산은 배우자에게 배분하는 등의 상속 설계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최고세율 인하나 최대주주 할증 폐지가 향후 상속세법 논의 과정에서 난관이 될 여지는 남아 있다. 국민의힘은 50%에 달하는 최고세율을 인하하고 20%의 최대주주 할증 과세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선 전문가의 의견도 갈린다. 박훈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상속세율이 높다”며 “물가가 오르면서 체감하는 세율이 높아지고 있어 이제는 극복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반면 안창남 월드텍스연구회 회장은 “한국의 상속세 부과 체계를 보면 비과세가 많아 실제 부담세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며 “최고세율 인하는 다른 비합리적인 부분을 먼저 고친 뒤에 검토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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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상속세 공제 완화에 공감하는 가운데 ‘배우자 상속세 폐지’에도 뜻을 모으면서 상속세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3rf] |
상속세 개편 기대감이 커지면서 세무업계에는 관련 상담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통상 상속세의 경우 가족의 사망 이후 문의가 이뤄지는 편인 데다 상속세 개편은 정치권의 단골 화두라 선거철 반짝 논의에 그치는 게 부지기수라 올 초까지만 해도 잠잠했지만, 최근 여야가 공제한도 확대 등에 어느 정도 합치를 이루면서 조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미리 알아보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신관식 우리은행 신탁부 세금전문가는 “최근 고객 상담할 때마다 상속 관련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당장 증여를 고민했던 고객도 증여보다 상속이 나을지 고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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