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사회 속 부산시민 나눔 행렬, ‘희망의 봄’ 싹 틔운다

부산사랑의열매, 16개 구·군 기부자 96명에 감사·인증패 수여


[헤럴드경제(부산)=조아서 기자] 탄핵 정국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갈등과 분열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제주항공 참사,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반얀트리 리조트 화재, 대전 초등생 피습 사건 등 굵직한 사건·사고까지 연이어 일어나 충격과 불안으로 얼룩졌다. 이런 가운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하는 부산시민들이 있어 지역사회에 ‘희망의 봄’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소박한 나눔 속 빛나는 이웃 사랑


이수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왼쪽)이 5일 기장군청에서 취약계층을 위해 쌀 50포를 기부한 김덕정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부산 기장군 해동용궁사 근처 커피 판매상 김덕정(75) 할아버지는 최근 건강 악화로 더 이상 장사를 이어가기 어려워지면서 아끼던 커피 트럭을 처분하게 됐다. 차상위계층으로 소박하게 생계를 꾸려왔던 터라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김씨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흔쾌히 ‘나눔’을 결심했다. 그는 커피를 판매해 번 돈과 트럭을 처분한 비용을 알뜰히 모아 116만 원 상당의 쌀 50포를 이웃들에게 베풀었다.

그의 사연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 회장 이수태)가 ‘희망2025나눔 캠페인’ 기간 취약계층을 위해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한 이들에게 감사패와 인증패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알려졌다. 부산사랑의열매는 시내 16개 구·군별로 법인 기부자 3명과 개인·단체 기부자 3명 총 96명을 선정해 지난 4일부터 구·군청을 방문해 수여식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장군청에서 감사패를 받은 김씨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라며 “앞으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눔을 실천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기부 씨앗, 나무로 뿌리 내릴 때까지


나이와 관계없이 기부 문화 형성에 기여한 미래 세대의 나눔 실천도 훈훈한 감동을 준다.

남구에 사는 이경한(14) 군은 올해도 1년 동안 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은 용돈 21만1000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이군의 기부는 중학생이 된 현재까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에 비치된 모금함에 따뜻한 정이 모이는 모습을 본 이군은 그날부터 용돈을 모았고, 매년 겨울이면 가게 모금함과 함께 자신의 저금통을 들고 부산사랑의열매 사무실을 찾고 있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5일 부산 동래구청을 찾아 법인 3명과 개인·단체 3명 총 6명의 기부자에게 감사패와 인증패를 전달했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제공]


경험에 그치지 않고 기부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지역아동들의 사례도 눈길을 끈다.

“우리는 씨앗 안에서 나무를 봅니다”라는 교육 철학 아래 운영되는 동래구 사직동 보금자리지역아동센터(센터장 김미숙)는 2017년부터 지역 아동들과 기부를 이어오며 아이들에게 기부 습관의 씨앗을 심어주고 있다.

센터가 매년 개최하는 ‘나눔경제시장’에서 아이들은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판매하고, 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수익금 22만1800원을 사랑의열매에 전달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로당 어르신들을 위한 ‘별빛공감음악회’에서 센터 아동들이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상금과 응원금을 더해 20만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

김 센터장은 “매년 사랑의열매를 방문하는 일이 이제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라며 “기부를 통해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세상을 바꾸는 평범한 사람들


통상 겨울철이면 활발한 모금이나 기부 운동을 기대하곤 하지만 최근 이념 간 갈등이 극에 치닫고, 각종 사건·사고와 경기 침체가 이어지자 모금업계 안팎에서는 얼어붙은 사회적 분위기가 기부 동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희망2025나눔캠페인’은 전국적으로 역대 최고액인 모금액 4886억 원을 기록하면서 이 같은 걱정을 불식시켰다. 부산 역시 목표액(108억6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은 141억7000만 원을 모아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특히 개인 기부액 비중이 늘면서 기부의 저변이 확대된 점도 큰 성과로 꼽힌다.

이처럼 단기간에 큰 규모의 성금을 모금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부산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라고 이수태 부산사랑의열매 회장은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웃을 위한 나눔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연대의 상징”이라며 “기부는 각 개인의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초석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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