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에 한 제조업 ‘벼랑끝’…반도체·철강·車까지 사정권

‘성장엔진’ 제조업 위태…“지역·자영업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반도체 생산공정 현장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우리 수출의 1등 품목인 반도체가 16개월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한국 경제를 지탱했던 제조업이 올해들어 흔들리는 모습이다. 특히 반도체는 관세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의 타깃에까지 오른 터라 이미 ‘잿빛’이 됐다.

또 철강·자동차 등 주력 업종마저 트럼프의 관세 보복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엔진’인 제조업의 위축은 관련 산업 부진과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져 성장률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9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월 반도체 생산(계절조정지수)은 전달보다 0.1% 늘며 사실상 제자리걸음 했다.

작년 10∼12월 석 달 연속 3∼4%대 높은 증가율을 기록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작년 연말 이른바 ‘물량 밀어내기’에 따른 기저효과, 설 명절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 정부 측 설명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계절적 비수기를 맞아 범용 메모리 반도체 단가가 하락하면서 업황이 주춤한 영향도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반도체 업체의 범용 메모리 저가 물량 공세와 공급 과잉도 우리나라의 주력 품목인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세를 가속하고 있다.

지난 달 반도체 수출이 1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데는 이런 요인이 작용했다. 제조업 생산지수(10,000)를 산출할 때 반도체 제조업의 가중치는 1,321.7로 다른 업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제조업 전체의 희비가 반도체 생산 증감에 따라 엇갈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반도체 생산과 수출이 모두 주춤하면서 1월 제조업 생산·출하는 각각 2.4%, 6.2% 동반 감소했다. 생산이 주춤한 상황에서 내수·수출까지 흔들리면서 출하까지 부진한 흐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전방위적인 관세·보조금 압박 영향권에 놓였다는 점은 더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연방의회에서 보조금의 근거가 되는 반도체법 폐지 방침을 밝히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는 비상등이 켜졌다.

미국의 전방위적 관세 보복으로 글로벌 IT 제품 수요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위기감에 더해 더 큰 악재가 또 덮친 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외국에 뺏겼다고 주장하면서 대만과 함께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우리에게도 강행한다면 올해 성장률 1.5%도 다행스러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미 반도체를 넘어 제조업 전반에 관세 보복을 예고한 상태다. 12일부터 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의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 부과가 예정돼있다. 한국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에도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국내 부품 업계도 긴장한 상태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 경기는 곧 제조업 경기”라며 “관세전쟁으로 불안해진 무역 환경 자체가 제조업 경기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산업의 어두운 전망은 이미 부진을 겪고 있는 나머지 제조업 업황의 발목을 잡는 추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지난 1월 반도체 제외 산업생산지수(원지수)는 1년 전보다 7.9% 감소하면서 2020년 5월(-16.5%)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전달과 비교해도 2.6%(계절조정지수) 감소했다. 작년 11월 3.7% 줄어든 데 이어 두달만에 다시 감소세다.

반도체 제외 산업생산지수는 작년 반도체 호황기에도 기준 연도(2020년) 수준인 100 주변을 맴돌았고 지난 1월에는 94.1까지 급락했다.

제조업 취업자가 반도체 호황에도 작년 7월 이후 7개월째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제조업 전반의 업황 부진과 관련이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제조업 전반의 침체한 분위기는 제조업 매출 감소 우려로 표출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1분기 제조업 경기실사지수(BSI)는 88에 그쳤다. 3분기 연속 하락세다. BSI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근접할수록 매출이 감소(악화)한다는 제조업체의 의견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경제는 주요국에 비해 제조업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 비춰보면 최근 일련의 상황은 더 우려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엔(UN)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명목 부가가치 기준)은 한국이 28.0%로 미국(10.3%), 일본(20.3%), 독일(20.4%) 등보다 높다.

제조업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 자체가 휘청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투자은행 8곳이 지난 달 말 제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55%로 한 달 사이 0.1%포인트(p) 가까이 하락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실장은 “한국 경제는 최근 경로상 더 안 좋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라며 “제조업 위기는 지역경제·자영업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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