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선우 딥바이오 대표가 5일 서울 구로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은지 기자.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꾸는 순간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삶의 궤도가 바뀐다. 결정의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다. 그 선택이 나를 나타낸다.
김선우 딥바이오 대표의 선택 기준은 “혁신적인 일을 하면서 살겠다”였다.
카이스트 전산학부를 졸업한 공대생이 네이버에 입사해 광고를 담당했을 때도, KT에서 해외투자 담당 임원을 했을 때도, 대기업을 그만두고 44살 늦깎이 나이에 국내 최초로 병리 분야에 AI를 도입한 스타트업을 시작했을 때도 한결같은 기준이었다.
김 대표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10년 전 창업을 했을 때 꽤 많은 나이였다”며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하면서 부딪혀보고, 창업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이 시대 청춘에 필요한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도전 정신”이라고 꼽은 이유다.
나이를 잊은 도전정신으로 그는 ‘세계 최초’로 병리진단 분야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한 소프트웨어를 탄생시켰다.
김 대표의 철학을 담은 딥바이오 사무실은 직원들이 만든 프라모델이 가득했다. 딥바이오 직원들만의 문화가 됐다. 칸막이 없는 사무실, 유연근무제, 재택근무까지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중시한다.
![]() |
딥바이오 사무실에 직원들이 만든 프라모델이 전시돼있다. 최은지 기자. |
그의 이력은 반전의 연속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문학소년은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과를 선택, 카이스트 전산학부에 들어갔다. 미국에서 임베디드 시스템(Embedded System)을 공부하던 중 엔지니어로 네이버에 합격했으나, 관련 부서가 사라지면서 전공과 무관한 광고 부서에서 근무했다.
KT에서는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하다 해외투자팀장으로 발탁돼 실리콘밸리에서 2년간 지냈다. 성과를 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오면 높은 직책의 타이틀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스스로를 ‘투자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몸 안에 탑재된 엔니지어라는 정체성 때문이었다.
그 무렵 카이스트에서 만든 보안 동아리가 창업하면서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동차 보안회사의 CTO로 영입돼 스타트업을 경험했고, 마침내 직접 창업하기로 했다. 스타트업을 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40대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경영도, 딥러닝도, 의료 분야도 전공 분야가 아니었다. 딥러닝을 의료 진단 분야에 접목한다는 아이디어는 번뜩였으나 이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은 어디서 얻었을까.
김 대표는 “신약 개발하는 교수님 등 바이오 전문가분들에게 ‘딥러닝으로 암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니 정말 그게 가능하냐며 깜짝 놀라했다”며 “이들의 반응으로 보고 창업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그는 이 순간을 ‘와우(WOW) 모먼트’로 꼽았다.
그렇게 2015년 딥러닝과 바이오를 합한 ‘딥바이오’라는 이름의 회사를 세웠다.
![]() |
딥바이오 사무실. 최은지 기자. |
암은 진단할 때는 조직을 얇게 썰어서 염색을 두 차례 한 뒤 유리 슬라이드에 놓고 현미경으로 보면서, 여러 자료와 대조하며 암으로 판정할 수 있는 모양이 일치하는 경우를 찾는다.
이는 숙련된 병리의사의 몫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 오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병리의사 간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딥바이오 제품은 인공지능 딥러닝을 활용해 이 오류를 대폭 줄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소수의 케이스라도 여전히 존재하는 잘못된 진단으로 인한 의료사고도 줄일 수 있다. 세계적인 현상인 병리의사 부족문제도 지원할 수 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병리진단 분야에 AI를 접목한 전립선암 중증도 분류 소프트웨어 ‘딥디엑스 프로스테이트(DeepDx Prostate)’가 탄생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등록된 전립선암 진단 관련 소프트웨어는 있지만, 암 중증도를 분류하는 제품은 없었다.
딥바이오는 지난해 로슈진단, 패쓰아이(PathAI)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들의 디지털 병리 분석 시스템에 딥바이오 솔루션이 탑재돼 병원에 공급되는 것이다. 이제 창사 10주년인 올해, 수익 창출의 원년을 맞이했다.
전공이 아닌 분야에 뛰어들어 획득한 특허수만 52개. 지난 10년간 꾸준하게 달려온 김 대표의 성장 동력은 ‘부딪히는 것’이다. MBTI ‘I’로 내성적인 김 대표는 필요하다면 업계 최고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배웠다.
김 대표는 “딥러닝 서밋에서 모 교수님께 우리 제품에 대해 설명을 했는데, 그 이야기를 옆에 있던 벤지오 교수님이 듣고, 자기 제자를 소개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요슈아 벤지오 캐나다 몬트리올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AI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 어워드’를 수상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스탠퍼드 의대와 존스홉킨스의대, 하버드 의대 연구소 등과 연구 계약을 맺고 꾸준히 기술검증을 해온 딥바이오는 영국 주요 정부 기관 및 미국의 대형 보험회사와 연구 계약을 맺었다. 3월에는 미국·캐나다 병리학회(USCAP) 연례회의와 4월 미국암연구학회(AACR) 연례회의에서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딥바이오의 최종 목표는 AI로 진단-예측-치료까지 커버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재미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