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백’ 발동시 빠른 생산 재개 가능
스마트폰·가전도 현지 선호도 높아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국내 기업의 러시아와 인접국 시장 재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인구 약 1억4380만명이라는 거대 소비시장을 가진 러시아는 우리 기업과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특히 높은 지역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러시아 시장 재개방으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말 러시아 공장을 매각하고, 현재는 시장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는 상태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분석기관인 오토스타트에 따르면 현지 중고차시장 거래량에서 기아는 34만9581대(3위), 현대차는 33만2167대(4위)로 높은 순위에 올라 있다. 현지 생산이 끊긴 이후에도 한국차에 대한 여전한 수요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신차 시장에서도 개인 딜러들이 현대차·기아 차량을 병행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이 시작된 2022년 당시 한 해 동안 현대차그룹은 기아가 6만5691대, 현대차가 5만4017대의 차량을 각각 판매하며, 현지 판매량 순위에서 각각 2위와 3위에 오른 바 있다.
현재는 중국산 차량 브랜드인 체리와 하발이 러시아 시장에서 2위와 3위에 각각 올라있지만, 현지 판매가 재개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빠른 회복세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현대차그룹은 2023년 말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1만루블(16만원)로 현지 기업AGR그룹에 매각할 당시 2년 내 재매입 가능한 ‘바이백’ 조항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토요타와 폭스바겐 등이 바이백 조항 없이 생산시설을 매각한 것과 대비된다.
또 AGR그룹의 현재 최고경영자(CEO)가 현대차 러시아법인에서 오랜시간 몸담아온 알렉세이 칼리체프 전 현대차 러시아법인 사업총괄이라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으로 꼽힌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AGR그룹은 현대차그룹 생산시설을 활용해 현대차 솔라리스 등을 생산하고, 기존에 판매된 차량을 유지 보수하는 등의 역할을 담당해 왔다”며 “이 덕분에 (현대차그룹이) 러시아 시장에 다시 진출하게 될 경우 빠른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현대차그룹의 러시아 시장 재진출은 완성차 부품업계에도 희소식이 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위아가 러시아 현지 공장에서 최대 생산량을 가동할 경우 연간 생산할 수 있는 엔진은 24만대로 매출액은 약 6000억~7500억원, 영업이익은 약 300억~375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폰·가전업계 역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는 러시아 내 마케팅 활동을 전년 대비 30% 늘렸다. 종전 협상 기대감에 조금씩 러시아 시장 재진출 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 발발 전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서남쪽 칼루가 지역에, LG전자는 루자 지역에 가전 및 TV 생산공장을 각각 운영 중이었다. 그러나 2022년 2월 전쟁이 터지며 현재까지 공장 가동을 중단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스마트폰과 가전 시장에서 각각 1위 사업자였다. 전쟁 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2%대로 폭락했고, 러시아 가전 시장에서 삼성과 LG의 빈자리는 중국, 튀르키예, 벨라루스의 중저가 가전업체들이 차지했다.
다만 두 업체 모두 현지 생산 기지를 매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것은 아니다. 전쟁이 끝나면 빠르게 현지 사업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항공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한항공이 운항해 온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의 노선은 상업적 수요가 많은 지역이다. 서방과의 경제활동 재개와 함께 특수를 누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과 티웨이·에어부산이 운항했던 블라디보스토크 노선도 운항 재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경제계는 한국과 러시아 정치권의 관계 재정립이 우리 기업에게 반드시 필요한 선결과제로 지목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기업들이) 그동안 받았던 특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외 기업이 복귀할 때 그 기준과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성우·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