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육아, 여전히 양자택일”…우울한 여성들

‘여성의 날’ 되돌아본 한국의 현실
경력단절 여성 2차 노동시장 몰려
30대 여성 ‘비혼·무자녀’ 선택 많아


한 여성 구직자가 구인게시판 앞에서 취업 공고문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일이냐 육아냐’. 이 같은 고민을 하는 여성은 여전히 많다. 올해 발간된 여성경제활동백서에 따르면 국내 경력단절 여성 규모는 2023년 기준 134만9000명에 달한다. 이들은 ▷육아’(56만7000명) ▷결혼(35만3000명) ▷임신·출산(31만명)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뒀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경력단절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실태를 되짚어봤다.

결혼 이후 독박육아에 시달리다 최근 재취업에 성공했다는 30대 이모 씨. 그가 새로 일하게 된 곳은 여성 취업자 비율이 높은 콜센터다. 이씨는 “오랜만에 사회에 나와 일하는 것만으로 기쁘다”며 “(콜센터에)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많아 말하지 않아도 아는 공감대라는 게 있다”고 했다.

경력단절 이후 산후우울증까지 심하게 앓았다는 이씨는 “‘독박육아’를 6년 이상 하다 보니 이전에 내가 어떤 걸 좋아했고 무엇을 잘했는지 새까맣게 잊게 되더라”라며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여성이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이씨와 같은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B씨 역시 경력단절 10년의 생활을 보냈다. B씨는 시부모의 만류로 출산 이후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했다. B씨는 “시부모의 압박에 경제활동을 그만 둔 과거의 나는 너무 순진했다”며 “육아에 최선을 다했는데 사회에서 아무도 몰라줬다. 오래 일을 쉬었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벽이 생겨 나를 받아주는 곳이 이곳(콜센터)밖에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경력단절 여성들은 콜센터와 같은 저임금, 계약직 등으로 고용 불안 문제가 있는 직군으로 모여든다. 2022년 민주노총 실태조사에 따르면 콜센터 종사자는 월평균 소득이 220만원이고 계약직이 45%에 달한다.

결혼·출산·육아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 차례 이상 경력단절을 겪고 나면 고임금에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으로 다시 진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재취업 의사를 가진 경력단절 여성들은 결국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에 머무르게 된다.

실제로 ‘2022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경력단절 전후 취업 직종을 비교해 살펴보면 사무직과 전문직은 각각 23.7%포인트, 5.2%포인트 줄어든 반면, 판매직과 서비스직은 각각 14.0%포인트, 12.5%포인트 늘었다.

이러한 열악한 현실을 피하고자 아예 출산을 인생계획에서 지우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년 하반기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상승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상승 추세는 해당 연령대의 유자녀 여성의 비중 감소에 밀접하게 연동됐다”고 분석했다. 30대 여성이 비혼·만혼·비출산 등을 택한 결과로 역대 가장 높은 30대 여성 경제활동 참여(2023년 6월 기준 70.1%)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연 KDI 연구위원은 “자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률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라면서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 유연근무제 등 출산육아기 근로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는 제도의 활용도를 높이는 한편, 전반적으로 가족 친화적인 근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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