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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득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교수가 IRE 시술을 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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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김만득·권준호 교수팀 |
[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수술이 힘든 췌장암에 비가역적 전기천공법(Irreversible Electroporation, IRE)이 효과적이란 연구 결과가 확인됐다.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등 치료법이 없는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김만득·권준호 교수팀은 수술이 힘든 췌장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한 IRE 치료 결과 평균 생존 기간이 최대 9개월 늘어났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번 임상 결과를 오는 30일 미국 내슈빌에서 열리는 인터벤션 영상의학회(SIR, Society of Interventional Radiology)에서 발표한다.
췌장암은 5년 생존율이 15.9%에 불과할 만큼 치명적이다.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은 전체의 20% 수준에 그친다. 대부분은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진단받는다. 주변 혈관이나 장기에 침범한 국소 진행성 췌장암은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이 진단 후 6~11개월 정도에 그친다.
이번 연구에 활용된 IRE는 미국에서 개발돼 전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국내에선 지난 2016년 세브란스병원에 처음 도입됐다. 최근엔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IRE는 암 조직 주변에 3~6개의 전극을 삽입해 고압의 전기를 흘려 암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가정용 콘센트 전압 220V의 10배 이상인 3000V의 전기를 사용한다. IRE는 열에너지를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혈관이나 조직은 거의 손상되지 않는다. 고압의 전기로 암세포의 막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크기의 구멍이 여러 개 생기고, 이 미세 구멍이 세포의 내외부 균형을 무너뜨려 세포사멸을 유도한다.
특히, 암세포가 사멸하면서 미세 구멍으로 암세포 물질이 노출되는데, 이 물질이 백신과 같은 작용을 하면서 체내 면역세포 활동도 촉진시킨다.
김만득 교수팀은 수술이 불가능한 췌장암 환자 13명을 대상으로 IRE 치료를 시행했다. 그 결과 환자의 시술 후 평균 생존 기간이 11~14개월(기존 IRE 시술)에서 최대 9개월 이상 늘어난 평균 20.7개월로 집계됐다.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은 17~27개월(기존 IRE 시술)에서 평균 43.9개월로 최대 26개월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치료는 기존에 보고된 IRE 치료에 비해 시술 효과는 극대화하고 시술 시간을 단축한 게 특징이다.
이번에 사용된 IRE 장비는 국내 의료기기업체 더스탠다드에서 개발한 EPO 시스템이다.
기존 IRE 장비의 경우 3~6개의 전극을 1.5~2㎝ 일정한 간격으로 평행하게 삽입해야 해 상당한 숙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EPO 시스템은 하나의 통으로 된 큰 전극에 3~4개의 작은 전극을 일정 간격으로 고정한 다중전극(clustered electrodes) 방식으로 한 번에 삽입 가능하다.
김만득 교수가 장비 개발에 참여해 개발팀과 아이디어 논의 끝에 나온 결과물로, 다중전극을 통해 시술 효과도 높이고 시술 시간도 50% 이상 줄일 수 있었다.
개복 대신 피부를 통해 시술하기 때문에 흉터가 작고 1주일 정도면 퇴원도 가능하다.
김만득 교수는 “종양이 다른 장기로 전이됐거나 크기가 너무 큰 경우 IRE 치료적응증이 되지 않거나 효과가 떨어진다”며 “이번 연구에선 비록 환자 수가 많지 않아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하고 항암치료 효과가 떨어지거나 항암제 부작용으로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들에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