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맥경화’ 시급한데…국회 ‘증여세 개편’ 입도 못뗐다 [내수회복 가로막는 증여세]

‘배우자 상속세 폐지’ 與野 경쟁 격화
‘배우자 한도 6억→12억’ 개정안 묻혀
吳 “육아·교육비 등 증여공제 신설 필요”
“이혼하면 세금 0원인데” 제도 지적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먹구름 낀 국회의사당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사진=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진·박자연 기자] “증여세 논의가 사라졌다.”

22대 국회 상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여당 의원의 말이다.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상속세 개편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증여세 관련 논의가 뒷전으로 밀린 현실을 꼬집은 것. 증여세 문제는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세제 개편의 한 축으로 꼽히지만 매번 ‘초부자 감세’ 비판에 부딪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최근 조기대선 가능성을 의식한 여야가 ‘배우자 상속세 폐지’ 공감대를 이룬 상황에서 증여세와 관련한 전향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에는 상속·증여세율 및 과표·공제 금액 조정안이 담겼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으로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고 계류가 장기화하고 있다. 국회 기재위에는 배우자 증여 공제한도 상향을 골자로 김은혜·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각각 대표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하 상증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두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현행 10년간 6억원인 배우자 증여 공제한도를 12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 의원안은 상속·증여세 과세표준에 물가변동분을 반영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증여 공제한도와 관련해 ▷직계존비속 5000만원→1억원 ▷미성년자 2000만원→4000만원 ▷혼인·출산 추가공제 1억원→2억원 상향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논의는 22대 국회 개원 이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상증세법 개정안은 2025년도 예산안과 함께 예산부수법안으로 묶여 지난해 말 본회의에 올랐으나, 야당 주도로 이뤄진 사상 초유의 감액 예산안 논의와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그대로 좌초됐다. 대통령 탄핵소추 여파에 올해 들어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후 여야의 초점은 상속세 개편에만 맞춰져 있다. “배우자 상속세를 전면 폐지하겠다(6일·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동의할 테니 이번에 처리하면 좋겠다(7일·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발언이 나왔지만 증여세 문제를 놓고선 진전이 없었다.


기재위 소속 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배우자 상속세 폐지 논의와 맞춰서 배우자 간 증여 문제도 손질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물밑에서 나오긴 했지만, 제대로 된 논의는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발목을 잡는 건 부자들의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자녀 증여는 부의 무상 이전 문제가 될 수 있어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라며 “증여를 합리화한다고 했을 때 납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불가피성을 띄는 상속과의 근본적인 차이도 논의를 늦추는 요소로 지목된다.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상속세의 경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부담액이 커져 살던 집을 팔아야 하는 문제들이 현장에서 생기고 있지만, 살아 생전에 이뤄지는 증여와 관련해서는 특정 사회 현상이나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유산취득세 도입 등 세제 개편 움직임, 배우자 상속세 폐지 논의와 함께 국내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증여세 논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노(老老) 상속’으로 불리는 ‘부의 고령화’를 막기 위해 증여세 완화책을 시행 중인 해외 사례도 존재한다. 지난 2월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치권의 상속세 개편 논쟁에 뛰어들며 “일본처럼 육아·교육 비용에 대한 증여 공제 신설뿐 아니라 창업·결혼에 대한 증여 공제 확대도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 시장은 “사전 증여 공제 확대는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을 촉진해 생산적 분야로 활용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관련법안을 낸 최은석 의원은 통화에서 “부부 간 이혼에 따른 부의 이전에는 세금이 붙지 않지만, 증여에는 제한이 있어 법의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며 “이혼하면 세금이 없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같이 재산을 형성한 부부가 나이 들어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재산의 절반까지는 배우자 간 세금 없이 증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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