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증건수 현황 보며 판매장려금 높이고 낮춰
“시장 경쟁 활성화…통신비 부담완화” 기대
이통3사는 일제히 반발 “법적조치 강구할 것”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이동통신 3사가 특정 회사에 번호이동 가입자가 쏠리지 않도록 7년간 ‘담합’을 벌였다가 적발돼 1000억원대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1140억원의 과징금(잠정)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업체별 과징금은 SK텔레콤 426억6200만원, KT 330억2900만원, LG유플러스 383억3천4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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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재 휴대전화 매장에 이동통신 3사 로고가 붙어 있다. [뉴시스] |
이통 3사는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가 특정 사업자에게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그 수준을 상호 조정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2015년 1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번호이동 경쟁을 피하려 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통 3사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와 함께 운영한 시장상황반이 ‘담합의 장’이 됐다고 봤다. 상황반은 이통 3사가 2014년 말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위반사항에 해당하는 과도한 판매장려금 지급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받은 후 자율규제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통 3사 담당자들은 상황반에 매일 출근하면서 각 회사의 번호이동 상황, 판매장려금 수준 등의 정보를 공유했는데, 이 과정에서 번호이동 순증가·순감소 건수를 조정하자는 합의까지 이뤄졌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번호이동 조절 수단은 각 통신사가 유통망에 지급하는 판매장려금이었다. 이 액수가 높은 곳에 번호이동 소비자가 몰린다는 점을 이용, 번호이동 순증감이 한 회사에 몰리지 않도록 조정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번호이동 순증 건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이통사는 스스로 판매장려금을 낮추고, 순감이 발생한 다른 이통사들은 함께 판매장려금을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이통사의 번호이동 순감소 건수가 커지면 판매장려금 인상을 서로 허락해주고, 순증가한 이통사들이 합의를 통해 판매장려금을 낮추는 방식 등으로 순증감을 조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KAIT 직원의 업무기록에서는 순증가폭이 큰 이통사의 영업책임자가 순감소한 이통사 책임자에게 사과한다거나, 순감소 이통사가 바로 대응이 어려우면 다른 이통사들이 판매장려금을 낮추는 등 짬짜미가 유지·실행된 정황도 포착됐다.
공정위는 담합기간 동안 해당 시장에서 가입자 유치 경쟁이 제한됐다고 지적했다. 이통3사의 일평균 번호이동 순증감 건수가 2014년 3000여건에서 2016년에는 200건 이내로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일평균 번호이동 총 건수는 2014년 2만8872건에서 2016년 1만5664건으로 45.7% 감소했고, 2022년 7210건까지 쪼그라들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 사건은 이통3사 사이에서 7년간 진행된 담합 행위를 적발한 것으로, 향후 이동통신 시장 내 경쟁을 활성화해 가계 통신비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기업 간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통 3사는 공정위의 처분에 대해 유감을 나타내며 법적조치 등을 포함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단통법 집행에 따랐을 뿐 담합은 없었다”면서 “공정위로부터 의결서를 받는대로 법적 대응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했다.
KT는 “단통법을 지키고 방통위의 규제를 따랐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규제기관 간의 규제 충돌로 당사가 불합리한 제재 처분을 받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 역시 “타사와 담합한 사실이 없다”면서 “법적조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당초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방통위의 행정 지도에서 촉발된 합의란 점이 고려되며 과징금 수준이 1000억원대에 그쳤다.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과징금은 중대성에 따라 관련 매출액의 0.5~20.0% 수준에서 부과할 수 있는데, 이번 담합 혐의에는 1%가 적용됐다.
이번 제재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경쟁당국과 주무부처 사이의 정책 ‘엇박자’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건은 방통위의 규제나 지시사항을 벗어난 담합에만 제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