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트럼프식 세계관’ [배리 아이켄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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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11월 버클리에서 한국의 헤럴드경제신문에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기고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예측하는 것은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상당 부분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그는 공언한 대로 관세를 높일 것인가? 미국은 북한과 또 한 번 외교적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제 트럼프가 취임한 지 두 달이 조금 되지 않았다. 그의 초기 행보 중 일부는 예상과 일치하지만, 일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는 미국을 오랫동안 경제적, 정치적, 지정학적 파트너로 여겨온 한국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가장 확실한 부분은,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이 안보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의 핵심 쟁점은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비용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2기 임기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 하더라도 상징적인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이미 GDP의 2.8% 수준으로, 그가 최소 기준으로 언급한 3%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에 대해 가진 강한 의심을 고려할 때, 프레드 플라이츠(Fred Fleitz)등 전직 관리들이 국가안전보장회의 (NSC)에서 말한 것처럼, 트럼프가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문제 삼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나토(NATO) 연설, 밴스 부통령의 뮌헨 안보회의 발언, 게다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가진 백악관 회담에서의 재앙적인 갈등은 논쟁의 핵심이 ‘비용 분담’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상기시켰다. 미국은 이제 더 이상 어느 나라의 방위비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사실상 ‘동맹 따위는 상관없다’(alliances be damned)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짧은 문구가 미국 역사에서 의미 있는 문장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1796년 조지 워싱턴이 고별 연설에서 사용한 표현으로, 미 정치에서 깊은 뿌리를 가진 고립주의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만큼 철저한 고립주의자는 없었다.

비록 직접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트럼프 2.0은 사실상 NATO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제 미국은 우크라이나는 물론 유럽 전 지역에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이 아무리 많은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26,000명의 주한미군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우크라이나가 빠진 지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도 더 이상 미국에게 잘 보이는 길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지금부터 국방비 지출을 대폭 확대하고 병력 규모를 늘려야 한다. 이미 폴란드와 같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GDP의 5% 수준까지 확대하고 있다. 북한과 국경을 접한 한국도 주한미군 철수 이후를 대비해 유사한 수준의 대비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푸틴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 역시 미국의 대북 접근법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는 독재자들을 존경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일종의 독재자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는 동류의 독재자인 김정은과의 만남을 반길 것이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트럼프식 세계관에서 러시아는 동맹국이므로, 북한이 러시아에 군사 장비와 병력을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북한에 희토류 금속이 풍부하지만 채굴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는 미국과 북한 간 희토류 공동 개발 펀드와 합작 투자를 제안할 수도 있다. 한국은 북한 외교 인사들이 주기적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될 미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편, 한국은 정국을 안정화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도 미국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행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심각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다르다. 그는 행정명령과 공개 발언을 통해 본인을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규정했고, 심지어 법 자체를 본인의 권력과 동일시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트럼프의 권위에 도전하는 기미가 보이면 군 수뇌부와 민간부문 내 감찰관을 숙청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남부 국경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미군을 본토에 배치했지만, 숨은 의도가 무엇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엄령에 반대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인물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바이든은 지난해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이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한국이 자유로운 선거 제도를 유지하고 민주적 절차를 복원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급격하게 변화하는 정치적 가치 및 동맹관계의 흐름과 비교하면, 트럼프의 경제 정책 발언은 부차적인 문제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관세 문제에 있어 확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자주 바뀌지만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관세 인상은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실제로 실행될 정책이라는 것이다. 한국 측 외교 인사들이 하워드 루트닉(Howard Lutnick) 미 상무장관과 아무리 자주 회담을 갖더라도,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트럼프의 발언을 살펴보면, 그가 교역국에 가장 기대하는 것은 미국 내 직접 투자로 보인다. 한국은 반도체와 철강 등 트럼프가 중요시하는 산업에서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확대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삼성은 숙련된 인력이 풍부한 국내 시장에 꾸준히 투자해 왔다. 반면 미국에서는 동일한 수준의 숙련된 노동력을 구하기 어렵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Taylor)에서 추진했던 반도체 생산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다.

또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 자금은 한정되어 있다. 미국 투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한국 내 투자는 줄어들게 되어, 국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한국 기업들은 트럼프의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대미 투자를 고려할 때 ‘집단 행동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트럼프가 관심을 가질 만큼의 영향을 미치려면 여러 한국 기업이 동시에 투자해야 하지만, 개별 기업 입장에선 다른 기업이 먼저 투자하기를 기다리는 편이 유리하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은 기업들에게 투자 대상 지역과 시기를 지시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한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독립적으로 투자 결정을 내린다.

정리하자면, 앞으로의 길은 분명히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 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그의 4년 임기 중 거의 두 달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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