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드 나하린은 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호페쉬 쉑터는 성남아트센터서 ‘꿈의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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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 [성남아트센터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춤을 추세요. 춤과 음악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듭니다.” (오하드 나하린ㆍ호페쉬 쉑터)
세계적 무용단이 즐비한 ‘현대무용 강국’ 이스라엘의 두 거장 안무가가 나란히 한국을 찾는다. 오하드 나하린(73)과 호페쉬 쉑터(49)다. 두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최고의 현대무용단’을 만들기 위해 ‘현대무용계의 전설’ 마사 그레이엄과 유대인 거부(巨富) 바체바 드 로스차일드 남작부인이 1964년 창단, 이스라엘 무용의 오늘을 이끌고 있는 바체바 무용단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한국을 찾아 각기 다른 ‘몸의 언어’로 그들의 춤의 세계를 풀어낸다. 오하드 나하린은 국내 첫 공공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과 함께 ‘데카당스’(3월 14~2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를, 호페쉬 쉑터는 ‘꿈의 극장’(3월 14~15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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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드 나하린·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삶이 힘든가요? 춤을 추세요.”
‘데카당스’의 의미를 물어도, ‘춤의 의미’를 물어도, 질문을 받은 무용 거장은 곰곰히 곱씹다 이내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춤을 추라”고.
“우리 몸이 감옥 같다고 느낀 적이 없나요? 춤은 몸이라는 감옥에서 우리를 꺼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은 춤을 춰야 하는 이유예요. ”
오하드 나하린에게 ‘춤’은 ‘해방의 도구’다. 최근 한국을 찾은 그는 기자들과 만나 “춤을 추는 순간엔 무대와 관객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오직 춤을 추는 나 자신만 있다”며 “춤을 추기 위해선 공간과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하린의 ‘무용 철학’이 투영한 작품이 바로 ‘데카당스’. 작품은 그의 바체바 무용단 예술감독 취임 1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랐다. 라틴어로 ‘10’을 의미하는 ‘데카’와 ‘춤(DANCE)’을 합성어다. 프랑스어의 ‘데카당스’(퇴폐, 일탈)와는 발음이 같다.
작품이 태어난 이후 지난 20년간 ‘데카당스’는 끊임없이 변화했다. 그간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 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 등 세계적 발레단이 ‘데카당스’를 췄다. 이번 서울시발레단 버전에선 1993~2023년에 발표한 8편을 엮었다. 애초 7편을 계획했으나,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만난 뒤 새로운 한 편 ‘사데(Sadeh)21’을 추가했다. 나하린은 “‘데카당스’는 계속 진화하고 변화한다”며 “같은 ‘데카당스’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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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드 나하린·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
그는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몸짓 언어’인 가가를 개발, 무용수들의 신체와 감각을 확장하는 훈련을 제안한다. ‘가가’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무브’를 통해서도 알려졌다. ‘데카당스’ 역시 ‘가가’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나하린은 “가가는 우리 각자가 가진 엔진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단지 신체를 강화하는 훈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위한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삶은 생존 서바이벌이 아니라, 예술이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고달프고 무겁죠. 엔진까지 나약하면 삶의 문제들은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엔진을 강화한 뒤 우리 삶의 무게를 훨씬 가볍게 느낄 수 있습니다.”
‘데카당스’의 안무자는 나하린이지만, 그것을 진화ㆍ발전시키는 주체는 무용수다. 그는 “‘데카당스’에선 내가 상상할 수 없던 것들, 상상을 넘어서는 것들이 무용수에게서 나온다”며 “그들 몸에 체화된 지식으로 새로운 것을 꺼내게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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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하드 나하린·서울시발레단 ‘데카당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
무용수들이 자신만의 몸짓을 꺼내갈 때, 나하린은 거울이 달린 연습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습과정에서의 철칙이기도 하다. 나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한 뒤 만들어가는 춤이 아니라, 오로지 감각에 의존해 본능적인 춤을 완성한다. 서울시발레단에서도 연습실 거울을 커튼으로 가리고 연습했다. “농구, 요리, 수술 등 우린 언제나 폭발적인 순간에 거울을 보지 않는다”며 “춤을 출 때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작품엔 이스라엘 전통 음악, 차차 맘보 등의 음악 위로 자유로운 움직임이 어우러진다. 공연에선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내려와 관객을 무대에 올려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결국 제게 춤은 사람들, 무용수들이 춤을 추게 할 수 있는 핑곗거리라는 생각을 하게 됐요. 제가 말하는 방식, 언어는 춤이고, 데카당스는 일종의 놀이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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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 [성남아트센터 제공] |
“인생은 마치 연극과 같아요.”
심장이 요동치는 강력한 타악, 귓가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소음 같은 전자음, 변화무쌍한 움직임, 격정적이면서도 유연하고, 손짓 발짓에 다양한 감정들이 깃든 동작의 향연…. 13명의 무용수가 세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신체적 표현, 전혀 다른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이 넘실대는 무대다. 음악, 춤, 무대 위 모든 연출까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호페쉬 쉑터는 “‘꿈의 극장’은 인간의 경험, 즉 우리가 삶을 보는 방식, 세상을 보는 방식을 비춰주는 일종의 거울”이라며 “끊임없이 변하며 본질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삶과 경험의 모호함 속에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를 탐구한다”고 말했다.
지난 20여 년간 유럽 무대에서 ‘최정상 안무가’로 군림, ‘현대 무용계의 록스타’(영국 가디언)로 불린 안무가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이 마침내 상륙한다. ‘꿈의 극장’은 지난해 파리올림픽 당시 파리시립극장에서 초연, 유럽 주요 도시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지만 아시아 무대는 한국과 중국만 선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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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무용계의 슈퍼스타 호페쉬 쉑터 [성남아트센터 제공] |
그는 장르와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가’다. 무용은 물론 연극, 영화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간다. 그가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가장 먼저 떠올리는 한 단어가 있다면 ‘마음’이다. 그는 “어떤 마음, 날것의 느낌, 누군가의 행동이나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안무가 탄생한다”며 “그것은 자신에게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감동시키는 무언가,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찾아서 무대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선보인다”고 했다.
‘꿈의 극장’도 마찬가지다. 무대는 쉑터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 꿈ㆍ욕망ㆍ열정의 근원과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그의 무대는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본질을 꿰뚫고,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 뒤 관객에게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그는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 인생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보길 기대한다”며 “우리가 자신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같다. 그것은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각자 자신과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역할을 연기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은 아이디어의 극장(Theater of ideas), 즉 꿈의 극장(Theater of dreams)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가 부여하는 아이디어, 가치를 부여하는 대상이 중요해지고 우리가 믿는 행동이 진실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합의된 진실’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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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페쉬 쉑터의 ‘꿈의 극장’ [성남아트센터 제공] |
이스라엘 출신의 그는 2002년 영국 런던에서 활동을 시작, 2007년 ‘런던 에스컬레이터’ 프로젝트가 영국 전역으로 알려지며 세계 무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2018년엔 영국제국훈장(OBE)까지 받은 그는 영국에서 현재 가장 성공한 안무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오는 6월엔 세계 최정상의 파리오페라발레단과 전막 작품을 준비 중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내 작품이 관객에게 강렬한 감정의 파도를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라며 “춤과 음악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제게 춤과 음악은 도피처이자 스스로를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춤과 음악을 통해 제 삶이나 삶의 경험을 명확하고 일관되게 마주하게 돼죠. 음악 속에 있을 때 혹은 다른 사람의 춤을 보거나 직접 춤을 출 때 저는 깨달음과 이해, 온전함을 느낍니다. 어쩌면 순수한 경험 그 자체인 유일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바로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