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노래하면 세상은 ‘전율’했다…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 전 세계를 압도한 그 이야기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휘트니 휴스턴, 1985년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데뷔 앨범 발매
‘디바(Diva)’ 칭호를 받은 최초의 대중 뮤지션…전무후무한 보컬리스트의 탄생
‘여성 보컬’ 개념을 재정립하며 신기록 써내려 가…모든 디바들의 ‘영감’이 되다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이라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콘텐츠


“And I will always love you
I will always love you”
(그리고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게요
당신을 언제까지나 사랑할게요)
– 휘트니 휴스턴,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 -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는 강력하면서도 입체적이며 거대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깊이 울려퍼지는 공명, 부드럽고 안정적인 톤, 곡을 드라마틱하게 끌어가는 컨트롤은 가히 ‘완벽’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AP]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2012년 2월 11일, ‘역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라 불리던 여가수가 베벌리힐스의 호텔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인은 코카인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 수많은 언론과 파파라치, 코미디 프로그램이 마약에 중독돼 목소리를 잃고 망가져가는 그녀를 조롱하고, 풍자하고, 웃음거리로 소비하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었다.

혹자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삶이 비극적이었다며 동정하고, 또 다른 이는 잘못된 결혼과 마약으로 망가진 그녀의 선택을 가엾게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10대부터 이어진 약물의존, 사촌에게 당한 성추행, 남편과의 불화와 가정폭력에서부터 예기치 않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얼핏 그녀의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일견 사실이다. 그러했기에, 그녀 삶의 이면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매체를 통해 조명되었고 무수히 많은 손가락질과 비난, 그리고 동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딱하고 가련한 휘트니 휴스턴의 인생을 연민의 시선으로만 읽어가야 하는 걸까.

아니라면 혹은 만약, 우리가 우리의 시선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던, 인간의 것이라 믿기 힘들 정도의 가창력과 카리스마로 세상을 전율시켰던 그녀의 노래를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녀 삶의 단편에만 치중됐던 얄팍하기 짝이 없는 측은의 시선은 힘을 잃고 뮤지션으로서의 휘트니 휴스턴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기억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이 곳에서만큼은 그녀의 ‘비극적 단면’을 논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논하지 않겠다. 이 곳에서만큼은, 하늘이 준 천부적인 감성적 능력과 그를 갈고 닦아 때로는 우아하고 섬세하게, 때로는 비장하고 강렬하게 음악으로 풀어낸 그녀의 ‘음악적 서사와 여행’만을 담아낼 생각이다.

그녀의 노래는, 그렇게 기억돼야할 가치가 있다.

“I decided long ago, never to walk in anyone’s shadow
If I fail, if I succeed, at least I’ll live as i believe
No matter what they take from me
They can’t take away my dignity”
(난 오래 전에 결정했어, 어느 누구의 그림자 속에서도 살지 않겠다고.
내가 실패를 하든, 내가 성공을 하든, 나는 내가 믿는대로 살아갈 거야.
사람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앗아가든
그 누구도 나의 위엄과 존엄만은 빼앗을 수 없어)
– 휘트니 휴스턴, ‘가장 위대한 사랑’(Greatest Love of All)


휘트니 휴스턴이 노래하는 감성과 감각의 근본에는 뮤지션 출신의 모친인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존재가 강대한 영향을 미쳤다. 씨시는 휘트니가 11살 당시 교회 청소년 가스펠 합창단에서 독창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하며 음악적 기틀을 다지게 돕는 한편, 자신이 공연하던 클럽의 무대에 휘트니를 대동하며 그녀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백업 보컬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그녀를 음악에 노출시켰다. 휘트니 휴스턴(사진 왼쪽)과 씨시 휴스턴(오른쪽). [휘트니 휴스턴 공식 인스타그램]


태어난 세상, 그곳에 음악이 있었다


“노래는 머리와 가슴, 배로 부르는 거야. 너의 정신과 마음, 근성과 배짱에서 나오는 거라고(by 씨시 휴스턴)”

휘트니 휴스턴이 노래하는 감성과 감각의 근본에는 뮤지션 출신의 모친인 씨시 휴스턴(Cissy Houston)의 존재가 강대한 영향을 미쳤다. 엘비스 프레슬리, 아레사 프랭클린 등 동시대 유명 아티스트들의 백업 보컬로 활약하는 동시에 솔로 가수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던 씨시는, 딸인 휘트니 휴스턴이 5살 무렵 처음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재능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이에 씨시는 휘트니가 전문 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음악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교육에 공을 들이기 시작하는데, 휘트니가 11살 당시 교회 청소년 가스펠 합창단에서 독창자로 활동할 수 있게 하며 음악적 기틀을 다지게 돕는 한편, 자신이 공연하던 클럽의 무대에 휘트니를 대동하며 그녀가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백업 보컬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그녀를 음악에 노출시켰다.

하지만 모친의 의도적인 노력만이 휘트니 휴스턴을 만든 건 아니었다. 사실 휘트니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 그녀가 접한 세상 그 자체가 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녀 주변의 존재들은 그녀에게 다양한 음악적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도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은 휘트니의 대모(代母)이자 오랜 멘토였으며, 그녀의 사촌누이는 리듬앤드블루스(R&B)와 소울 가수로 익히 알려진 디온 워윅(Dionne Warwick)과 디디 워윅(Dee Dee Warwick)이었다. 휘트니는 어려서부터 이들과 교류하며 음악에 대한 두려움이나 편견없이 성장할 수 있었고, 이러한 환경은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음악 안에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실제 휘트니는 인터뷰(1993, Rolling Stone)를 통해 자신에게 음악적 영향을 준 사람들로 이들 가족을 먼저 꼽은 바 있다.

그리고 1983년, 클라이브 데이비스 당시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사장은 뉴욕의 클럽에서 노래하는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에 영감을 받아 그녀와 음반 계약을 맺는다. 데이비스는 그녀에게 슈퍼스타로서의 가능성을 확신했고 약 2년간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그녀를 장기적인 글로벌 아이콘으로 발전시킬 계획을 세워 당대 최고의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앨범 제작에 참여시켰고, R&B와 주류 팝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곡들을 전략적으로 선정했다. 이후 1985년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 앨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을 발매한다.

휘트니 휴스턴은 흑인 여성 가수의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데에도 기여를 했는데, 그녀 이전까지 흑인 여가수들은 티나 터너로 대표되는 ‘강력한 소울 가수’라는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휘트니의 세련도고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흑인 여성 가수도 지적이고 엘레강스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휘트니 휴스턴 공식 인스타그램]


빌보드·그래미·기네스북까지…최초·최다·최고의 기록들


휘트니 휴스턴이 음악사에서 세운 기록들은 전 시대를 통틀어 유일무이하다. 여성 솔로 가수 최초로 데뷔 앨범에서 3개의 곡을 빌보드 차트에서 1위에 올렸으며, 두 번째 앨범 ‘휘트니’(Whitney)에서도 4개 싱글을 연속으로 1위에 등극시키며 빌보드 차트 역사상 유일하게 7개의 싱글을 연속으로 1위에 올려놓는 기록을 세운다. 또 2009년에는 그래미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을 포함해 400개 이상의 상을 수상해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인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I Will Always Love You)는 전 세계 판매량 2000만장(OST 앨범 4500만장 이상)을 돌파하며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여성 가수 싱글로 기록돼있다.

그녀의 존재는 단순한 수치적 기록 외에도 아프리카계 흑인 미국인 여성의로서의 문화적, 사회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하우 윌 아이 노우’(How Will I Know)의 뮤직비디오는 MTV에서 높은 로테이션으로 방영된 첫 흑인 여성 가수의 뮤직비디오 중 하나로, 이후 흑인 여성 가수들이 MTV에 설 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한 한편, ‘팝 시장’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최초의 흑인 여성 가수로서 당시 R&B 카테고리에 갇혀 있었던 흑인 가수들의 틀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그녀는 흑인 여성 가수의 이미지를 재정립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휘트니 휴스턴 이전까지 흑인 여가수들은 티나 터너로 대표되는 ‘강력한 소울 가수’라는 특정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휘트니의 세련되고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흑인 여성 가수도 지적이고 엘레강스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다’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이에 흑인 여성 가수들은 음악 시장에서 더욱 다양한 스타일과 이미지를 시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특히 1991년, 휘트니 휴스턴이 ‘슈퍼볼 XXV’(Super Bowl XXV)에서 미국 국가를 부른 순간은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돼 있는데, 1980년대까지 미국 사회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여전히 횡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흑인 여성인 휘트니 휴스턴이 걸프전(Gulf War)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하고 장엄하게 편곡된 애국가를 부르며 국민 단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당시 공연은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의 공연은 정식 음원으로 발매돼 음악사상 최초로 ‘애국가’가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었으며, 이후 휘트니 버전의 애국가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다시 발매되어 또 한 번 빌보드에 진입하는 등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애국가 버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
Over the land of the free and the home of the brave”
(새벽의 여명 속 황혼의 마지막 빛 속에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맞이했던 그 깃발이 보이는가.
밤을 넘어, 우리의 깃발은 여전히 그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자유의 땅과 용감한 이들의 고향 위에서)
– ‘별이 빛나는 깃발’(The Star-Spangled Banner), 미국 애국가 -


1991년 휘트니 휴스턴이 <슈퍼볼 XXV(Super Bowl XXV)>에서 애국가를 부른 순간은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로 기록돼 있는데, 흑인 여성인 휘트니 휴스턴이 걸프전(Gulf War)이 한창 진행 중이던 시기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하고 장엄하게 편곡된 애국가를 부르며 국민 단합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당시 공연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녀의 공연은 정식 음원으로 발매돼 음악사상 최초로 ‘애국가’가 빌보트 차트에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썼으며, 이후 휘트니 버전의 애국가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가 다시 발매되어 또 한 번 빌보드에 진입하는 등 ‘가장 위대한 애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유튜브 화면 캡처]


신(神)의 경지에 이른 보컬…감정과 감성과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목소리’


글로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휘트니 휴스턴의 보컬은 위대함 그 자체였다. 폭발적인 성량과 음역대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가장 깊고 섬세한 부분까지 노래로 표현하는 능력과 완벽한 가사 전달력은 당시 전 세계가 그녀에게 열광하고 전율할 수 밖에 없는 그녀만의 능력이었다.

그녀의 대표곡인 ‘아이 윌 올웨이즈 러브 유’ 속 “그리고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게요. 당신을 언제까지나 사랑할게요(And I will always love you. I will always love you)”라는 구절은 한 곡에서 세 차례 등장하는데 세 번 모두 각기 다른 감성과 테크닉으로 곡의 흐름을 완벽하게 이끈다. 도입부에서는 감미로운 가성과 부드러운 창법으로 애틋하면서도 가냘픈 감성을 표현하며 한 여자의 애달픈 마음을 고백하고, 노래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우리 둘 다 알고 있어요, 나는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We both know, I’m not what you, you need)” 직후에 등장할 때는 좀 더 강직해진 감정으로 다시 한 번 영원한 사랑을 담담하게 다짐하는 감정을 표현한다. 그리고 마침내 클라이막스에서 이 구절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강렬하고도 확신에 가득 찬 감정으로 도약한다. 여기서 휘트니 휴스턴은 이 노래를 단순히 일방적인 사랑 고백이 아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강력하고, 위대하기까지 한 감성으로 창조해낸다. 이 곡이 악보에 그려진 음표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가진 곡 해석 능력과 그를 표현해내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감성, 그리고 풍부한 성량과 음역대라는 그녀만의 능력 덕분이었다.

이 밖에도 댄스 팝부터 가스펠, R&B, 팝 발라드까지 휘트니 휴스턴은 매 곡마다 흡사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채롭고 다양한 창법과 감성을 사용했다. 언제까지고 다시, 더 강하게 터져나올 것 같은 성량과 끝을 모르는 음역대, 리드미컬한 박자 감각, 뚜렷한 가사 전달력과 음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녀 특유의 신들린 애드립은 휘트니 휴스턴이 어떤 뮤지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로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다.

한 평론가는 그녀의 전기 다큐멘터리인 <휘트니(Whitney)>를 통해 “작곡가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노래를 창조해내는 뮤지션”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닌 감정을 담은 하나의 문장이자 이야기였고, 그녀의 섬세하고 다이나믹한 표현력은 한 곡 안에서도 극적인 감정의 변화와 몰입감을 선사하는 ‘보컬의 정점’이었다. [휘트니 휴스턴 공식 인스타그램]


한 평론가는 그녀의 전기 다큐멘터리인 ‘휘트니’(Whitney)를 통해 “작곡가가 의도했던 것 이상의 노래를 창조해내는 뮤지션”이라고 표현한 바 있을 정도로, 그녀의 노래는 단순한 음의 나열이 아닌 감정을 담은 하나의 문장이자 이야기였고, 그녀의 섬세하고 다이나믹한 표현력은 한 곡 안에서도 극적인 감정의 변화와 몰입감을 선사하는 ‘보컬의 정점’이었다.

마약과 폭력에 물들어 비극적 죽음을 맞은 뮤지션으로서 그녀를 바라보는 동정적 시선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만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존재를 바라보기엔 그녀가 만들어낸 음악적 가치가 너무 크다.

현대 대중음악 보컬리스트의 기준이 된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는, 감정과 멜로디를 조율한 정교한 설계였으며 듣는 이의 마음과 영혼을 연결했다. 그녀는 단순히 곡의 구조를 따라가지 않고 곡의 감정을 대폭 확장시켰으며 이는 그녀의 보컬이 단순한 연주 도구가 아닌 ‘표현의 주제’로 존재할 수 있었음을 증명한다.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그의 사생활이 아닌 음악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2009년 7월, 9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을 당시의 휘트니 휴스턴. [휘트니 휴스턴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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