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복’ 말하지만 헌재 압박 몰두
2017년엔 정치권 구두로 합의
“장외집회, 국민에 지대한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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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세(위쪽 사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와 최고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윤 대통령 파면’과 ‘윤 대통령 복귀(기각 또는 각하)’로 나뉜 목소리가 각각 더 선명해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도 매일 거리로 나서면서 장외 여론전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향후 헌재 판단에 승복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여야 모두 헌재를 향한 압박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소추위원단으로 참여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승복 선언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속을 하면 뭐하나”라며 “(국민의힘은) 안 지키는 사람들인데”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공동 승복 선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믿을 걸 믿어야 한다”며 “총선에 참패했으면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여러 지도부, 현 지도부를 포함해 중진이라고 하는 분들 또 대선에 나오고자 하는 분들이 국정 기조를 바꿔야 된다고 대통령을 설득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안 했잖나”라고 했다. 이어 “심지어 지금 내란 행위를 동조하고 부화뇌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향해 “(지난) 대선 때부터 (윤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해서, 같은 검사 출신이고 그래서 지금 원내대표가 됐다”며 “그럴수록 대통령을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말렸어야 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승복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 똑똑히 TV로 정확히 봤던 그 생생한 증거들에 대해 최소한 인정하는 것이 승복의 전제”라고 언급했다.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대식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에 출연해 “옛날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이) 있었잖나. 기각이 있을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니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당시에) 승복할 수 없다라는 그런 메시지를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상황을 보면 여야가 공동으로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승복을 하자 하는 공동 기자회견이나 입장문을 발표해서 국민들을 안심시키자(는 것)”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요즘 민주당이 하는 걸 보면 굉장히 성급해졌다”며 “자기네들도 지금 굉장한 불안감이 있다고 보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권성동 원내대표가 승복의 메시지를 던졌지 않나 본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직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되던 8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진행 중이던 2017년의 경우, 변론이 한창 이어지던 같은 해 2월 13일 여야가 ‘어떤 결정이 나오든 결과에 승복한다’는 취지의 구두 합의를 도출했다.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오찬회동을 통해 의견을 모았었다.
하지만 이번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여야가 각각 승복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승복을 상대방에 대한 또 다른 공세 재료로 활용하고 있어 탄핵심판 선고 후 분열 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모양새다.
전날(16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당의 공식 입장은 헌재 판단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이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명확하게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은 결국 헌재를 겁박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반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부활절 준비 2차 기도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승복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면서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하고 헌재 파괴를 주장했던 의원들도 징계할 것인지 (권 원내대표에게) 물어봐야겠다”고 날을 세웠다.
정작 여야 모두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장외 여론전을 강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시작한 ‘윤 대통령 파면 촉구 도보행진’을 이날도 계획했고, 국민의힘은 의원들이 헌재 정문 앞에서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는 중이다.
여야의 장외투쟁이 본격화된 이후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 신뢰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0~12일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을 ‘신뢰한다’(매우+신뢰하는 편)는 긍정 인식은 51%, ‘신뢰하지 않는다’(전혀+신뢰하지 않는 편)는 부정 인식은 45%로 집계됐다. 부정 인식은 직전 조사(3월 1주차)보다 5%포인트(p) 올랐고, 긍정 인식은 3%p 하락했다.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p. 국내 통신 3사가 제공하는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응답률은 21.1%.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국회의원들의 장외집회는 국민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라며 “거리에 나온 극우 유튜버 등을 격려하니 서부지법도 습격하게 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법부의 판단은 일단 존중해야 한다. 사법부가 사법부의 일을 할 수 있게끔 믿어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국회의원은 국민들에게 우리는 국회로 가서 민생을 살리는 역할을 할 테니까 집으로 돌아가시라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안대용·양근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