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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키 17 스틸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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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으로 신장 수치나 하루 소모 칼로리, 평균 수명 같은 여러 기준을 분석한다고 하자. 1800년경 이전까지 인구의 99%를 구성했던 하층민의 생활은 일절 진보한 것이 없다면 믿을 것인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나 사실이다. 인류는 과학기술로 최근 몇백 년에 큰 발전을 이룬 것이다. 자원과 환경의 회복은 산술급수적으로 이뤄지는데, 성장과 남용을 위한 파괴는 기하급수적으로 이뤄진다면 과장일까? 환경론자들은 과거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이 이런 면에서는 유효하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기차제조자 위포드는 제한된 자원에 맞는 적정 수의 인간을 셈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101칸에 불과한 기차 안에서 살아간다. 영화 속 계급 사회를 말하는 대사가 귓전을 울린다.
“우리는 모자고 너희는 신발이다. 신발을 머리에 쓰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너희는 그저 꼬리 칸에서만 지내야 한다.”
우리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앞 칸에 탑승할 자격이 있다.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질 것이란 조사는 차고 넘친다.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한 비관론은 선진국일수록 뚜렷하다. 문득 ‘가시나무새’란 노래 속에 ‘나’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여러 번민으로 편할 날이 없는 청년층은 자신들을 배려하는 경제 정책이 없다고 푸념한 지 오래다. 노래 가사처럼 자신을 규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존재로 비친다.
지난해 전 연령에 걸쳐 임금 상승률이 가장 낮은 나이층은 20대다.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정체되었으니 실질 구매력은 줄어들었다. 전설의 가시나무새는 단 한 번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 가시를 찾아 헤맨다. 찾아낸 가시에 스스로 몸을 찔려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당신이 가난하고 계층 사다리 최하층에 있는데 죽었다가 계속 다시 살아나 지배계층의 용도로만 쓰이고 프린터로 재생되어 죽지도 못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을 영화한 작품이다. 2050년대 어느 날. 친구 ‘티모’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쫄딱 망해 거액의 빚을 진 미키. 사채업자를 피해 우주 식민지 탐험 프로젝트에 자원한 그는 방사능 피폭 같은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다. 죽으면 생체 프린팅으로 무한정 되살아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인 그에게 존엄은 애초에 없고 사치스러운 말이다. 이름 뒤에 붙은 숫자는 지금껏 재생된 횟수다. 돈도 기술도 없어 담보 가치가 하찮은 목숨이라 그의 생명은 경시된다.
소설과 영화는 인류 문명이 다른 우주 행성으로 개척단을 보내고 그곳을 테라포밍(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 및 위성, 기타 천체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비슷하게 바꾸어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하여 인류의 새로운 터전으로 만드는 과정을 소재로 한다. 영화 속 일행은 4년 반의 항해 끝에 얼음 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하고 미키는 17번이나 복제되어 미키 17이 되어 있다.
니플하임에서 미키 17은 팀원들과 얼음 동굴 탐사를 하다가 기괴한 외계 생명체 ‘크리퍼’와 만난다. 친구 티모는 비행기 조종사인데 빙하 틈에 빠진 미키 17이 죽었다고 판단된다고 본부에 보고한다. 미키 17은 크리퍼들이 빙하 밖으로 미키를 밀어주어 기적적으로 생환하나 미키 18이 탄생해 여자친구 ‘나샤’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한다. 셋은 생존을 위해 이를 비밀로 하자고 한다. 두 개의 육체에 원본은 하나일 때 둘의 존재가 하나인 여성은 둘을 모두 가질 수 있어 좋을 수도 있겠다. 쌍둥이 아닌 쌍둥이가 된 미키 17과 미키 18을 보며 사랑을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메커니즘을 생각해 본다.
여기 항상 무엇이든지 공평하게 배분받기를 원하는 쌍둥이 두 아들이 있다고 치자. 한 아들에게 케이크를 반으로 자르도록 하고, 반으로 잘려진 케이크 중 하나를 다른 아들이 고르도록 규칙을 정하자. 자르는 아들은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케이크를 정확하게 자를 수밖에 없다. 다른 아들은 자신이 직접 케이크를 자르지 않더라도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 그 결과 두 아들 모두 불만 없이 제 몫을 가져간다. 솔로몬에 버금가는 지혜로운 의사 결정 아닌가? 사실 어머니가 직접 공정하게 케이크를 직접 자를 수도 있다. 경제학은 이처럼 공평하고 효율적인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시장과 정치의 설계를 존중한다. 메커니즘 디자인을 연구한 경제학자들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한 이유도 정책 설계자가 구성원의 의사를 잘 반영하는 기제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이다. 나샤는 비정한 세상에서도 사랑이 인간을 바꾸고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메커니즘 디자인도 그런 신뢰, 포옹, 타협에 입각하여 정책이 설계되어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의 정치경제학은 영화처럼 사악하고 불평등을 조장한다. 정치인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 부패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우주 식민지 개척 계획을 이끄는 지도자이자 부패한 정치가 케네스 마셜과 그의 아내 일파 마셜. 그들의 광기 어린 기행은 역겨운 냄새로 진동한다. 살기 위해 그들을 옹호해야만 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세계적으로 프랑스처럼 정치 때문에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물가 인상으로 국민 삶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바쁘다. 케네스 마셜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한 인물이다. 이후 극단 종교 단체의 후원을 받아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프로젝트를 이끌게 된다. 과장된 몸짓으로 종교 지도자처럼 행세하는 그는 통치를 가장한 수탈을 행한다. 많은 나라의 정치 수장을 생각해 보면 모두가 좋은 인물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케네스 마샬은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매우 부족하다. 이 와중에 영부인의 입과 귀는 매우 중요하다. 짧은 연설문을 못 외워 영부인이 옆에서 읽어준다. 부하의 간단한 질문에 제대로 답변 못하니 영부인이 나선다. 사소한 것도 영부인의 호령이 떨어져야 결정한다니 세상에도 이런 지도자를 국민이 어떻게 믿을 것인가. 대중 앞에 비치는 건 케네스 마샬이지만, 행성 개척단의 전권을 결정하고 명령하는 건 영부인이다.
어느 날 케네스는 행성에서 구해온 바위를 잘라 기념식을 거행하는데 바위 안에서 새끼 크리퍼 두 마리가 튀어나온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총에 맞아 몸이 토막 나 죽고 나머지는 생포당한다. 그러던 와중에 미키 18은 케네스를 암살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멀티플이 되면 영원히 잠들 수밖에 없는 규칙이 있다. 미키 17, 미키 18, 나샤는 수감이 되고 슬픔에 잠긴다.
이윽고 엄청나게 많은 크리퍼들이 우주선을 향해 공격 대세를 갖춘다. 과학자에게 실험당하는 아기 크리퍼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우주선에 탄 지구인을 몰살시키려는 것이다. 케네스 함장은 두 미키에게 폭탄 조끼를 입히고 크리퍼의 꼬리를 먼저 100개 가져오는 쪽만 산다는 미션을 가장한 협박을 한다. 두 미키는 통역기를 이용해 크리퍼 보스와 대화를 하고 협상에 이른다. ‘살아있는 아기 크리퍼를 다시 돌려줄 것과, 한 마리의 아기 크리퍼가 죽었으니 공평하게 지구인도 한 명 죽을 것’이 협상의 내용이다. 영화의 결말에서 강인한 미키 18이 케네스 마샬과 함께 자폭하려는 순간에 숨이 막혀온다. 마샬의 장갑차에 올라타 마샬을 제압하는 데 성공한 미키 18은 잠시 17 버튼을 눌러 미키 17을 희생시킬까 머뭇거린다. 이 모습을 본 마샬은 너 또한 죽음을 겁내는 하나의 인간이라며 위선적인 말과 함께 회유하려 시도한다. 미키 18은 미키 17을 한 번 보고는 18 버튼을 누르며 최후를 맞이한다.
우리가 사는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AI)의 생산성이 증가하면 인간은 행복할까? 미키 17을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빌 게이츠는 로봇세를 거둬 급격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를 늦추자고 한 적이 있다. 로봇에게 부과한 소득세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취업하도록 재교육 비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로봇 때문에 밀려나는 인간군상을 위해 정부 예산을 로봇세로 확보해야한다는 그의 주장에서 미키가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 유럽의회는 로봇 규제 입법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로봇세 부과 방안은 거부했다. 로봇세까지 부과하면 로봇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로막게 된다는 업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조치다. 정부는 혁신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 로봇세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생산성을 앞세워 무한적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미키를 통해 자본가를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AI나 로봇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면 영화처럼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메커니즘 디자인의 원리를 살려 정책을 설계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해피엔딩으로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계급이나 신분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존귀하다. 그 의미를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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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미키 7’의 저자 에드워드 애슈턴. [JustTeeJay 제공] |
에드워드 애슈턴(1968.1-)은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태어난 소설가다. 어느 이탈리아 소시지 회사의 뉴스레터에서부터 ‘이스케이프 팟(Escape Pod)’, ‘아날로그(Analog)’,‘파이어사이드 픽션(Fireside Fiction) 매거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단편을 선보였으며 소설 ‘4월의 사흘(Three Days in April)’과 ‘평범의 종말(The End of Ordinary)’의 작가이기도 하다. 2022년에 SF 소설 ‘미키 7’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