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현안 사실상 표류…기업 대관업무 멈췄다

정국 불확실성에 협의 시도조차 못해 조기 대선 가능성까지 대두 ‘살얼음판’ “지금은 기업 총수·CEO ‘정중동’ 행보”

“요새 국회의원 보좌진을 만나 현안 얘기를 꺼내려고만 하면 ‘일단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있는) 5월까지 기다려라’는 말만 돌아오네요.”, “무쟁점 법안도 관심 밖이다 보니 지금으로선 무력합니다.”

‘기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대기업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은 요새 한숨만 내쉬고 있다. 대관의 주업무는 법을 만들고 문제를 이슈화하는 국회, 정책을 시행하는 정부 부처 등과의 소통인데 정치 변수 등을 이유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관련 법률·정책에 대한 협의를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17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20~21일쯤 탄핵심판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관측된다. 산업계는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결론이 나더라도 여야의 극한 대치 속에서 기업 현안 논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의 정국 불안은 물론, 인용될 경우 ‘조기 대선 레이스’가 즉시 시작되면 각 기업 대관팀은 더 살얼음판을 걸을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법 현안이 있는 업계와 기업들은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가령 정제마진 악화에 실적이 부진한 정유업계에선 원료용 중유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를 면세해야 한단 개정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개별소비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에 들어가는 한 대관팀 실무자는 “탄핵 선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국회가 시끄러운 가운데, 개소세 개정안 등은 상임위도 못 올라간 단계”라며 “올가을 정기국회 시기는 돼야 적극 움직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대기업만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 대상에서 쏙 빠지고, 야당 주도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상황 등이 맞물려 힘빠지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정부 소통에 나설 여건도 아니란 분위기다.

여야가 공동발의한 무쟁점 경제법안조차 정쟁에 밀릴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정파를 초월해 공통적으로 지지받고 있는 법안조차, 무관심 속에 즉시 처리가 쉽지 않단 것이다.

재계에 따르면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주요 입법 과제는 ▷반도체산업 지원 강화(반도체특별법안) ▷첨단산업 지원기반 확대 및 기금 조성(산업은행법, 첨단전략산업기금법안) ▷재생에너지 입지규제 합리화 및 국산 설비사용 장려(신재생에너지법) ▷수소 공급 활성화를 위한 지원 확대(수소법) ▷입법영향분석 제도 도입(국회법 개정안 등) ▷기회발전특구 지원 확대(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 ▷외국인 고용허가제도 합리적 개선(외국인근로자 고용법 개정안) 등이 꼽힌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정중동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 대관팀을 필두로 정치권·정부와의 물밑 접촉은 이어가되 총수의 출장이나 기업의 사업 성과 세레모니 등은 자제하고 있다.

한 10대 기업 대관 실무자는 “대관은 물론 기업 총수·CEO(최고경영자)들도 5월 이후에서야 적극 행보에 나설 준비를 하며 정중동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또다른 관계자는 “중요한 입법 사안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겠지만, 굳이 그런게 아니면 기업들도 현재는 숨고르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만일 조기대선 국면이 시작되면 기업 대관팀은 물밑에서 한층 더 분주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적극 소통에 임하고 있지만, 주요 규제 이슈 등을 고려해 여야 후보들의 캠프를 중심으로 우호 분위기를 형성해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기업 대관팀 관계자는 “의원들은 물론이고 정부부처도 미리 잡은 약속은 취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 입장에선 더 답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기본적으로 국회 대상 대관팀은 ‘소수정예’지만, 인력 재배치와 대외 방침 변화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고은결·한영대·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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