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투자 5억으로 시작…현재 기업가치 8천억
자금난 이기고 K-팹리스 자생력 증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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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 [퓨리오사AI 제공] |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최근 메타 매각설과 TSMC 투자설이 불거지며 화제가 된 토종 팹리스(반도체설계) 업체가 있다. 바로 2017년 설립된 퓨리오사AI다. 설립 9년차에 8000억~1조원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데 이어, 내로라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퓨리오사AI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팹리스 생태계를 개척한 선구자 같은 기업이다. 맨 처음 투자받은 금액은 겨우 5억원. AI 반도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라 투자에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창업자 백준호 대표는 AI 반도체 시장에 대한 굳건한 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퓨리오사AI는 엔비디아의 값비싼 GPU(그래픽처리장치) 보다 전성비가 높은 데이터센터용 신경망처리장치(NPU)를 개발하고 양산하고 있다. LG AI연구원, 사우디 아람코, 삼성전자 등 굵직한 기업들과도 협업 중이다. 이같은 ‘공룡’ 기업들을 매료시킨 퓨리오사AI의 비결과 잠재력은 무엇일까.
NPU로 틈새시장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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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AI의 주요 제품은 NPU다. NPU는 신경망처리장치를 의미하는 단어로, AI 반도체의 한 종류다. GPU나 중앙처리장치(CPU) 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퓨리오사AI는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추론용 NPU를 개발하고 있는데, 추론용 NPU를 활용하면 AI 서비스를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드는 GPU 개수를 줄일 수 있다.
퓨리오사AI는 지난 2021년 처음 선보인 1세대 NPU ‘워보이’부터 업계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AI반도체 벤치마크 대회인 ‘MLPerf(엠엘퍼프)’의 추론분야에서 엔비디아의 ‘T4’를 넘어서는 성능 지표를 인정받은 것이다.
워보이는 이미지분류, 객체검출 처리속도 등에서 엔비디아의 T4 대비 약 1.5배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가격이 T4의 3분의 1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매우 높다. 데이터 처리 속도는 최대 64 TOPS를 기록했다. TOPS는 초당 1조 번의 연산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퓨리오사AI는 워보이를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네이버 등에 공급하며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대량 물량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2022년 3억992만원, 2023년 3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워보이 양산은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이 맡아 진행했다. 14나노 핀펫(FinFET) 공정을 기반으로 제조됐으며 LPDDR4X 메모리가 탑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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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AI 2세대 NPU ‘레니게이드’ [퓨리오사AI 제공] |
퓨리오사AI가 글로벌 대기업들과의 본격적인 협력을 시작하게 된 제품은 2세대 NPU ‘레니게이드’다. 워보이로 자신감을 얻은 퓨리오사AI는 지난해 ‘레니게이드’를 선보였다. 레니게이드는 엔비디아의 추론용 AI 반도체인 ‘L40S’와 성능은 비슷하지만, 전력 소모는 절반에 불과해 전성비가 높다. 퓨리오사AI 측은 “동급 제품인 엔비디아 H100 대비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레니게이드는 거대언어모델(LLM) 등 AI 서비스의 추론 능력에 특화된 제품으로, TSMC 5나노 공정을 활용해 제작됐다. SK하이닉스의 HBM3를 국내 AI 업체 중 최초로 탑재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LG AI연구원, 사우디 아람코, 삼성전자 등 국내외 대기업이 레니게이드 샘플을 가져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특히, LG AI연구원 자체 AI 모델인 ‘엑사원’의 개발과 학습에 레니게이드를 활용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연내 일부 기업들이 레니게이드 구매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이르면 연말 대량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는 지난해 10월 열린 국가전략기술 특별법 시행 1주년 기념 콘퍼런스에서 “레니게이드만으로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차원의 조 단위 투자 절실”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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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퓨리오사AI는 꾸준히 전세계에 기술력을 입증해오고 있었다. 때문에 AI 반도체 업계는 최근 불거진 퓨리오사AI 매각설에 상당히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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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리오사AI |
퓨리오사AI는 설립 후 1700억원에 달하는 누적 투자금을 유치했다. 2017년 네이버로부터 5억원이라는 아주 작은 규모의 시드 투자를 받으며 탄생한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직원수도 당시 3명에서 현재 130여명으로 증가, 상당한 규모의 중견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극심한 자금난에 부딪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불모지와 같은 국내 팹리스 생태계에서 지속적인 투자 유치 없이 견디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 중심의 한국 반도체 생태계에서 팹리스 업체의 성공사례는 극히 드물다. 아무리 좋은 NPU를 개발해도, 이를 테스트하고 구매해줄만한 대형 AI 기업이 거의 없다. 퓨리오사AI 뿐 아니라 리벨리온, 딥엑스 등 유망한 토종 팹리스 기업이 수년간 적자 구조를 이어온 이유다.
팹리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에선 레퍼런스, 즉 이전의 납품 사례나 성공 사례가 중요한데 그게 없다보니 기술력만 가지고 해외 시장에서 직접 발로 뛰어 다녀야 하는 처지”라며 “국내 대기업들이 토종 팹리스 업체의 제품을 좀 더 적극적으로 써주는 것밖에 기대할 수 있는게 없다”라고 토로했다.
다행히 퓨리오사AI의 경우 이번 자금난 문제에서 일단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TSMC와 대만 캐피털 텐에서 전략적 투자 논의를 이어가며 급한 불을 껐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후문이다.
퓨리오사AI 경영진도 회사를 매각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정영범 퓨리오사AI 상무는 지난 2월 열렸던 AI 육성 정책 관련 국회토론에서 “굳이 매각하지 않고 투자를 받으면 좋은데 국내에서 원하는 규모만큼 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한 바 있다.
오히려 퓨리오사AI는 이번 메타의 매각설로 입소문을 탄 셈이 됐다. 퓨리오사AI의 기업 가치는 8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메타가 8억달러, 한화 약 1조6000억원 규모의 매각 금액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메타는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목표로 현재 자체 데이터센터에서 활용할 수 있는 추론용 반도체 MTIA를 개발하고 있다. 추론형 NPU 기술력을 보유한 퓨리오사AI 인수를 적극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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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AI모빌리티 신기술전략 조찬포럼’에서 백준호 퓨리오사AI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박혜원 기자 |
전문가들은 이번 매각설이 위태로운 K-팹리스 시장의 과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토종 팹리스 업체들은 국내 인력 부족 문제와 벤처투자 시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백준호 대표는 지난 1월 열린 ‘AI·모빌리티 신기술전략 조찬포럼’에서 “글로벌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한국 기업 존재감이 전혀 없다”며 인력 양성 및 연구개발(R&D)을 위한 정부 차원의 조 단위 투자를 요청했다. 그는 “전방위적으로 과감한 시도들을 계속 해나갈 수 있도록 벤처 자금 투자와 함께 전방 산업을 키워야 한다”며 “성공 확률을 높이려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만 투자할 게 아니라 도전적인 시도에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한편, 퓨리오사AI는 레니게이드 기반의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중국 딥시크 돌풍으로 NPU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성비 AI 서비스 구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 호재다. 값비싼 GPU가 아닌 가볍고 저렴한 NPU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니게이드 2개를 연결한 ▷레니게이드-맥스, 레니게이드 4개를 연결한 ▷레니게이드-터보 등이 대표적이다. 두 확장 제품 모두 HBM3를 탑재하며, TSMC의 칩렛 기술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