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인근 초교 앞 “너도 와서 시위해”…동심까지 위협 [극단 치닫는 ‘탄핵 시위’]

등하교 시간에 집회 참가자 몰려 몸살
스피커 소음 심각한 영향 학습권 침해
학생들 안전 우려에 선고 당일 휴업령
석달째 이어진 집회, 상인들 고사 직전



지난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재동초등학교 앞으로 탄핵 각하 팻말을 든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가 지나가고 있다(위쪽 사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한 음식점. ‘출입구는 막지 말아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해당 식당 점주는 “집회 인파가 출입구를 막아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김도윤·이영기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 임박과 초등학교 개학이 맞물리며 헌법재판소 인근은 ‘대혼란’으로 빠지고 있다. 헌재 앞 집회 참가자들은 등교하는 초등학생에게 시위 참여를 강요하고,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은 소음으로 학습권까지 침해받는 상황이다. 석 달가량 이어지는 헌재 앞 집회로 고사 직전에 내몰린 인근 상인들은 최근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다.

▶“너도 시위 참여해”…헌재 앞 초등학교까지 피해=지난 13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종로구 헌재 인근 초등학교 2곳, 재동초·교동초 앞에는 임박한 탄핵 선고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에 지난 12일 서울시교육청도 탄핵 선고 당일 헌재 인근 학교 11곳이 재량 휴업을 하도록 결정했다.

등교 시간인 오전 8시 30분께 재동초 교문 앞에서는 탄핵 반대 측 집회의 음악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재동초와 헌재 간 거리는 약 200m도 안되는 거리다. 등교하던 학생들은 집회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가 시끄러운 듯 귀를 막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입을 모아 볼멘소리를 했다. 재동초 6학년인 김모(12) 양은 “학교 올 때마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너희도 나와서 탄핵 반대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며 “때리려는 사람도 있었다”고 씩씩거리며 말했다.

학습권도 침해되고 있다. 6학년인 나모(12) 군은 “스피커 소리가 들려서 시끄럽고, 시험 풀 때 집중을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양도 “지난 월요일 듣기평가 할 때 소리가 안 들려서 너무 불편했다”고 호소했다.

헌재와 약 500m 떨어진 교동초의 피해도 마찬가지다. 오전부터 시작된 집회의 소음은 교문 앞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 손에 부모의 손을 잡고, 반대쪽 손으로는 귀를 틀어막고 등교를 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올해 자녀가 교동초에 입학한 김세은(37) 씨는 “하교 시간에는 학교 인근까지 인파가 불어난다”며 “어제는 하교할 때 욕설도 고스란히 다 들리더라”고 불편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직접적인 공포도 느끼고 있었다. 등교 중이던 A(11) 군은 “집회를 보면 무섭다. 노래도 부르고 욕도 하시던데 수업 때 다 들린다”며 “선고돼야 시위를 그만한다고 하는데, 친구들끼리는 빨리 선고 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헌재 인근 학교에도 긴장 수위가 올라가자 서울교육청은 학생 안전을 위해 선고 당일 휴업령을 내렸다. 지난 12일 서울교육청은 대규모 시위가 예상되는 헌재 인근 학교와 유치원 11곳에 대해 선고가 이뤄지는 당일 재량 휴업을 결정했다. 재량 휴업이 결정된 학교는 교동초·재동초를 포함, 헌재 인근 재동초병설유치원·운현유치원·운현초·서울경운학교·덕성여중·덕성여고·중앙중·중앙고·대동세무고, 총 11곳이다.

탄핵 선고 임박으로 휴업령까지 내려지자 학교 측 안내문을 오해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선고 전날과 당일 휴업한다는 학교 측의 안내 문자를 지난 14일로 점쳐졌던 선고일로 오해해 지난 13일 등교를 하지 않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뒤늦게 학교로 학생을 내려줬던 학부모는 “14일이 선고일이라고 뉴스가 많이 나오길래 오해했다”며 “학교 측에서 자세하게 안내해줬으면 이런 착오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사 직전’ 헌재 인근 상인들 “안전까지 위협받아”=석 달 넘게 이어진 헌재 앞 탄핵 반대 집회로 인근 상인 피해도 심각하다. 지난 12일 오후 2시께에도 헌재 인근에는 탄핵 반대 측 지지자 수백 명이 모여 탄핵 반대 집회를 벌였다. 좁은 도로를 통행하는 시위 참여자들이 손에 들거나 가방에 끼운 태극기·성조기 깃봉이 상점의 유리창를 치는 모습도 더러 보였다.

상인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헌재 맞은편에서 13년째 전통잡화를 판매하고 있다는 안모 씨는 “집회 참가자끼리 종종 싸우는데 그때 몸싸움으로 번져 가게 유리창에 부딪히기도 한다”며 “퍽 소리가 나면서 유리창에 부딪히는데 그때마다 깨질까봐 너무 무섭다”고 토로했다. 이어 “3월은 매출이 오르는 시기인데 오히려 일 매출이 70% 줄었다”며 “작년 3월 하루에 120만원 정도 팔았는데, 지금은 20만~30만원 팔기도 어렵다. 문 닫고 쉬는 게 나은 상황인데 가게 지키려고 나오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도 “박근혜 대통령 때와 피부로 느껴지는 게 다르다”며 “결과와 상관없이 선고 당일에는 단축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회 인파가 음식점 입구를 막아 ‘출입문을 막지 말라’는 안내문을 써서 붙인 가게도 있었다. 해당 음식점 점주는 “집회 참가자들이 문 자체를 막고 있으니 오려던 손님도 되돌아갈까 싶어서 안내문을 붙였다”며 “멀리서 보면 이 자리에 가게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외부에서 보이지가 않으니 오던 사람들만 온다”고 했다.

관할 구청인 종로구는 헌재 인근 약 1㎞ 이내 노점상들에게 탄핵 선고 당일 하루 휴업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찰은 시위대가 노점상에서 사용하는 가스통 등을 탈취해 폭력 시위에 쓸 가능성을 우려해 종로구에 해당 내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기·김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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