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수수료 1조6000억인데 수익률은 ‘바닥’…“수익률 제고 시급”
도입 20년 된 퇴직연금 10년간 수익률 2.07% 물가상승률도 못 미쳐
계약형 아닌 기금형 국민연금·푸른씨앗은 高수익…“기금형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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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개선하려면 서둘러 ‘기금형’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형으로 운용되는 국민연금과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의 수익률은 6% 후반대인 반면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각자 스스로 알아서 투자 상품을 선택해 굴리는 현재의 계약형 퇴직연금 수익률은 2%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어서다.
18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2005년 12월 도입해 올해로 시행 20년을 맞은 퇴직연금의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2023년 말 기준 2.07%에 그친다. 5년으로 기간을 줄여도 연 환산 수익률은 2.35%에 그친다. 2023년 물가 상승률인 3.6%에도 미치지 못해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수익률은 마이너스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9년 2.25%, 2020년 2.58%, 2021년 2%, 2022년 0.02%, 2023년 5.26%였다. 제도 시행 이후 5%대 수익률은 2010년과 2023년뿐이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반면 수익률과 무관하게 금융사가 가입자에게서 받는 수수료는 매년 급증했다.
실제 수수료 규모는 2018년 8860억4800만원, 2019년 9995억7800만원, 2020년 1조772억6400만원, 2021년 1조2327억원, 2022년 1조3231억6100만원, 2023년 1조4211억8600만원, 2024년 1조6840억5500만원으로 늘었다.
이에 퇴직연금 관리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공동주관으로 지난 12일 금융감독원 2층 대강당에서 열린 ‘2025 퇴직연금 업무설명회’에서 정부 당국이 은행·보험·증권사 등 퇴직연금 운용 사업자들에게 쓴소리를 쏟아냈다. 퇴직연금 수탁자로서의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와 달리 퇴직연금이 발달한 서구 대부분 국가의 퇴직연금은 상당히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호주다 호주는 퇴직연금의 5년, 10년 평균 수익률이 각각 5.2%, 7.2%를 기록했다.
한국과 호주 퇴직연금 수익률 격차가 벌어진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운용 거버넌스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실제 퇴직연금 운용 방식은 크게 ‘기금형’과 ‘계약형’ 두 가지로 나뉜다.
기금형은 투자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별도의 중개 조직이 투자정보가 부족한 가입자(회사 또는 근로자 본인)를 대신해 적립금을 관리하고 집합적으로 투자한다. 전문성과 규모의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다.
반면 계약형은 투자 실력이 떨어지는 가입자가 민간 금융기관인 퇴직연금 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각자 스스로 알아서 투자 상품을 선택해서 적립금을 굴려야 한다. 위험성과 변동성이 높은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자칫 원금마저 까먹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탓에 대부분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장기간 방치해놓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퇴직연금 적립금의 약 89%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쏠려있다.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유일한 기금형 퇴직연금은 근로복지공단이 2022년 9월부터 운영 중인 ‘푸른씨앗’(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이란 공적 퇴직연금 기금이 있긴 하지만 이제 적립금 1조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푸른씨앗은 퇴직연금 가입률이 낮은 30인 이하 중소기업 근로자의 노후 준비를 위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납입한 부담금으로 공동의 기금을 조성·운영해 근로자에게 퇴직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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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합동청사에서 열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가입사업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
다만 기금형 퇴직연금은 계약형보다 장점이 많다.
기금형은 공공이나 민간의 대형 중개조직이 가입자의 적립금을 모아서 기금을 만들고, 이를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운용한다. 그런 만큼 정보 비대칭에 따른 가입자의 투자정보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 이익을 실현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2024년 운용 수익률은 15.00%로 1988년 기금설치 이후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 160조원의 수익금을 올려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작년 말 기준 1213조원으로 늘어났다. 국민연금 기금의 누적 수익률은 연평균 6.82%로 올랐고, 누적 운용수익금은 737조원에 달했다.
국내 퇴직연금 유형 중에서 유일하게 기금형 제도에 해당하는 푸른씨앗의 성과도 좋다. 2024년 푸른씨앗의 누적수익률은 14.67%, 연간수익률은 6.52%를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기금형 퇴직연금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남재우 연구위원은 ‘사적연금 구조개혁과 퇴직연금 지배구조 개편’ 보고서를 통해 “제도 도입 20년을 맞는 퇴직연금의 당면한 현안 과제는 수익률 제고”라며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는 비효율적인 만큼,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금형 지배구조를 도입해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퇴직연금이 발달한 대부분 서구 국가는 기금형만 있거나 기금형과 계약형을 둘 다 가지고 있고, 둘 다 있는 경우에도 기금형이 압도적으로 많다. 퇴직연금 제도를 운용하는 전 세계 주요 국가치고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없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