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호부·강릉역 등 8개 장소에서 전시
“인구 20만 강릉, 세계적 예술도시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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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대도호부 관아 옆 마당에 자리한 윤석남 작가의 ‘1025: 사람과 사람없이’. |
[헤럴드경제(강릉)=이정아 기자] 마른 가지마다 매화꽃이 살포시 피어나기 시작한 강릉 대도호부 관아. 고려와 조선시대의 중앙 관리들이 내려와 머물던 이곳, 햇살 너울지는 고즈넉한 마당에 367점의 개 나뭇조각이 세워졌다. 버려진 개들을 거둬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 관련 보도를 접한 윤석남 작가가 손끝으로 생을 불어 넣은 1025점의 유기견 나뭇조각 중 일부다. 삶의 한순간을 온전히 담고 있는 듯한 작품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속삭이듯 잔잔하게 전해진다.
올봄 강릉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올해로 3회차를 맞는 ‘강릉국제아트페스티벌(GIAF)’이 개막하면서 발길따라 걷는 도심 골목 곳곳이 국내외 작가 11명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물들어서다. 내달 20일까지 열리는 GIAF는 2년마다 강릉이라는 도시에 현대미술을 접목해 열리는 국제 예술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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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공연장 단에서 펼쳐지는 공연 ‘이양희 산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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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함외과의원에 설치된 키와림의 ‘소나무’ |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는 ‘에시자, 오시자’다. 강릉단오굿에서 악사들이 쓰는 구음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초대한다는 의미다. 이를 반영하듯, 강릉의 일상에 스며든 존재들과 다채로운 신화와 설화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강릉역, 옥천동 웨어하우스, 강릉 대도호부 관아, 옛 함외과의원, 작은 공연장 단, 창포다리, 일곱 칸짜리 여관,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등 8개 장소가 바로 그 무대가 됐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 내 국보인 임영관 삼문 너머에 있는 중대청에는 재앙을 막고 행운을 불러들이는 성주굿을 떠올리게 하는 홍이현숙 작가의 신작 영상이 상영된다. 천 년 넘게 강릉을 지켜온 임영관 삼문과 칠사당 등 건축물을 두드리며 깨우는 퍼포머의 소리에 맞춰 2022년 동해안 산불로 속살까지 검게 그을린 나무와 산 장면이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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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대도호부 관아 내 중대청에 설치된 홍이현숙의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 |
전대청에는 3세대 아르메니아계 시리아인 사진작가인 흐라이르 사르키시안의 영상 작업이 설치됐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만 했던 조부모와 그 과정에서 단절된 기억을 담아낸 작품이다.
강원도에 단 하나뿐인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으로 발길이 닿으면 ‘변신술사’라는 주제로 옴니버스로 엮인 호추니엔 작가의 신작 다섯 편을 관람할 수 있다. 강릉 동부시장 인근에 있는 옛 창고 옥천동 웨어하우스에선 정연두 작가가 강릉단오제를 경험하며 마주한 풍경을 두 대의 피아노 연주와 결합한 신작 영상 ‘싱코페이션 #5’이 설치됐다. 1958년 강릉 최초로 지어진 교회였으나, 2010년 강릉시가 매입해 탈바꿈한 작은 공연장 단에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양희 산조’ 공연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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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에서 상영되는 호추니엔의 ‘변신술사’. |
GIAF를 총괄 기획한 박필현 파마리서치문화재단 이사장은 “문화재단은 강릉에서 열리는 영화제나 음악회 등의 주요 후원사로 참여해 왔다. 그러던 중 우리가 직접 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며 “페스티벌을 꾸준히 10년 이상 운영해 나가다 보면 인구 20만 명의 강릉이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박 이사장은 강릉이 고향인 바이오기업인 파마리서치의 창업주 정상수 회장의 부인이자 동양화가다. 정 회장은 2018년 파마리서치문화재단을 설립했고, 박 이사장이 GIAF를 기획했다. 2019년 첫발을 내디딘 GIAF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지원하는 여타 다른 아트페스티벌과 달리, 문화재단이 모든 비용을 투입한다. 문화재단은 향후 거점이 될 공간으로 경포대 근처에 문화복합시설도 준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