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뒤늦게 파악한 ‘민감국가’ 이유 “보안”…원자로 SW 유출 시도 연관성 주목

지난해 美 연구소 직원 수출통제 정보 유출 시도 적발
외교부 “외교정책 문제 아냐…과거 제외된 선례 있어”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조 바이든 정부에서부터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에너지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정부가 미국 에너지부(DOE)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한 원인을 ‘보안문제’로 뒤늦게 파악했다. 과거 협의를 통해 리스트에서 제외된 선례가 있고, 관계기관과 협력해 노력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발효(4월 15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협의가 가능할지 주목된다.

특히 지난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SW)를 한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는데, 해당 사건이 이번 민감국가 지정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18일 정부에 따르면 전날 밤 외교부는 긴급 공지를 통해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리스트 최하위 단계에 포함한 것은 외교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에너지부는 전임인 조 바이든 정부 말기인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포함했다. SCL로 분류될 경우 미국 산하 국립연구소와 교류·협력할 때 출입 승인 절차를 받아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이달 들어서야 비공식 경로로 확인했고, 수일에 걸쳐 미국과 소통한 결과 겨우 배경을 확인한 것이다.

애초 국내에서는 민감국가 지정 배경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제기된 ‘핵무장론’ 영향이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국내 정치 혼란, 지난해 말 체코 원전 수출 당시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와의 원전 기술 분쟁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분석이 많았지만, 기술적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미국 측과 접촉한 결과 이같이 파악됐다며 “미국 측은 동 리스트에 등재가 되더라도 한미 간 공동연구 등 기술협력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어 “과거에도 한국이 미 에너지부 민감국가 리스트에 포함되었다가, 미국 측과의 협의를 통해 제외된 선례도 있다”며 “정부는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미 정부 관계기관들과 적극 협의 중이며, 동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속 노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에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약 1∼2년 전 에너지부와 계약한 직원이 한국으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실이 확인됐다. 사진은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 보고서. [연합]


일각에선 지난해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도급업체 직원의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 유출 미수 사건이 배경이 됐을 것이란 추측도 제기된다.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contractor employee)이 수출통제 대상에 해당하는 정보를 소지한 채 한국으로 향하는 항공기에 탑승하려고 했다가 적발돼 해고된 사건이 벌어졌다.

해당 사건은 보고 대상 기간인 2023년 10월 1일부터 2024년 3월 31일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적혀있다. 직원이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한 정보는 INL이 소유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로 특허 정보에 해당한다고 감사관실은 설명했다. 또한 해당 직원은 관련 정보가 수출통제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외국 정부와 소통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사안은 보고서 제출 당시 연방수사국(FBI)와 국토안보국이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정부는 우선 해당 사건이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분류한 유일한 보안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번 주 미국을 방문해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 에너지 현안을 협의하면서 이 문제도 논의에 나선다.

한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오는 24일 미국의 민감국가 분류에 대한 현안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 등을 상대로 SCL 분류 원인과 대응 방안 등에 대한 질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여야 의원 160여명으로 구성된 한미의원연맹은 미국 에너지부 등에 한국의 SCL 분류 철회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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