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쿵쿵’, 넋 나간 동물들…사람들만 신났다 [지구, 뭐래?]

지난 15일 대전의 한 유명 동물원에서 다람쥐과 동물 ‘프레리도그’가 눈을 질끈 감은 채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다.[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딱딱한 시멘트 바닥을 파고, 머리를 들이민다. 그냥 보기엔 마치 애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관람객들도 신기해하거나, 귀여워할지 모르겠다. 그 앞에서 즐겁게 사진도 찍겠다.

대전 한 동물원에 있는 다람쥐과 동물 ‘프레리도그’다. 이 동물은 원래 땅에 굴을 파고 산다. 이런 본능과 특성은 시멘트 바닥 앞엔 무용지물. 그래서 보이는 행동, ‘이상행동’이다. 쌓인 스트레스 탓이다.

유일한 예도 아니다. 해당 동물원에서는 총 8종에 달하는 동물들의 ‘이상행동’이 관측됐다. 수달은 스스로 몸을 물어뜯었고, 펭귄은 계속해서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

광주 우치동물원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헤럴드DB]


대전충남녹색연합은 2021년부터 시민들과 함께 진행한 동물원의 야생동물 사육환경 및 전시환경 개선 촉구를 위한 모니터링 진행 상황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난 15일 대전 유명 테마파크인 오월드 동물원에 살고 있는 미어캣, 펭귄, 늑대 등 총 8종에 대한 이상행동 여부, 관람 시간, 사육장 내부 행동 풍부화 요소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가 담겼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이날 동물원에서 관측한 8종의 개체에서 모두 정형행동(이상행동) 징후가 포착됐다. 아울러 해당 개체의 생태적 특성에 걸맞지 않은 방사장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한 동물원의 코끼리가 머리를 휘젓는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인스타그램 갈무리]


정형행동은 사육당하는 동물들이 특정한 목적이 없는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사육환경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들에 나타난다. 같은 자리를 맴돌거나 머리를 흔드는 등 형태는 다양하다.

예컨대 페루와 칠레 해안 지역에 서식하는 홈볼트펭귄은 수조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연신 유리에 몸을 부딪쳤다. 이들은 12개체가 하나의 좁은 수조에 전시돼 있었다. 특히 전면이 유리로 돼 있어 관람객의 눈을 피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15일 대전의 한 유명 동물원에서 홈볼트펭귄들이 수조 밖으로 나아가기 위해 유리에 몸을 부딪히고 있다.[대전충남녹색연합 제공]


녹색연합 관계자는 “생태환경에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수 없고 좁은 방사장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불러와 정형행동을 일으키는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수달의 경우 자신을 물어뜯는 행동을 보였다. 수달은 마른 바위 등을 통해 물기를 닦고 말려 곰팡이 등 피부질환을 피할 수 있는 잔디나 흙 등에서 잠을 잔다. 이같은 환경이 조성되지 않자, 스스로 몸을 물어뜯는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다.

대전 오월드에 전시된 표범.[대전 오월드 홈페이지 갈무리]


아무르표범의 경우 관람객과 가장 먼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벽 쪽에서 1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같은 곳을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곰 또한 반복해 고개를 흔드는 등 전형적인 정형행동 양상을 보였다.

녹색연합은 이같은 정형행동이 모두 좁거나, 필요한 서식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데 이어, 사람들에 노출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관람객들은 동물들의 행동을 보고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일본 한 동물원의 수달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있다.[인스타그램 갈무리]


해외에서는 야생동물에게 가급적 야생과 흡사한 환경을 제공하는 ‘생태적인 전시기법’을 고안해 최소한 스트레스를 주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동물원에 대해 생물학적, 보존적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환경을 제공하고 정기적인 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지난 2023년 12월 ‘동물원과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고, 야생동물의 특성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2028년까지 5년의 유예기간이 적용되며, 유럽 등에 비해 미흡한 사육환경으로 인한 정형행동 발생 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동물원 모습.[헤럴드DB]


한편 녹색연합이 모니터링을 실시한 대전 오월드 동물원은 최근 3100억원을 들여 최신식 놀이시설을 포함한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시설 개선 사업에 동물들의 생태 환경 조성 계획도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각 개체의 생태적 환경이 존중된 곳에서 정형행동을 보이지 않는 동물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특별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더 많은 시설이 아니라 생명을 위한 공간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는 새로운 시대의 동물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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