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선택적…맥락·도식 통해 선택
호기심·실수·수면 충분해야 기억 잘 나
![]() |
[123rf] |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 “내 휴대폰 어디 갔지?”
요즘 주부 A씨(45)는 집안에서 자신의 휴대폰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분명 5분 전, 아이의 학원 선생님과 전화 상담을 하느라 휴대폰을 썼는데, 어디다 뒀는지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학창 시절 듣던 유행가는 랩 파트까지 다 생각나는데, 왜 휴대폰이나 차 키 같은 사소한 물건들은 어디에다 뒀는지 한참을 생각해야 하는 걸까. A씨는 ‘이렇게 나이가 드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울적해진다.
금방 쓴 물건이 어디 있는지 몰라도, 혹은 방문을 열었는데 내가 왜 이 방에 왔는지 기억이 안 나도 당황할 필요 없다. 25년 이상 기억의 작동 방식을 연구해 온 차란 란가나스 캘리포니아대 다이내믹메모리랩 소장은 신간 ‘기억한다는 착각’을 통해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메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기억하기보다 잊어버리는 걸 더 잘한다. 우리의 뇌가 모든 경험을 기억할 수 없기에 기억은 선택적일 수밖에 없는데, 선택된 정보마저도 감각기관에서 들어온 수많은 정보가 ‘간섭 현상’을 일으켜 뇌에 저장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기억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전전두엽피질은 뇌에서 가장 늦게 성숙함과 동시에 노화 속도가 가장 빠른 영역이다. 이에 중요 정보는 사라지고 무의미한 사실만 기억나는 경향은 나이가 들수록 강해진다. 이에 저자는 “왜 자꾸 잊어버리나?”는 질문 대신 “왜 기억하는가?”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힘든 환경에서도 우리의 뇌가 정보나 경험 등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맥락’과 ‘도식’이라는 틀이 있어 가능했다. 뇌는 어떤 사건을 저장할 때 당시의 장소와 상황, 감정과 맥락을 각각 저장하기보다 ‘사건의 경계선’이란 덩어리로 저장한다. 뇌가 맥락을 기준으로 정보를 저장하기에 장소가 바뀌거나 새로운 상황이 끼어들면 효율성 차원에서 직전의 맥락은 기억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
신간 |
또 사건의 공통 요소를 미리 준비해 뒀다가 비슷한 상황에 재활용하는 ‘도식’이란 틀은 매번 기억을 따로 저장할 필요가 없는 데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차이점을 의미 있게 기억할 수 있어 유용하다. 복잡한 사건을 기억해 낼 때도 ‘도식’이 제공하는 사건의 구조 덕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특히 음악은 전형적인 구조나 형식 때문에 변화를 예측하기 쉬운, 전형적인 ‘도식’의 틀이다 보니 곡조나 가사를 외우기 쉽고, 잘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은 사진이나 기록처럼 정확할까. 저지는 단호하게 ‘아니다’고 말한다. 인간의 기억은 훨씬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과거의 고정된 기억만 가지고는 새로운 정보를 바탕으로 행동을 조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변화를 반영한 기억의 갱신이 시시때때로 필요했다. 실제로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기억할 때와 상상할 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위가 거의 일치한다. 즉 인간의 뇌는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매번 정보를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뇌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기억하기 위해선 ‘호기심’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뇌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싶은 것의 차이, 즉 ‘정보 격차’가 있을 때 호기심이 자극되고, 격차가 해소되면 그 보상으로 도파민이 분비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이유다. 또 실수하더라도 정답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른바 ‘실수 기반 학습’은 과정 자체가 기억 능력을 향상시킨다. 우리가 잠든 사이 뇌가 낮에 있던 일을 정리하며 기억을 응고화시키는 점을 고려하면 ‘수면’ 역시 기억력 향상에 중요한 요소다.
기억한다는 착각/차란 란가나스 지음·김승욱 옮김/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