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을 찾기 위한 하루 14시간 그렇게 17년…각고의 세월
‘손님의 머릿속에 계절을 만든다’…계절을 담은 알렌의 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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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 채상우 기자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지독한 노력으로 ‘천재(天才)’라 불리는 ‘범재(凡才)’가 있다.
그는 프랜치 파인다이닝 ‘알렌’의 서현민 셰프다. 2019년 한국에 혜성처럼 등장해, 1년만에 미슐랭 2스타에 오르고, 2021년 알렌을 오픈해 3년만에 다시 미슐랭 2스타에 오른 그에게 대중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한국 최초를 넘어 세계에서도 찾기 힘든 기록이었다. 사람들은 서현민 셰프를 ‘천재’라 부르는 한편, 그처럼 빠른 성공을 거두기를 바랐다.
서현민 셰프는 그들에게 ‘허상(虛像)’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고 있는 천재 서현민은 없다고 한다.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능력의 사람일뿐이라고. 뒷단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한 각고의 세월이 있었다고. 천재라 부르는 건 그런 그들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바라는 ‘빠른 성공’ 역시 그에게는 없던 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제가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빨리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처음부터 요리를 어마어마하게 하지도 않았고, 절대미각과 같은 특별한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에요. 오로지 노력만이 있었을 뿐이에요. 다른 이들은 쉽게 버티지 못할 그런 시간을 버틴 결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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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의 서현민 셰프. 채상우 기자 |
고등학생 시절 서현민 셰프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졸업 후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떠났다. 한국식 교육시스템을 거부한 ‘반항아’였다고, 스스로를 회상한다. 호텔 매니지먼트를 공부하던 그는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겨우 목숨을 구제할 정도의 생활비만 지원 받을 수 있던 가난한 유학생이 겪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식당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그것이 서현민 셰프의 요리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는 자신의 요리를 완성하는 데 매진했다. 이는 마치 수행과 같았다. 하루 14시간 이상 요리에 매달렸다. 그렇게 17년을 보냈다. 보통 사람이라면 1년도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그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전후무후한 엄청난 성과를 선보이며, 그간의 노력을 실력으로 입증했다.
“17년이에요. 제가 걸어온 길을 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뉴욕의 미슐랭 3스타 일레븐메디슨파크(EMP)에서만 10년을 일했어요. 근무 시간이 12시간 많게는 14시간 이상이었죠. 쉬는 날에도 요리를 쉬지 않았어요. 영감을 받기 위해 늘 식당을 돌아 다녔고, 맛을 찾기 위해 고민을 했어요. 맛뿐 아니라 완벽한 서비스와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했어요. 그렇게 17년을 보냈어요. 저의 미식은 노력의 시간이 녹아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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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 채상우 기자 |
서현민 셰프는 빠른 성공을 원하는 한국의 셰프 지망생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그런 방법은 없기에, 미식의 본질을 찾지 못하고 허영심에만 빠져든 그들에게 때론 안타까움을 넘어 실망마저 감추지 못했다.
“인생에 요행은 없어요. 빠른 성공이 있다면, 거짓이에요. 성공을 위한 지름길은 오직 노력이에요. 그 지름길조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랜 여정이죠. 빨리 성공하려는 이들은 결국 제풀에 지쳐, 포기하고 말아요. 그런 이들을 수없이 봤어요. 특히 한국 학생들이 꼭 ‘빨리 성공하겠다’고 해요. 빨리 자신만의 멋진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거에요. 자신만의 요리도 완성하지 못한 그들이 멋들어진 레스토랑을 만들었다고 한들, 성공할 수 있을까요. 외관은 멋지지만, 맛과 서비스는 떨어지는 식당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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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가 손님들에게 공개하는 그날의 제료. 채상우 기자 |
서현민 셰프의 음식에는 계절이 담겨 있다. 그는 한국에서 난 제철 재료를 최고로 여긴다. 재료에 대한 자부심은 그날의 식재료를 손님에게 선보이는 식전 퍼포먼스에서 부각된다.
“가장 좋은 재료는 한국의 제철 재료에요. 예컨대 저는 버섯을 가을에만 써요. 가을에 나는 버섯이 가장 풍미와 바디감이 좋거든요. 아주 작은 차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차이가 요리의 완성도를 결정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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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의 음식. 알렌 |
단지 제철 재료만을 사용하는 게 아니다. 손님에게 그 계절을 느끼게끔 하는 장치가 있다. 그런 서현민 셰프의 요리는 계절을 담은 하나의 예술 작품과 같다.
“포인트는 ‘손님의 머릿속에 계절을 넣는다’에요. 음식의 포인트로 손님에게 계절감을 되살려주는 거에요. 봄이면, 벚꽃을 이용하는거죠. 벚꽃과 제주 콜라비를 이용한 벚꽃 모양의 절임을 만든다든가. 푸아그라도 벚꽃모양으로 잡아 벚꽃의 향을 입힌 재료를 곁들여 내는 등이요. 시각, 후각, 미각으로 봄을 느끼게 해주는거에요.”
그는 대부분의 재료를 한국에서 수급하고 있다. 심지어 푸아그라와 캐비어 등도 국산을 쓴다. 서현민 셰프는 한국에도 푸아그라·캐비어 ‘특수식재료’가 다양하게 생산되면, 미식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푸아그라는 거위 대신 오리 간을 쓰고 있어요. 억지로 사료를 먹여 키운 외국의 거위 간보다 기름의 풍부한 맛은 적지만, 농축된 감칠맛이 돋보여요. 캐비어도 과거에 비해 상당히 수준이 올라와 지금은 해외 제품 못지 않은 맛을 내고 있지요. 오히려 외국산 같은 유통 과정의 열처리가 없어 풍미는 더 살아있어요. 한국에도 이런 특수재료가 다양하게 생산된다면, 미식은 더 풍부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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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의 음식. 알렌 |
서현민 셰프는 좋은 식재료를 선보이고 싶어하는 ‘생산자의 순수한 열정’이 인정받기를 바란다. 질보다 가격만 따지는 시장에서는 좋은 식재료가 만들어질 수 없다. 정말 좋은 식재료를 생산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시장이야 말로 건강한 시장이다. 건강한 시장은 미식이 성장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생산자들의 순수한 열정이 인정받는 시장이 형성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1년 전 프랑스에 가서 위로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유명하지는 않지만, 정말 좋은 샴페인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걸 봤거든요. 한국에도 그런 문화를 알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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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의 집무실에 붙인 바스키아의 그림들. 본인 제공 |
서현민 셰프는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애당초 요리도 문화의 한 가닥이니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뉴욕에서 오래 거주한 만큼, 팝 아트에 애정이 깊다. 장미셸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을 특히 좋아한다. 그의 방에는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과 작품이 걸려있다. 주방 안 화이트보드에는 앤디 워홀의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그저 끝내라(Don’t think about making art, just get it done)’ 글귀가 적혀 있다. 서현민 셰프가 그들을 좋아하는 건 셰프의 삶도 그들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미켈란젤로를 좋아했어요. 천재 아티스트에 대한 동경이었죠. 17년의 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뒤에는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에 더 가깝다고 느끼게 됐어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젊은 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저는 어떻게 보면 이방인 같았어요. 어디도 속하지 못한.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도 당시 사회의 틀 안에서 한발 벗어난 지점의 인물들이었죠. 그런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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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민 셰프. 채상우 기자 |
서현민 셰프는 미식의 정점에 오르기를 원한다. 2스타를 넘어 미슐랭 3스타도 목표하고 있다. 거기까지 가는 데 지금의 동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범재이면서 천재다. 반항아고 예술가며, 알렌을 이끄는 선장이다. 그를 수사하는 단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흘릴 노력의 흔적만큼 수사는 계속 늘어가지 않을까. 미식의 정점에 오를 그의 여정을 응원하는 건 그 노력의 흔적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