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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시장에 만연한 시세조종사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속칭 ‘고래(코인시장의 큰손)’인 J는 오늘도 아침 9시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는 1~2시간 전쯤에 엄선한 오늘의 목표 종목인 A코인을 미리 사두었다. J가 주로 타깃으로 삼는 것은 시가총액 1000억원 이하이고, 국내 거래소에서의 거래 비중이 높은 코인들이다. 즉, 시세조종이 용이한 ‘김치코인’이 그 대상이다.
오전 9시가 되면 J는 A코인에 대해 상대 매도 1호가 이상의 고가 매수 주문을 집중적으로 제출해 쌓여 있는 매도 물량을 소진시키며 시세를 끌어올린다. 여기서 ‘9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업비트는 오전 9시를 기준으로 당일 가격 등락률을 결정하며, 9시 이후의 시세 변동에 따라 실시간으로 등락률이 갱신된다(빗썸의 경우 오전 0시 기준). 따라서 J가 9시 이후 A코인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상승시키면, 해당 코인은 즉시 당일 시세 상승률 상위 종목으로 랭크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아무리 가격을 끌어올려도, 이를 받아줄 일반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세는 원래대로 돌아가고 시세조종은 무의미해진다. 하지만 이 문제는 9시 전후로 단기 매매 차익을 노리는 다수의 투자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이들은 9시 이후 급등하는 종목을 주시하며, J가 작업한 코인이 상승률 상위권에 오르면 ‘고래가 개입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초단기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적극적인 시장가 매수 주문을 제출하고, 이로 인해 시세가 급등하며 매수 주문이 쌓이게 된다. 이는 증권시장에서의 ‘상한가 따라잡기’와 유사한 매매 방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반복돼왔다. 실제로 ‘9시의 약속’ 또는 ‘경주마 시세조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J는 가격이 충분히 상승해 매수세가 몰리는 것을 확인한 후, 미리 매집해둔 코인을 대량 매도하며 시세 차익을 실현한다. J의 매도 물량이 출회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은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고, 결국 시세는 빠르게 원래 수준으로 회귀한다.
이 과정에서 비싼 가격에 코인을 매수한 일반 투자자들은 매도 타이밍을 놓친 채 손실을 떠안게 된다. 모든 과정은 불과 20~30분 만에 종료되며,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린다. 즉, 시세조종을 주도한 J와 극소수의 초기 매도자만 이익을 얻고, 대다수의 투자자는 손실을 보게 되는 구조다.
처음에는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시세조종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적극적인 매수 주문이 몰린 결과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에도 ‘매집 → 시세 상승 → 이익 실현’이라는 전형적인 시세조종 패턴이 명확히 드러났으며, J의 이러한 행태가 매일 오전 9시경 반복적으로 확인되면서 더는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마치 경주마들이 9시 신호와 동시에 1등을 쫓아 달리는 모습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일반적인 경주에서는 1등을 추월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 시세조종에서는 1등을 절대 앞지를 수 없으며, 결국 1등을 제외한 모든 참가자가 패자가 된다는 점이다.
법무법인 세종 황현일 변호사·이재훈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