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계 분열 획책하는 악의적 갈라치기”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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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종로구 진진수라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관치행정 반대 기자간담회’에서 김희선 국악계현안비상대책협의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립국악원장 인선을 둘러싼 국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초 인사혁신처가 추린 신임 원장 후보 3명 중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이 포함되면서다. 문체부는 “국악인, 특정 학교 독점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나, 국악계는 “분열을 획책하는 악의적 갈라치기”라고 맞섰다.
국립국악원 전임 원장과 연구실장, 전지 예술감독 등으로 구성된 ‘국악계 현안 비상대책협의회(이하 ‘비대협’)는 25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행정직 공무원의 국립국악원장 임명을 반대한다”며 “적절한 원장 선임을 위해 재공모를 실시하라”고 25일 촉구했다.
비대협은 이날 ▷ 행정직 공무원의 국립국악원장 임명 반대 및 재공모 실시 ▷국악계 의견 수렴 ▷국악계 분열을 획책하는 악의적인 갈라치기 행태 중단을 3대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국립국악원은 지난해 6월 9일 김영운 전 원장이 퇴임한 이후 9개월 넘도록 공석 상태다. 비대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국악원장 공모 당시 적격자를 찾지 못해 직무 대행 체제로 접어들었고, 같은 해 12월 대통령령 개정으로 국립국악원장이 공무원도 지원할 수 있는 개방형 직위로 전환됐다. 기존엔 민간 전문가만 지원가능한 ‘경력개방형 직위’였다.
그러면서 올초 진행된 2차 공모에서 용산 대통령실 비서관을 지내며 김건희 여사의 KTV 국악공연 황제관람 논란에 대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위증한 유병채 문체부 국민소통실장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악계에선 일련의 상황을 근거로 “대통령령 변경이 특정 인사 선임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12, 13대 국악원장(1999~2003)을 지낸 윤미용 비상대책협의회 대표는 “행정직 출신 원장 임명은 국악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국악계를 이해하고 국악 발전에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 원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악계는 세 후보 중 ‘특정 인사’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국악 전공자가 국악원장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했다. 다만 정부 인사혁신처 국악원장 공모의 자격 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비대협에 따르면 국악원장 공모는 국악 기능 및 교육을 통한 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국내외 교류, 민속 음악의 보존 전승 및 생활화 공연 계획 수립 및 시행 관리 전속 단체 운영 관리 국악 자료의 제작 및 보급 정보화 국악 학술 연구 및 교류 국악 보존 전승 및 조사 발굴, 국악 유물의 관리 연구 무대 관리 현대화를 요구한다. 또 박사학위 소지자는 관련 분야 경력 7년 이상, 석사 소지자는 경력 10년 이상 등등 여러 가지 자격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김영운 전임 국립국악원장은 “(국립국악원장 후보인 문체부 공무원이) 국악 관련 경륜을 풍부히 가졌는지 모르겠다”며 “행정직 공무원은 국악의 역사와 장르별 특성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 국민들이 국악에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전문가보다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전임 연구실장은 “국악원에 이미 문체부 2급으로 파견되는 기획운영단장과 3~4급으로 파견되는 과장 직책이 있다. 국악원장은 이들과 함께 행정 관련 협의를 진행해왔다”며 “원장까지 문체부 공무원이 온다는 것은 문체부가 국악원을 관리 대상으로 여긴다는 방증”이라고 일갈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지난 30년간 국립국악원장 자리를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 독식했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국악계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한 편향된 인식”이자 특정 학교 ‘카르텔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국악원장 자리에 서울대 출신이 많았던 것에 대해 비대협은 “서울대에서 1959년 처음으로 국악과가 만들어진 뒤, 1972년 한양대, 1974년 이화여대, 1980년 중앙대에서 국악과가 생겼다”며 “국각 관련 고등교육 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대 국악과 출신 원장이 오래도록 배출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역대 원장의 취임 연령을 감안하면 사실상 2015년 이전은 서울대 출신밖에 대상자가 없었고, 비서울대 출신과 경쟁이 가능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졸업자들인 18~20대 원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은 “국립국악원 지방 분원 원장들을 국악계 차세대 리더십으로 볼 수 있을 텐데, 세 곳 중 국립국악고-서울대 출신은 1명밖에 없다”며 “특정 학맥 편중 현상은 시간이 흐르며 역량이 갖춘 분들이 늘어나면 자연히 해소될 문제”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앞서 국악계의 반발에 여론조사를 거쳐 원장직의 공무원 개방에 80% 이상이 반대하면 인사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대협은 이에 “양쪽 의견이 골고루 개진되고 투표자들이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지 않는 한, 개헌보다 어려운 이런 식의 여론조사는 동의할 수 없다”며 ‘임기응변식 대응’이라고 했다. 김 전 실장도 “실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국민들은 국립국악원이나 국악계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폐해가 있는 집단으로 오해할 여지가 너무나 많은 여론전”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국립국악원 관치행정 반대 기자회견에는 윤미용·김해숙 전 국립국악원장과 변미혜·김희선·김명석 전 연구실장, 이춘희·곽태규 전 예술감독을 비롯해 이상규 한국국악학회장, 김혜정 판소리학회장, 이건석 진주시립국악관현악단 지휘자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