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화마 피한 하회마을·만휴정 [역대 최악의 산불]

‘천년 고찰’ 고운사·운람사 전소 못피해
국가 지정 명승·천연기념물 피해 이어져


26일 오전 경북 의성군 고운사 가운루가 불에 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있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는 전날 고운사를 덮친 산불에 타 전소됐다. [연합]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시를 지나 청송군·영양군·영덕군까지 확대되면서 경북 곳곳의 문화유산이 소실되거나 피해를 입었다. 이에 정부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국에 국가유산 재난 국가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다만 26일 새벽께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불길이 더 이상 번지지 않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다행히 화를 면했다. 화마에 휩싸였을 것으로 추정되던 만휴정도 간신히 불길을 피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자리한 안동시 풍천면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한때 상황이 긴박했지만, 다행히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큰 피해 없이 수습된 상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현재 불길은 보이지 않는다”며 “다만 탄내 나는 연기가 병산서원 앞산으로 넘어와 만대루에서 살수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지난 25일 밤까지도 산불은 하회마을에서 직선으로 8㎞ 주변까지 확산했고, 마을 현장에서는 거리가 불과 5㎞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로 긴박했다. 특히 병산서원은 산불과 가까이 있어 피해가 불가피해 보이는 문화유산이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안동시 봉정사도 화마를 피했다. 봉정사 소장 유물들은 만일을 대비해 국립경주문화연구소로 흩어진 상태다.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로 극락전과 대웅전이 각각 국보로 지정돼 있고 영산회 괘불도, 아미타설법도, 영산회상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보물도 여럿이다.

의성군에서 번진 산불이 안동시 길안면으로 가장 먼저 경계를 넘어오면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 만휴정은 가까스로 불길에서 살아남았다. 국가유산청, 안동시, 경북북부돌봄센터, 소방서 등 40여 명이 합동으로 만휴정 기둥과 하단 등 목재 부분에 방염포를 전체적으로 바르면서 화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일부 소나무가 그을린 것을 제외하면 피해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만휴정 원림은 국가 지정 명승으로 조선시대 문신인 보백당(寶白堂) 김계행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다만 이미 화마에 휩싸여 전소된 국가 지정 보물과 명승 등이 다수 확인된 만큼 여전히 상황은 녹록지 않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자 통일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의성군 고운사는 큰 피해를 봤다. 고운사에 있던 보물 석조여래좌상은 안동청소년문화센터로 급히 옮겨지면서 화를 면했으나 경내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과 가운루는 모두 소실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불상과 광배(光背·빛을 형상화한 장식물)는 옮겼으나, 불상을 올려놓는 대인 대좌(臺座)까지 옮기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산불 발생 첫날인 지난 22일 900년을 살아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화마에 휩싸여 상당 부분 소실됐다.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는 고려시대 강민첨 장군이 심은 높이 27m의 거목이었다. 현재 일부 가지는 남아 있지만, 상당 부분이 불에 타거나 부러진 상태다. 강 장군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인 경남도 문화유산 자료 하동 두방재의 부속 건물 2채도 전소됐다. 또 국가 지정 명승인 강원도 정선군의 백운산 칠족령의 지정 구역 일부인 5000㎡(약 1512평)도 불탔다. 이어 지난 23일에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인 울주 목도 상록수림 1000㎡(약 302평)가 전소됐다.

앞서 국가유산청은 지난 25일 오후 5시30분 기준으로 전국의 국가유산 재난 국가 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발령했다. 국가유산 재난 국가 위기 경보 수준이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의성, 안동 등의 대형 산불과 전국에서 발생하는 동시다발적 산불로 인한 국가유산 화재 피해 우려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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