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웅 연출·정보경 안무 ‘드림팀’
4196석…전석 전회차 매진 기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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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원들이 공연 ‘미인’의 부채춤 연습 장면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시대에 따라 여성의 얼굴은 다르게 그려졌다. 단아하고 정갈했던 과거의 여인들이 새 얼굴로 다시 태어났다. 2025년의 ‘신(新 ) 미인도’다.
“전통적으로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느껴지는 전형적인 모습을 비롯해 21세기의 다이내믹하고 ‘사이버 시티’가 보여주는 다양한 미를 여성 무용수들만의 춤으로 보여주고자 합니다.” (양정웅 연출가)
29명의 여성 무용수가 무대에 선다. 그들의 팔뚝보다 두껍고 긴 장검을 북소리에 맞춰 휘두른다. 금속의 마찰음이 쩌렁쩌렁 커지며 회오리쳐도 곧추세운 허리도, 우아한 미소도 무너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춤 ‘한 판’이다. 국립무용단의 ‘미인’(4월 3일 개막)의 연출을 맡은 양정웅은 이번 작품에 대해 “여성 무용수들을 통해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새로운 미인상을 제시하는 무대”라고 소개했다.
‘미인’은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케 하는 무대로 시작해 산조와 살풀이, 부채춤, 강강술래, 북춤, 탈춤 등 11개의 전통춤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특히 ‘부채춤’은 역동적 안무로, ‘탈춤’은 한국적 카니발을 모티프로 삼았다.
이 무대를 위해 문화예술계의 내로라하는 창작진이 모두 뭉쳤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부터 연극, 드라마, 영화, 각종 공연 무대를 오가는 ‘국가대표 연출가’ 양정웅은 “한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어벤저스 창작진을 한자리에 모았다”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온 최고의 창작진이 뭉쳐 독창적 방식으로 한국의 미를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무를 맡은 주인공은 엠넷 순수무용 경쟁 프로그램인 ‘스테이지 파이터’에서 한국무용 코치로 출연한 정보경 안무가다. 그는 2023년 ‘넥스트 스텝 Ⅲ:안무가 프로젝트’에서 ‘메아리’를 선보이며 국립무용단과 안무가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한국 춤의 근원을 바탕으로 동시대적 감각을 통해 우리의 미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되묻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무대에선 이르면 초등학생, 늦어도 중학교 시절 한국춤을 시작한 단원들의 몸에 새겨진 춤을 꺼내놓는다. 정 안무가는 “한국 춤 사이엔 세월을 관통하는 몸의 기억과 정서들이 담겨있다”며 “단원들의 삶을 응축해 놓은 몸의 기억이 안무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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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미인’의 칼춤 연습 장면 [연합] |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무대의 ‘화룡점정’은 음악과 의상이다. 무수히 많은 무용 무대의 음악을 책임져온 이날치 밴드 장영규가 춤선을 청각화한다. ‘미인’에선 춤 못지않게 의상의 비중도 높다. 보그 코리아에서 30년간 K-패션을 매만져온 서영희가 의상과 오브제 디자인을 맡았다.
서영희는 “안무가의 의도에 맞는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정보경 안무가가 ‘부채춤은 추는데 꽃은 안 만들고, 탈춤을 추는데 탈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복을 어디까지 풀어 헤칠지 고민해 의상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화룡정점’은 무대디자인이다. 에스파, NCT127, 아이브 등 K-팝 그룹의 뮤직비디오를 맡아온 신호승 아트디렉터가 완전히 색다른 무대를 보여준다. 지름 6.5m의 대형 에어벌룬을 활용해 음양의 에너지를 형상화하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26m의 대형 천과 족자 형태의 LED 오브제를 통해 간결하되 강렬한 무대를 만든다. 양정웅 연출가는 이 무대를 ‘미장센의 정점’이라고 했다. 총천연색의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한 시각적 미장센을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한국 춤의 새로운 정의를 써 내려간 국립무용단과 정보경은 서로의 장점을 살려 어우러진다. 정 안무가는 “국립무용단은 미래의 고전을 만드는 곳이라 생각한다”며 “젊은 안무자로서 민속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할지를 고민했다. 춤의 변주를 통해 미학적 개념들을 해체하고, 다시 섞어 춤의 방향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을 몸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탈춤에서 탈을 쓰지 않더라도 몸에 흐르는 기운과 에너지를 통해 직관적으로 탈춤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국립무용단의 가장 큰 매력은 같은 움직임을 줘도 모두가 동일한 춤을 추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의도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각자의 아름답고 특별한 춤이 이 안에 있습니다.” (정보경)
어벤저스 창작진과 함께 ‘미인’은 개막 3주 전, 객석 점유율 99%를 기록하더니 현재는 전회차 조기 매진됐다. 국립무용단 측은 “관객들의 기대감에 총 4196석이 모두 판매됐다”며 “한국무용 공연이 전회차 만석을 기록한 것은 이례적 결과”라고 했다.
관객들이 추가 공연 요청도 쏟아져, 현재 국립극장에선 오는 2일 진행되는 최종 드레스 리허설의 2층 좌석을 공개하기로 했다. 드레스 리허설은 실제 공연과 똑같은 의상과 분장, 무대를 갖추고 진행된다. 개막 전 마지막 단계의 준비 과정을 볼 수 있는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