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 전소, 전소…거센 화마에 보물 다 탔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산불이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마을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뉴시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강풍에 날아온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전소, 전소, 전소. 국가지정 보물인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 그리고 명승인 만휴정 원림이 25일 모두 불에 탔다.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로 등운산 자락에 있는 천년 고찰 고운사 전각이 모두 화마에 휩싸이면서 경내 보물도 소실됐다. 안동 길안면으로 산불이 가장 먼저 경계를 넘어오면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만휴정도 불길에 휩싸였다.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후 7시 기준 산불 관련 국가유산 피해 현황을 발표했다. 보물 2건을 비롯해 명승 2건, 천연기념물 1건, 시도지정 3건 등 총 8건이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밤사이 피해 지역에 대한 파악이 이어지면서 확인되는 피해 규모도 계속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25일 고운사 입구 인근에 세워진 최치원 문학관이 전소되고 있다. [연합]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마을에서 주민들이 야산에 번진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


이날 오후 강풍으로 산불이 확산되면서 고운사가 있는 등운산 자락까지 불길이 번졌다. 오후 3시 20분쯤 단촌면 전역에 대피 명령이 내려졌고, 오후 4시 50분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가 산불에 완전히 소실됐다. 이로 인해 경내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가 모두 불타 사라졌다.

신라 신문왕 1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운사는 경북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 중 하나였다. 고운사가 소장 중이었던 보물 석조여래좌상 등 문화유산은 화마가 덮치기 전 안동청소년문화센터로 급히 옮겨지면서 화를 면했다. 고운사 측은 당초 석조여래좌상을 조문국박물관으로 옮기려 했으나, 산불로 길이 막히면서 센터로 이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유산청 측은 “긴박한 상황 속에서 불상과 광배(光背·빛을 형상화한 장식물)는 옮겼으나, 불상을 올려놓는 대인 대좌(臺座)는 옮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난 산불이 바람을 타고 동진하면서 안동시까지 번진 가운데 경북도소방본부 관계자가 25일 안동 길안면 묵계리 만휴정 원림을 둘러보고 있다. 만휴정 원림은 끝내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모두 전조했다. [연합]


산불이 안동 일대로도 번지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의 안전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현재 국가유산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꼽히는 안동 봉정사가 소장했던 유물을 긴급 이송 조치하는 중이다. 봉정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산사로 극락전과 대웅전이 각각 국보로 지정돼 있고, 영산회 괘불도, 아미타설법도, 영산회상벽화, 목조관음보살좌상 등 보물도 여럿이다. 산림당국은 이날 3500ℓ 상당의 진화용수를 실은 차량(유니목) 9대와 인력 50여명을 서후면 태정리에 위치한 봉정사에 우선 투입했다.

의성에서 번진 산불이 이날 오후 안동 길안면으로 가장 먼저 경계를 넘어오면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 만휴정은 가까스로 불길에서 살아남았다. 국가유산청과 안동시, 경북북부돌봄센터, 소방서 등 40여명이 합동으로 만휴정 기둥과 하단 등 목재 부분에 방염포를 전체 도포하면서 화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만휴정 원림은 국가지정 명승으로 조선시대 문신인 보백당(寶白堂) 김계행이 만년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인근 야산으로 불이 번지고 있다. [연합]


앞서 산불 발생 첫날인 지난 22일에는 900년을 살아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화마에 휩싸여 상당 부분 소실됐다.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로 고려시대 강민첨 장군이 심은 높이 27m의 거목이었다. 현재 일부 가지는 남아 있지만, 상당 부분이 불에 타거나 부러진 상태다. 강 장군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사당인 경남도 문화유산자료 하동 두방재의 부속 건물 2채도 전소됐다. 국가지정 명승인 강원도 정선의 백운산 칠족령의 지정 구역 일부인 5000㎡(약 1512평)도 불탔다.

이어 23일에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인 울주 목도 상록수림 1000㎡(약 302평)이 전소됐다. 울산시 문화유산자료인 운화리성지는 현재 피해 내용을 확인 중에 있다.

경남도 기념물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가 상당부분 불에 탄 것으로 확인됐다. [하동군]


2015년 촬영된 경남도 기념물인 하동 두양리 은행나무. [국가유산포털]


한편 국가유산청은 이날 오후 5시 30분 기준으로 전국의 국가유산 재난 국가위기 경보를 ‘심각’ 단계로 발령했다. 국가유산 재난 국가위기 경보 수준이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유산청은 “의성, 안동 등의 대형 산불과 전국에서 발생하는 동시다발적 산불로 인한 국가유산 화재 피해 우려가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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