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기후위기 속 ‘씨앗 전쟁’


금보다 비싼 씨앗이 있다. 1g에 20만 원이 넘는 기능성 토마토 종자다. 순금 1g이 14만 원 수준(25.3.25 기준)인 것을 고려하면 금보다 토마토 씨앗이 더 비싼 셈이다. 파프리카 종자 중에도 1g에 10만 원이 넘는 씨앗이 수두룩하다. 종자에는 로열티(royalty·사용료)가 붙는다. 특정 종자를 사용하려면 해당국이나 품종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식량이 무기가 되고 있는 지금, 종자주권은 농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의 문제다. 우수한 종자를 가진 국가는 국민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지만, 종자를 해외에 의존할수록 식량 위기에 취약해진다. 전 세계가 총성 없는 ‘씨앗 전쟁’을 벌이는 이유다.

기후변화로 종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장용 배추로 인기가 높은 고랭지 배추에는 벌써 적신호가 켜졌다. 폭염일수 증가로 지난해 배추 생산량이 감소했던데 이어서, 2050년대에는 고랭지 배추의 재배지가 급격히 줄어들고 2090년에는 재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국내산 배추로 김치를 담그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이에 앞서 농촌진흥청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한 배추 신품종을 개발했다. 2023년 출원된 배추의 이름은 ‘하라듀’. 여름 ‘하(夏)’에 오래 견딘다는 뜻의 영어 단어 ‘듀러빌리티(durability)’를 조합했다. 더위에 강한 데다가 재배기간도 기존 60일에서 45일~50일 사이로 단축할 수 있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신품종이다. 저장력이 우수한 사과 ‘아리수’, 병해충에 강한 배 ‘그린시스’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대표 품종이다.

신품종은 개발만큼이나 현장 보급이 중요하다. 생산과 유통, 소비 등 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야 식탁에까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사는 올해 하라듀 신품종을 비롯해, 신규 재배 적지 발굴을 위해 준고랭지 지역에서 시범 재배하는 배추 300톤을 수매할 계획이다. 이후 김치 재료로 적합한지 실종 검사를 추진하고, 저온저장고에 보관해 수급 안정 물량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우리 땅에 최적화한 국산 품종은 경제 효과도 크다. 벼와 콩, 딸기를 비롯한 10개 국산 품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114조 원에 달할 정도다. 종자 독립을 이룬 딸기의 경우, 이제는 수출하는 효자 품목이 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딸기 90% 이상이 일본 품종이었지만, 국산 품종을 적극적으로 보급하면서 현재는 딸기의 96%가 국산 품종으로 재배되고 있다. 지난해 딸기 수출액은 6,900만 달러(1,000억 원)를 기록했다.

식량안보에 경제적 가치를 매길 수 없듯이 종자산업도 100년 뒤를 내다보고 적극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농업 강국으로 꼽히는 네덜란드는 종자 강국이다. 전 세계 종자 수출국 1위로, 종자 무역의 1/3이 네덜란드에서 이뤄진다. 국토 면적이 작고 농작물 재배에 불리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농식품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네덜란드의 뿌리에는 종자산업이 있다. 전 세계가 씨앗 전쟁을 벌이는 지금, 종자 강국으로 도약할지 종자 후진국으로 퇴보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씨앗을 지켜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농업을 살리고, 미래를 만들어가자.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