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위에 실린 트랙터’ 남태령 고개서 밤을 꼴딱 샜다 [세상&]

전농, 남태령서 경찰과 17시간 이상 대치
전날부터 트랙터 행진 무산되며 충돌 발생


26일 오전 2시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와 시민들이 서울 서초구 남태령고개에서 열린 집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고 있다. 이용경 기자


[헤럴드경제=이용경·김도윤 기자] 25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트랙터 시위’가 경찰 저지로 무산되면서 간밤에 남태령고개에서는 밤샘 대치가 이어졌다. 남태령 집회는 26일 오전 7시 무렵 해산됐지만, 전농 측 트랙터가 남태령에서 서울 광화문 서십자각으로 우회 진입하면서 경찰과 재차 물리적인 충돌로 번졌다.

26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전농과 경찰 측은 전날 오후 2시부터 이날 오전 7시 40분께 전농이 사실상 해산하기까지 약 17시간 넘게 서울 서초구 남태령 일대에서 대치했다. 앞서 서울경찰청은 기동대 27개 부대 1700여명을, 경기남부경찰청은 9개 부대 600여명을 현장 집회 관리 등에 투입했다. 전농 측은 애초에 트랙터 20대와 1톤(t) 트럭 50대를 동원해 남태령에서 이수역, 한강대교를 거쳐 광화문까지 행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트랙터의 이용을 전면 금지했고, 1t 트럭은 20대를 초과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하는 결정을 했다. 이에 전농 측은 대형 트럭에 트랙터를 싣는 방식으로 시위 방식을 변경했다. 결국 경찰이 이날 트랙터를 실은 트럭의 이동을 불허하자, 양측은 협의에 이르지 못한 채 장시간 대치했다. 트랙터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 수십여대는 그대로 남태령 고갯길에 묶였다.

26일 오전 2시 전농 측 트랙터를 실은 대형 화물트럭 수십여대가 서울 서초구 남태령 고갯길에 묶여 있다. 이용경 기자


전날 늦은 밤 헤럴드경제가 찾은 남태령 집회 현장에는 은박 담요를 두른 탄핵 찬성 시위자들이 밤샘 집회를 펼쳤다. 이들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정당성을 소리 내 외쳤다. 특히 기동대 버스 차량과 바리케이드로 시위대 저지선을 구축한 경찰을 비판하기도 했다. 현장에 있던 조광남 전농 충남도연맹 사무처장은 “농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이렇게 막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오후에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탄핵 반대 시위자 200여명이 “트랙터의 서울 진입을 막겠다”며 전농 측과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부 극우 유튜버들은 남태령역 2번 출구 옆 집회 현장에서 “(탄핵 찬성 측)타깃을 잡아 두 번 다시 집회를 못 하게 기를 꺾어놔야 한다”는 등 전농 측 시위대를 향한 위해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은 탄핵 반대 집회 근처에 있던 시민들에게 느닷없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26일 오전 1시 30분께 기자와 우연히 만난 허정훈 중앙대 체육학과 교수도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별안간 욕설을 들은 당사자 중 한 명이었다. 허 교수는 “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 같아 너무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법원이 공공질서를 이유로 제한적인 방식으로 집회를 허용했다고는 해도 대통령의 이번 계엄 선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국민은 항의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도 노동자들이 트랙터를 이끌고 수도로 향한 바 있다. 농민이든 노동자든 우리 사회 시민이라면 누구에게든 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해 의사 표현을 할 권리를 줘야 한다”며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이상 폭넓게 집회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26일 오전 7시 15분 광화문 서십자각에서 전농 측 트랙터를 견인하며 이를 저지하는 일부 시위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김도윤 기자


밤새 전농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참가 시민들은 9대의 난방 버스에 들어가 쪽잠을 청하거나 도로 맨바닥에 누워 무기한 집회 시위에 대비했다. 하지만 집회는 이날 오전 7시께 해산됐다. 경찰은 “오전 7시 40분부터 남태령 과천대로는 정상적인 차량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경찰이 이날 오전 4시 15분께 광화문 서십자각 천막 농성장에서 전농 측 트랙터 1대를 발견하고 기동대와 지게차를 투입해 견인 조치하면서 다시 전농 측과 대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을 폭행한 집회 참가자 1명이 검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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