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탄압 끝’ 부활한 마윈…‘컴알못’ 영어교사→中 IT거물 되기까지 [더 비저너리-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더 비저너리]는 헤럴드경제 국제부가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인데…아는 게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비저너리]를 챙겨 봐주세요.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2014년 당시 알리바바가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 IPO 기록을 세우자 마윈이 활짝 웃고 있다. [AP]


“중국 금융의 전당포 정신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화근은 이 한마디였다.

2020년 10월 2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 중국 최고권력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참석한 자리에서 마윈(馬雲·61) 알리바바 창업자는 작심한 듯 정부 비판을 이어갔다. “중국 지도부의 금융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고도 했다. 이후 5년. 마윈은 중국 공산당에 도전한 ‘괘씸죄’로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리고 잊혀졌다. 질식하듯 서서히.

당시만 해도 마윈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전자결제시스템을 도입해 중국을 ‘현금 없는 사회’로 바꾼 장본인이었다. 중국 토종 전자상거래 ‘알리바바’를 통해 미국 공룡업체 이베이를 중국 시장에서 몰아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마윈이란 두 글자가 중국에서 ‘성공’의 대명사로 통하던 시절이었다. 한때 중국인들 사이에선 그를 ‘마대디(Ma Daddy·마윈 아버지)’라고 불렀을 정도다.

하지만 마윈은 시 주석 앞에서 호기롭게 던진 쓴소리로 5년간 수난의 길을 걷게 된다. 중국의 과도한 금융 규제를 비판하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전적인 취지였음에도 중국 정부에 박힌 ‘미운털’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그랬던 마윈이 부활했다.

올해 2월 1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민영기업 좌담회에 초청받은 것이 복귀의 시작이었다. 중국의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 마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 주석과 악수까지 했다. 지난 5년간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마윈은 중국 당국이 준 기회를 인공지능(AI) 산업 투자로 즉각 화답했다. 지난달 AI 분야에 3년간 3800억위안(약 74조9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 24일에는 알리바바 산하 세계 최대 핀테크(금융과 디지털 기술의 결합) 기업인 중국 앤트그룹이 중국산 반도체를 활용해 인공지능(AI) 모델을 훈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이 기술을 사용할 경우 고가의 미국 엔비디아 제품을 쓸 때보다 훈련 비용이 20%가량 절감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챗GPT가 이끄는 미국 주도의 경쟁 구도가 깨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미 중국 IT업계에선 마윈의 복귀에 열렬히 환호하고 있다. ‘초가성비’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 열풍으로 가열된 미·중 AI 패권전쟁 속에서 마윈이 또 한번 중국 AI 산업에서 기적을 탄생시킬지 주목된다.

태어나보니 ‘문화대혁명’…3수생에 하버드 불합격만 10번


유년시절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모습.


마윈이 태어난 1964년은 문화대혁명이 도래하던 시기였다. 저장성 항저우 출신인 마윈의 부모는 평탄(評彈·핑탄) 배우였다. 평탄은 항저우 지방 전통 공연을 말한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평탄 공연이 금지돼 집안 사정은 급격히 나빠졌다. 마윈은 호전적인 소년으로 성장했다. 자존심이 강한 탓에 왜소하고 마른 체격에도 덩치가 훨씬 큰 학우들과도 줄곧 싸웠다.

문화대혁명 속에서 마윈은 일찍부터 영어에 매료됐다. 그가 영어 연습을 위해서 12살부터 9년간이나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45분이나 걸리는 항저우 호텔로 가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무료로 도시를 안내해 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마윈은 삼수 끝에 항저우 사범대학의 영어교육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 학문의 폭을 넓히고자 하버드 경영대학에 무려 10번이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졸업후엔 수십 곳의 회사에 구직 신청을 했지만 떨어졌다.

컴알못, 인터넷 잠재성 예측했지만…벌이는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항저우전자대학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모습 [인터넷 캡처]


마윈은 지난 1995년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들렀던 친구 집에서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인터넷을 사용하자마자 그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난생 처음 써보는 인터넷에서 마윈이 검색한 단어는 ‘맥주.’ 하지만 마윈이 해당 검색어에 ‘중국’을 추가하자 중국 맥주와 관련된 내용은 찾을 수 없었다. 이는 그가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인터넷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직감한 마윈은 중국판 인터넷 옐로페이지(업종별 전화번호부)인 ‘차이나 페이지’를 창업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실패로 끝났다.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으로 꼽혔지만, 준비 부족과 중국 내 인터넷 인프라 부족이 주된 원인이었다.

마윈은 지난 201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강연에서 “1995년께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매우 외로웠다”며 “누구도 날 믿지 않았고, 나도 내가 뭘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그러면서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인터넷 세상이 올 것이라는 확신뿐이었다”고 덧붙였다.

손정의·제리 양과의 남다른 인연, ‘폐업 위기’ 알리바바 살렸다


지난 1999년 알리바바 창립 초기 모습.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그해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20평 남짓한 아파트 17명의 지인을 불러모아서 알리바바를 만들었다. [중국 SNS]


지난 1999년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아파트에서 알리바바의 역사는 시작됐다.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마윈은 17명의 지인을 불러 모았다. 당시 중국에 갓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의 잠재성에 주목해 중국의 중소기업들이 해외 고객들로부터 쉽게 주문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인터넷 사업을 고안해 낸 것이다. 마윈이 당시 수중에 있던 자금은 50만위안(약 8300만원)에 불과했다.

초기 사업 실적이 부진했던 나머지 폐업 위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마윈은 거대 투자금을 확보하면서 위기에 봉착해 있던 알리바바를 구했다. 지난 2000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창업자로부터 2000만달러의 투자금을 얻어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1997년 중국 만리장성에서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왼쪽)와 제리 양 야후 창립자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엑스(X·옛 트위터) 캡처]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효시인 제리 양 야후 창립자와의 우연한 인연 덕분이다. 마윈은 첫 인터넷 사업에 실패했을 당시인 1998년에 비영리 전자상거래 벤처사업 부문에서 잠시 일하고 있었다. 그때 제리 양이 중국을 방문했고 마윈은 그의 만리장성 여행 가이드를 맡았다. 두 사람은 이 일을 계기로 친구가 됐다.

제리 양은 사업 위기에 빠졌던 마윈의 알리바바에 구세주 역할을 했다. 그의 소개로 마윈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의 만남이 성사됐기 때문이다. 마윈은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알리바바의 사업구상에 대해 마윈이 손 회장과 6분 동안 나눈 대화는 거금의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오른쪽)가 지난 2014년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4 행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포옹하고 있다. [로이터]


손 회장은 그 뒤로도 마윈의 든든한 뒷배가 됐다. 훗날 손정의는 마윈과의 첫 인연을 “기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9년 12월 일본 도쿄대 야스다강당에서 열린 ‘도쿄포럼’에서 손정의는 “처음 만났을 때 잭(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의 영어 이름)은 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벤처 기업들은 ‘투자’ 이야기부터 했는데 그는 ‘꿈’을 이야기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中 대표 기업으로 자리잡은 알리바바…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의 시초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업체로 출발했지만, 물류, 금융 뿐 아니라 클라우딩서비스, AI, 자율주행차, 카쉐어링, 스마트호텔 등 4차 산업혁명의 거의 모든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마윈은 특정 영역에 머물지 않고 기술과 사회환경 변화에 적응해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고통스러운 경험도 경험이다. 그러나 똑똑히 보면 별것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알리바바 경영활동 중 마윈이 직원들에 웃음을 주려고 분장을 하고 무대에서 열창하는 모습. [로이터]


판매자(또는 소비자)에 대한 불신은 실시간 상담을 통해 해소했고, 결제는 온라인 결제서비스인 알리페이를 만들어 극복했다. 알리페이는 이제 중국에 없어서는 안 될 대표적 결제시스템이 됐다.

무섭게 상승세를 달리던 알리바바는 2014년 9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에 성공했다. 당시 알리바바가 기업공개(IPO)로 조달한 자금은 22조7000억원으로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기록이었다.

쇼핑과 전혀 무관했던 ‘싱글데이(11월11일)’가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처럼 탈바꿈한 것도 마윈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잔칫집에서 초상집으로…한때 실종설 돌기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지난 2015년 9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열린 미중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로이터]


알리바바를 세운 마윈 조차도 중국 당국의 칼끝에선 자유롭진 못했다.

마윈은 지난 2020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중국 지도부의 금융 규제가 혁신을 질식시킨다”는 발언으로 당국의 눈 밖에 났다. 중국 당국은 마윈의 비판을 당과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했다.

알리바바의 핀테크 자회사이자 마윈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앤트그룹의 홍콩·상하이 주식시장 상장 절차를 무기한 중단시켰다. 마윈은 2023년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 지배권도 내려놨다.

알리바바 역시 중국 당국의 표적이 됐다. 알리바바는 지난 2021년 4월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사상 최대인 182억 위안(약 3조439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했다.

마윈 역시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게 됐다. 장기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해외를 전전한 나머지 한때 ‘마윈 실종설’과 ‘체포설’도 나돌았다. 중국 공산당의 눈엣가시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의 기업가 정신도 사실상 끝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미국과 기술 패권다툼 시진핑, 마윈 다시 불렀다


그러다 2025년 상황은 반전됐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혔던 마윈의 수난기도 시 주석과의 악수로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왼쪽 두번째)가 중국 대표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한데 모인 민영기업심포지엄(좌담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괘씸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CCTV 캡처]


마윈의 복귀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 후 재점화된 미·중 패권전쟁이 영향이 컸다. 올해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초대박을 치면서 미국 AI 산업의 콧대를 누를 기회가 생긴 것에 마윈이 일조할 수 있을 거란 중국 정부의 판단이 작용했다.

중국으로선 미국을 상대로 한 기술 패권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IT기술 인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마윈에게 시련을 줬던 중국이, AI 기술 경쟁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마윈에게 다시 구원의 손길을 건넨 셈이다.

이 같은 구원의 손길에 화답하듯, 알리바바는 클라우드와 AI 분야에 3년간 3800억위안(약 74조9000억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중국 1세대 테크 기업이 이 같은 통 큰 AI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에서 중국 AI 업계에선 이를 기폭제로 주요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자국 AI 모델 딥시크를 능가하는 모델을 개발했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또 세계적 관심을 받는 중국 AI 스타트업과의 협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알리바바의 대형언어모델(LLM)팀은 중국 AI 기업 마누스와 협업하기로 했다. 마누스는 중국 빅테크 텐센트 홀딩스의 지원을 받은 AI 스타트업 후뎨샤오잉(蝴蝶效應·나비효과)이 공개한 AI 에이전트다.

지난 24일에는 앤트그룹이 중국산 반도체를 활용해 개발한 AI모델 훈련 기술이 고가의 미국 엔비디아의 H800 반도체를 쓸 때보다 훈련 비용이 20%가량 절감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통상 고성능 하드웨어를 사용해 1조 개의 토큰을 훈련하는 데 약 635만위안(약 12억8000만원)의 비용이 든 반면, 앤트그룹이 개발한 접근 방식은 저사양 하드웨어를 사용해도 되기 때문에 비용이 510만위안(약 10억3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토큰은 AI 모델이 학습하고 사용자 요구에 유용한 답을 제공하기 위해 수집하는 정보의 단위다.

이 같은 소식은 중국과 미국 간 격화되는 AI 산업 경쟁에 앤트그룹이 가세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알리바바는 26일 독일 자동차 업체 BMW와도 AI 엔진을 공동개발하는 등 협력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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