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유병자보험 전수조사 착수

건강한 가입자보다 부담 적은
간편고지보험 판매 정황 포착
보험사들 CSM늘리기 과열경쟁
요율원칙 훼손·재정 악화 점검


한 보험사는 간편고지 보험의 고지 기준을 ‘3.6.5’로 설정하면서도, 실제 보험료는 ‘3.10.5’ 수준의 보험료를 책정했다. 이는 보험료율의 기준과 맞지 않을뿐더러, 건강한 고객이 더욱 비싼 보험료를 내는 역차별 문제를 안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금융당국이 간편고지 보험(유병자 보험) 판매현황에 전수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계약마진(CSM)을 늘리기 위해 간편고지 보험을 기존 건강한 가입자보다 낮은 보험료로 팔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는 보험료 역차별 논란과 함께 요율 산정 원칙을 어긋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악화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손해보험협회를 통해 보험사들이 운영 중인 간편고지 보험 판매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부터 일부 보험사에 대해 실태 점검을 진행해 온 금감원은 이달 들어 잘못된 인수(계약) 방식이 확인된 보험사에 대해 구두 경고를 내리고, 상품 운용 실태를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간편고지 보험을) 빨리 많이 팔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제보가 있어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있다”며 “과당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점검 중”이라고 말했다.

간편고지 보험은 고령자·경증 유병자 등 일반 보험 가입이 어려운 사람들도 간단한 건강 관련 질문(고지)을 통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을 말한다. 보험사들은 통상 3~5개의 고지 항목만 충족하면 가입이 가능하게 해 상품을 팔고 있다.

업계에선 통상 ▷입원 소견 여부 ▷실제 입원·수술 여부 ▷암 진단 여부 등으로 고지 기준을 구분한다. 보험사들은 이 기준을 ‘3.2.5 플랜’처럼 숫자로 표시해 판매하는데, 이는 각각 3개월 이내 입원 소견, 2년 이내 입원·수술, 5년 이내 암 진단 여부를 뜻한다. 숫자가 낮을수록 건강 상태가 나쁜 가입자가 많고 보험료가 높으며, 숫자가 클수록 건강한 사람도 가입하기 쉬워 보험료는 낮은 편이다.

문제는 일부 보험사들이 중·경증 유병자 가입을 유도하면서 적정 요율보다 낮은 보험료를 적용해 보험을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보험사는 고지 기준을 ‘3.0.5’으로 설정하고도, 실제 보험료는 ‘3.5.5’ 기준으로 적용했다. 또 다른 보험사도 고지 기준을 ‘3.6.5’로 설정하면서 실제 보험료는 ‘3.10.5’ 수준의 저렴한 보험료만 받는다. 금감원은 이처럼 보험사가 적정 요율과 다르게, 할인된 보험료로 보험을 판매하는 방식을 문제로 보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보험사들의 CSM 확보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들은 미래 이익의 핵심 지표인 CSM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CSM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재무건전성 관리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간편고지 보험과 같은 건강보험은 보장성보험으로 CSM 확보에 유리해 영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보험업계의 간편고지 인수 방식은 보험시장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 먼저 요율이 적정한가에 대한 문제다. 간편고지 보험은 고지별 질병 통계에 기반으로 요율을 산출한 것인데, 위험도가 높은 가입자에게 낮은 보험료를 적용하면 보험료 산출 기준이 무너질 수 있다.

고객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유병자 고객을 건강한 고객과 같은 보험료로 인수하는 것은 반대로 건강한 고객이 더욱 비싼 보험료를 내고 보험을 이용하는 것과 같다. 기존 가입한 고객 역시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구조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보다 낮은 보험료로 계약이 체결되면 미래에 보험금 지급 시 손실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손해율이 높아진 보험사는 보험료를 인상하고, 모든 보험 가입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보장 한도 경쟁으로 절판 마케팅과 과당 경쟁이 벌어졌고, 이는 보험사 건전성을 악화하고,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면서 “올해도 인수방식 변경 등으로 과당경쟁이 반복되면 결국 소비자 피해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금융당국의 시장 왜곡 방지를 위한 감독과 함께 보험사의 자율적인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달 27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단기실적 중심의 영업 행태가 시장 신뢰를 훼손한다고 직격한 바 있다. 이번 조사 역시 그 연장선상으로 해석되며, 금감원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후속 조치에 나설 예정이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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