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콘서트’로 프랑스·스위스 투어
실미도처럼 갈고 닦는 탄탄한 기본기
“화성에서 춤추는 인간 1호 되고 싶다”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 음악에 이런 춤을?’
헨델의 아리아 ‘날 울게 하소서’가 흐르자 반전의 춤사위가 시작된다. 검은 슈트를 입은 무용수들의 간결한 동작들이 4배속 빨리 감기를 한 듯 몸을 혹사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는 듯한 기분. 고단한 일과가 사정없이 몰아치는 현대인의 서글픈 단상이 무용수들의 부서질 듯한 춤으로 그려진다.
특별한 장치나 소품도 없는 무대, 같은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11개의 음악에 맞춰 11개의 세상을 그린다. 그들의 춤은 장르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비보잉부터 발레까지, 다프트 펑크부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까지…. 모든 규정된 범위를 가뿐히 뛰어넘는다. 올해로 15주년을 맞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바디 콘서트’.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파격적이고, 여전히 뒤처지지 않는다. 한국 현대무용계의 고전이자 입문서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때였어요. 제가 가진 열정 못지않게 정신없이 만든 것이 이 춤이었어요. 처음 무대에 올랐던 당시 상당히 파격적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놀랐고, ‘이게 무슨 현대무용이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어요.” (예술감독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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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제공] |
말 없는 몸짓언어로 사유와 감정을 그려내는 현대무용의 세계에 대중음악이 입혀진 적은 없었다. 그 시절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향한 공격도 꽤나 거셌다. 그럼에도 등장과 동시에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에 선정되며 15년이나 이어진 ‘유일무이’ 최장수 현대무용이 됐다. 장경민(42)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대표는 “우리의 몸이 가장 진실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춤”이라고 했다.
현대무용으론 이례적으로 1004석 규모의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그 어떤 기업협찬도 없이 무려 15회의 장기 공연을 마쳤다. 스스로도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손해는 10% 미만이었다”며 ‘선방’을 자축한다. 현재는 이 무대로 3주간의 프랑스와 스위스 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출국 전 만난 김보람(42)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예술감독은 “현대무용으로서 알리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앰비규어스를 ‘하나의 장르’로서 보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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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앰비규어스댄스컨퍼니 감독(왼쪽)과 장경민 대표, 이학, 김지혜 단원/이상섭 기자 |
‘앰비규어스(Ambiguous·애매모호)’.
2007년 대학 동기인 김보람·장경민의 자취방에서 전설은 시작됐다. 전남 완도에서 자라 현진영의 춤을 보고 무용의 꿈을 키웠고, 고등학생 때 서울로 올라와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했던 소년 김보람과 서울예대 무용과에서 만난 장경민이 의기투합한 팀이다.
“장경민 대표가 영어 공부에 한창이던 시절, 사전을 펼치자 나온 단어가 ‘앰비규어스’여서 지은 이름이에요. (웃음)” (김보람)
이름은 이듬해 본격적으로 빛을 발했다. 2008년 CJ영페스티벌에서 라벨의 볼레로에 맞춘 ‘에브리바디 시즌Ⅲ 볼레로’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으면서다.
앰비규어스는 현대무용계의 ‘낭중지추(囊中之錐)’였다. 당시 ‘누구나 하고 싶지만 함부로 시도할 수 없었던 곡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극찬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프로젝트 때마다 학교 후배를 모으면서 ‘볼레로’ 시절 5명이었던 앰비규어스는 어느새 17~18명의 무용수가 ‘월급’을 받는 단체로 성장했다.
2017년 앰비규어스의 무용수가 된 이학(37)은 “성인 남자가 혼자 살기 괜찮을 정도의 수입”이라며 웃었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팝스타 콜드플레이와의 협업은 이들의 대중적 인지도를 키웠다. 장경민 대표의 제자이기도 한 김지혜(23)는 앰비규어스의 막내다. 이제 막 꽉 채운 1년을 보냈다. 그는 “대학에서 4년 내내 들었던 수업 중 가장 즐거운 수업이라 꼭 앰비규어스에 오고 싶었다”고 했다.
앰비규어스의 춤은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무용수들의 ‘몸의 기억’이다. 매주 월화목금, 매일 오전 11시~오후 3시. 장경민 대표는 “출근과 동시에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앰비규어스만의 코어 준비운동을 한다”고 했다. 최근엔 발레 클래스까지 생겨 출근 시간은 더 빨라졌다. 매일 같이 이어지는 트레이닝의 이유는 ‘몸만들기’에 있다. 김보람은 “춤을 추며 호흡이 처지지 않도록 앰비규어스만의 웜업을 만들었다”며 “무용이나 춤을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오면 따라 해야 하는 몸풀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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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바디콘서트’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제공] |
‘누구나 해야 한다’지만,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다. 김지혜는 “들어오면 체조를 기반으로 한 다리찢기와 같은 몸풀기부터 시작하는데 생전 처음 해보는 방식이었다”며 “현대무용 기본기만 해오다 독특한 몸풀기부터 리듬감 있는 스텝 밟기를 하는데 정말 어렵다”고 했다. 이학 역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보고 따라해야 하는데 완벽하게 익히기까지 2~3달 정도 걸린다”고 했다. 무대 아래에서 몸을 다지는 무용수들의 날들은 태릉선수촌과 다름없다.
“영화 ‘실미도’처럼 하고 있어요. (웃음) 춤을 추려면 이정도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이것도 못 버티면 작품은 절대로 못 하니까요.” (김보람)
장경민은 “그래서인지 입단 하루 만에 안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이학은 “추는 사람은 힘든데 보는 사람은 즐거운 춤이 바로 앰비규어스”라고 했다.
버티고 견뎌낸 무용수들은 앰비규어스의 춤을 온몸으로 새긴다. 장경민은 “그 시간이 고스란히 성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체화한 동작 안엔 무용수 각자의 개성과 앰비규어스의 특질이 묻어난다. 앰비규어스는 누구와도 구분되는 이들만의 춤 색깔로 현대무용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학부 시절 앰비규어스 무대를 많이 봐왔다”는 이학은 “단원이 돼 춤을 춰보니, 앰비규어스의 춤이라는 것은 여러 (장르의) 춤들을 믹스해 앰비규어스만의 것으로 오리지널화하는 춤”이라고 정의했다. 일종의 ‘믹스앤매치’의 결과물이자, 이종교배로 태어난 ‘하이브리드’다. “귤과 오렌지가 만나 새로운 과일인 청견이 되는 것처럼, 특정한 장르가 아닌 우리만의 식물, 우리만의 춤을 만드는 거예요.” (김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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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앰비규어스댄스컨퍼니 감독과 김지혜, 이학, 장경민 대표(왼쪽부터) / 이상섭 기자 |
20대 초~40대 중반까지 앰비규어스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김보람·장경민을 비롯해 40대 무용수가 4명이나 된다. 40대 무용수들의 무대는 ‘시간의 길이’가 무색하다. 폭발하는 에너지에 더해진 그들의 춤은 여전히 강력하면서도 삶의 애환을 드러낸다. 물론 예전엔 잘 되던 동작들이 이제는 쉽지 않다. “잘 안되던 동작은 더 안 된다”며 장경민은 웃는다. 그는 “몸이 힘들면 마음이 빨리 지치기 마련이다. 괴롭다고 해야 할지, 고통스럽다고 해야 할지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체력 관리를 더 하게 된다”고 했다. 장경민과 김보람의 연습시간은 다른 무용수보다도 더 길기로 유명하다.
“여기서 포기하면 다시 무대에 못 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더 잘하려고 해요. 나이는 계속 들어가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무대에) 못 오를 수 있잖아요. 그날이 오는 것을 매일 거부하는 거예요.” (김보람)
이들에게 무대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연습실이 없어 공사장과 잠수교, 여의나루에서 춤을 췄다. “비 오는 날 굴다리 밑에서, 잠수교에서 해가 뜨는 모습을 보며”(김보람) 춤을 추고 또 췄다. “춤을 제외한 다른 것엔 관심이 없다”는 김보람에겐 ‘모든 것’이 춤이었다. “타자를 치는 손가락의 움직임도 춤으로 보인다”는 그는 말 그대로 ‘춤에 미친 자’다.
김보람은 “지금 앰비규어스는 끊임없이 기록을 만드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신작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무용계에서 15년간 장수한 스테디셀러를 만들었고,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40대 무용수들의 기록”이 날마다 깨진다. 그는 “우리가 50세에 포기한다면 사람들은 50세까지 춤을 출 수 있다고 할 것이고, 45세에 포기하면 그때가 종착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순수무용과 대중무용의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분투’하며 매일 그들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창단 이후 10년은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단체였지만, 순수예술 장르 중 가장 척박한 환경에 뿌려진 씨앗이었기에 많은 날들이 쉽지 않았다. 초창기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활동을 중단하려고 마음먹던 때도 있었다. 한국관광공사 영상인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통해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고 이후 무수히 많은 매체와 K-팝 업계의 러브콜이 들어왔지만,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극단적으로 방송 활동을 거부했다. “꾹꾹 참고 버티다 보니 유행은 지나고 다시 순수한 우리의 춤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김보람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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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람 앰비규어스댄스컨퍼니 감독과 김지혜, 장경민 대표, 이학 단원(왼쪽부터)/ 이상섭 기자 |
이제 앰비규어스는 명실상부 ‘하나의 장르’가 됐다. “춤 스타일이 없는 것이 앰비규어스의 스타일”이고, “어떻게 보여줘야겠다는 의도 대신 어떻게 하고 싶다는 의도”로 몸의 세계를 다져간다. 자신들의 의미보다 관객의 의미가 최우선이라는 이들의 춤은 때론 웃음이 일지만, 종종 사무친다. 격렬하고 재치 있는 동작 안에서도 페이소스가 넘실대고 반전의 희비극이 교차한다.
“아마도, 앞으로 점점 더 슬퍼질 거예요. 기계화되는 현대사회는 점점 더 사람의 몸을 고립시키고 몸의 사용을 둔화하고 있어요. 미디어 세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요.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고립돼 갈 때 우리의 춤을 보면 몸이 반응하게 될 것 같아요.” (김보람)
앰비규어스는 “아직도 진화하는 몸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연습하는 단체”라고 자평한다. 부단히 ‘진화하는 몸’을 만들어가는 앰비규어스의 무대는 그 뒤에 쌓아 올린 피·땀·눈물의 노력이 배어있다. “각기 다른 기량과 실력일지라도 ‘플러스 1’의 노력을 더해 같은 에너지를 발산”(김보람)하니 총량이 주는 감동의 크기는 수십 배가 된다.
이학은 “버틴다는 생각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 서로 의지하며 따라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님, 대선배와 함께하는 김지혜는 “공연장에선 암전이 된 건지 내가 눈을 감은 건지,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긴장상태의 연속이고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다”며 “매일 발전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입단 이틀 차면 사라지는 무용수가 많지만, 일 년을 버틴 막내의 꿈은 앰비규어스의 ‘최장수 무용수’ 다.
김보람은 “원래 모든 인간은 최고의 댄서라고 생각한다”며 “우리의 춤은 바이러스 같은 춤이다. 온 지구인이 출 수밖에 없게 만드는 춤으로,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 있다. 인류 최초로 ‘화성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가 되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 프로젝트에 참여해 인간과 로봇이 어우러지는 무용 작품을 올리고 싶어요. 화성에서 처음으로 춤을 선보이는 인간 1호가 되는 꿈이죠. 다른 행성의 생명체가 우리의 춤을 본다면, 지구인의 지적 수준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