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주한미군 역할 변경 부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한국을 향한 미국의 ‘안보 청구서’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임시 국가 방어전략 지침’을 통해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를 최우선으로 전환하면서 북한 등의 위협 억제는 동맹국에게 넘기는 구상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관세 압박과 민감국가 지정에 더해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장기화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에 있어서 또 하나의 난제를 떠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헤그세스 장관이 이달 중순께 미 국방부 내에 자신의 서명과 ‘기밀, 외국 국적자에 공개 금지’가 표기된 9쪽 분량의 문건을 배포했다고 보도했다.
지침은 미국이 중국과의 잠재적 충돌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군사역량을 중국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WP는 지침에 대해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등 외부 위협에서 미국을 수호하고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을 상세하고 폭넓게 기술했다고 평가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지침에서 “중국은 국방부의 유일한 ‘추격하는 위협’이며 중국의 대만 점령 기정사실화를 거부하는 동시에 미 본토를 지키는 것은 국방부의 유일한 ‘추격하는 시나리오’”라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능력을 갖추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를 가장 우선시할 시나리오로 상정한 것이다.
특히 지침은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다른 지역에서의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면서 유럽과 중동, 동아시아 동맹국들이 러시아와 북한, 이란 등의 위협 억제에서 대부분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도록 압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당장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한국을 ‘머니 머신’으로 지칭하며 자신이 집권했다면 한국이 연간 100억 달러(14조원)의 방위비를 지불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헤그세스 장관은 30일 도쿄에서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과 회담을 가진 뒤 일본의 방위비와 관련 “구체적인 수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면서도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일본이 제대로 파단할 것으로 믿는다”는 뼈있는 말을 남겼다. 일본은 미국의 압박을 염두에 두고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이었던 방위비를 2027년 이후 2%로 증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축소와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조야에서는 치열한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맞서 현재 북한의 위협 억제에 중점을 둔 주한미군의 역할을 대만해협 위기 대응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침은 미 의회 국가안보 관련 위원회에도 전달됐다. 중국을 미 국방부의 유일한 위협으로 규정한 지침은 러시아와 북한, 이란, 그리고 극단주의 조직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명시한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인 2022년 미 국방전략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일단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외신보도라는 점에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미 국방부의 공식 입장으로 확인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우리 국방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만 군은 한미동맹과 관련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나가고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한 가운데 미 측과 긴밀히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