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아있는 산불 공포로 밤잠 설치기 일쑤…심리치료 시급”

심리안정상담 등 트라우마 제거 노력 시급
피해지역 노년층 많아…서비스 접근성 높여야


울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의 ‘찾아가는 심리상담, 마음안심버스’가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맞춤형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달 31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 경로당을 찾았다. [울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 제공]


[헤럴드경제(창원·울산)=황상욱·박동순 기자] 사상 최대의 피해를 기록한 경남 산청·하동 산불과 울산 울주군 온양 산불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났다. 다행히 주불을 완전히 잡았지만, 경남 지역에서는 재발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잔불정리에 집중하고 있다.

산림청과 경남도, 울산시는 피해복구에도 신속하게 나섰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지난달 30일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산청·하동 산불 주불진화 및 복구대책을 발표한 뒤 31일에는 김두겸 울산시장과 울주 온양읍 및 언양읍의 산불 피해 현장을 점검했다.

이 같은 산불정리 및 피해복구 노력도 중요하지만, 피해 규모가 컸던 만큼 아직도 ‘산불 공포’에 밤잠을 설치는 피해 주민들이 예상보다 많아 이들에 대한 심리 치료 등 실질적인 회복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통합지휘본부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농사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인데 불이 훨훨 날아다니던 생각이 아른거려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집이 다 타버렸는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칠십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어서 억장이 무너진다”며 집을 모두 태워버려 호미 한 자루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무엇보다 “지금도 가슴이 뛰고 벌렁거려 숨 쉬기도 힘들다”고 호소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산청군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긴급 구호물자를 전할 때마다 주민들에게 “힘내세요”라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매우 조심스럽다고 했다.

또 오랜 대피소 생활로 불편한 잠자리, 소음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산청군 시천면 외공마을에 사는 김 모(73) 씨는 “갑작스러운 화마로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상태”라며 “집이 불탄 지난달 22일부터 지금까지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이 나겠느냐”고 눈시울을 붉혔다. 주불이 진화되면서 수백명의 이재민이 비로소 집으로 돌아갔지만, 남은 이재민들은 당시 시뻘건 화마가 눈에 아른거려 밤잠을 설치는 등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은 지난달 25일 인근 화장산에서 발화한 불이 바람을 타고 옮겨오는 바람에 주택 2채와 농업시설, 창고 등이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 이 마을은 지난 2013년 3월에도 산불로 주택 20채가 전소하고 54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던 곳이어서 이번 산불로 50여 가구 100여 명의 주민들이 또다시 공포를 겪고 있다.

평생 살아온 집이 전소돼 일주일째 마을경로당에서 지내고 있는 이윤연(76) 할머니는 “이장이 ‘대피하라’라고 방송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문서는 챙겨 나왔지만, 집은 물론 딸이 준 용돈 100만원과 영감 영정사진은 모두 불귀신 것이 되어 사라졌다. 하도 급하게 불길을 피해 빠져나오는 바람에 가족과도 같은 개 세 마리의 목줄을 풀어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축구장 1300여 개 크기의 931ha 피해면적을 낸 울주군 온양읍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은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울렁증을 느낄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외광리 한 주민은 “불은 꺼졌지만 지금도 정신이 어지럽다”며 “바람이 불고 연기가 나면 언제든 달아날 수 있게 중요한 물품을 챙긴 보따리를 경로당에 갈 때도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

경남도는 이번 산불로 인해 육체적 교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호소하고 있는 주민들이 적지 않아 재난심리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현장응급의료소 운영과 환자 모니터링, 재난심리서비스 등 의료와 심리치료를 지속하고 대피소 생활을 마친 이후에도 ‘마음안심버스’를 통해 마을 단위 심리지원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경남도는 지금까지 재난심리지원키트 578개를 배부했고 대피인원 1947명중 1205명이 재난심리서비스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 산불진화 대원에 대해서는 화재 진압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등 정신건강 문제 발생을 우려해 정신건강 검진 및 치료비를 국비로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울산시 울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는 이들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피해지역을 찾아 맞춤형 심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찾아가는 심리상담, 마음안심버스’를 지난달 27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울주군정신건강복지센터는 ▷1일에는 온양읍 외광리, 내광리 마을회관과 경로당에서 ▷2일에는 온양읍 내고산, 중고산, 외고산 마을회관에서 ▷3일에는 온양읍 상대마을과 하대마을 경로당에서 ▷4일에는 중광리와 신기리에서 심리상담과 정신건강 고위험군 선별 스크리닝을 실시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러한 가운데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가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울산·경북·경남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산불 피해 주민뿐만 아니라 진화작업에 참여한 대응인력을 대상으로 심리지원을 실시한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각 시·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방문 또는 전화, 복지부의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를 이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 대다수는 노인층이어서 방문 또는 전화하기기 쉽지 않아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울산대학교병원 관계자는 “재난으로 인한 불안감을 재난 상황이 종결된 이후 트라우마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건기관이 보다 접근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력을 하고, 피해지역 주민들도 국가가 준비한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시·군 대피소 해산 시점까지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을 운영할 예정으로 있고, 해산 이후에도 방문관리팀을 활용해 피해주민 집을 직접 방문해 호흡기 질환과 심리안정 등 피해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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