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그리는 ‘꿈의 오케스트라’ COE “우리의 유전자엔 베토벤이 있다” [인터뷰]

유럽체임버오케스트라 3년 만에 내한
김선욱이 지휘와 피아노 협연으로 참여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 도전


1981년 창단한 유럽체임버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곳은 제겐 그야말로 꿈과 같은 존재예요. 전 이 오케스트라와 연주할 때마다 사랑에 빠지곤 합니다. 모든 음악적 바람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이에요.” (리에 코야마 바순 수석)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의 꿈, 세계 최정상 악단의 수석 연주자들이 전 세계에서 모인 이곳. 리에 코야마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바순 수석은 “이곳에서 단원들은 서로 사랑하며 그 안에서 많은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각자가 모든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자유다. 그는 2023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합류, 올해로 3년째 활동 중이다. 한국인 플루티스트 조성현,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오보이스트 함경과는 바이츠 퀸텟으로 함께하고 있어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올해로 창단 45주년을 맞은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The Chamber Orchestra of Europe·COE)가 한국에 온다. 내달 3∼8일 내한 공연을 앞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로망 기요 클라리넷 수석은 헤럴드경제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음악과 음악가들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고, 그들의 헌신과 노력에 대한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라며 “매년 한국에 오고 있지만 (한국 공연은) 언제나 그렇듯 굉장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교수를 지내면서 한국 음악가들의 미래도 함께 지켜봐왔다.

COE는 유럽연합 유스 오케스트라(European Youth Orchestra)를 모태로, 지난 1981년 창단된 실내악단이다. 창단 초기 멘토 역할을 했던 지휘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에 이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1929~2021),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 등이 악단과 긴 인연을 맺었다. 지휘자 야니크 네제 세갱(50), 사이먼 래틀(70),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72)가 명예단원으로 이름을 올린 악단이다. COE는 일종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뭉쳐 활동한다. 해외 투어 역시 그 일환이다.

악단의 창단 배경은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이먼 플레처 대표는 “이 악단은 애초에 ‘유럽 전역’에서 모인 뛰어난 음악가들이 최고의 음악을 연주하고 최고의 솔리스트, 지휘자와 협연해 ‘유럽의 예술적 이상’을 규현하기 위해 결성됐다”고 설명했다. ‘유럽’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긴 시간을 거치며 경계와 국경을 허물었다.

1981년 창단한 유럽체임버오케스트라 [빈체로 제공]


로망 기요는 “우리가 ‘유럽 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전쟁, 외국인 혐오, 인종차별은 불행히도 우리 앞에 존재한다”며 “우리의 예술로 평화를 위해 계속 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 오케스트라는 기존 악단과 달리 단원이 주인공이 된다. 플레처 대표가 “COE는 단원들에 의해, 단원들을 위해 만들어진 오케스트라”라고 말할 정도다. 지난 45년간 단원들의 자율적 운영으로 동료 음악가들을 선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상호 존중과 우정이 이 단체의 중요한 가치다. 플레처 대표는 “COE는 국적과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매우 평등하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독립적 조직으로서의 에술적 원칙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상임지휘자가 없다.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COE와 함께 할 때면 내가 지휘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그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한 명의 음악가”라며 “그들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매우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라고 말한다.

현재 단원 수는 60명. 기존의 오케스트라가 80명 이상의 대부대를 이끈다면,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작은 규모의 ‘실내악 연주’ 단체라 할 수 있다. 규모의 차이는 악단의 강점으로 이어진다. 단원들은 “규모가 작아 공연에선 매우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고, 연주자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더 끈끈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 느낌”이라고 했다.

야스퍼 드 발 호른 수석과 리에 코야마 수석은 “연주자, 지휘자, 솔리스트의 즉흥적인 창의성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고 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완벽을 추구해가는 현악4중주의 장점이 오케스트라 전체로 확대된 느낌이라는 게 플레처 대표의 설명이다.

“어느 쪽이 좋고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자연스럽게 풍성하고 꽉 찬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작은 규모의 오케스트라는 더 민첩하고 투명한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리에 코야마)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 [빈체로 제공]


3년 만의 내한에선 피아니스트 김선욱(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김선욱은 공연에서 지휘와 연주를 겸한다. 플레처 대표는 “이번 투어는 솔리스트이자 지휘자인 김선욱과의 특별한 인연에서 출발했다”며 “이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김선욱의 음악적 비전을 실현하고 그를 최대한 뒷받침하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선욱과 COE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들은 3년 전 내한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단원들은 “김선욱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매우 강력한 음악적 교감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코야마 수석은 “김선욱의 연주에서 가장 감탄하는 점은 그의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력”이라며 “명료하고 빛나는 음색과 뛰어난 테크닉은 숨이 멎을 정도다. 이런 요소들이 그의 베토벤 연주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야스퍼 드 발 호른 수석도 “김선욱은 풍부하고 뛰어난 음악적 직관력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레퍼토리에도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줄 것”이라며 기대했다.

COE의 이번 연주가 특별한 것은 이들에게 베토벤은 오래도록 탐구해온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와 녹음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성장과 발전을 이뤘다.

야스퍼 드 발 수석은 “COE는 베토벤을 연주해 온 매우 긴 역사가 있다”며 “베토벤의 음악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녹아있다. 그것은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야니크 네제 세갱 등과 같은 위대한 지휘자들과 함께하며 만들어진 유전자”라고 말했다.

COE를 거친 명지휘자들은 너나 없이 이곳에 빠져든다.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앞에선 실내악 연주자들처럼 단원들과 함께 호흡한다. 보통의 오케스트라와 달리 지휘자가 단원과 동등하게 음악적 해석과 표현을 만든다는 점은 이 악단이 ‘작은 악단’이기에 가능해진 장점이다. 아르농쿠르는 “COE는 내게 환상의 모험단과 같다”며 “우리가 함께 이룬 모든 위대한 일들, 애정 어린 유대관계, 모든 것이 특별하다”고 했다.

블라디미르 유롭스키는 “COE와의 작업은 언제나 엄청난 도전이자 큰 기쁨”이라며 “강한 음악적 개성과 뚜렷한 연주 스타일이 최고의 음악을 만드는, 영감을 주는 오케스트라”라고 했다. 플레처 대표 역시도 “소통과 서로에 대한 존중, 강력한 아이디어가 서로 다른 연주자들의 의견을 하나로 조율하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유럽 챔버 오케스트라의 강점 중 하나는 연주 중 이뤄지는 비언어적 소통입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이러한 소통을 하며 즉흥적이고 마법 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낼 겁니다.” (야스퍼 드 발 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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