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車, 당장 피할 곳이 없다

작년 차 수출 51.5% 미국, 143만여대 분량
25% 관세로 국내 생산 70만~90만대 줄듯
반도체는 보조금 압박에 추가투자 기로에


현대자동차 차량 중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인 아반떼가 현대차 울산 3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현대차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국산 제품에 대한 25%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 발표하면서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주요 기업에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자동차와 철강 등 작은 관세율 차이로 경쟁 판도가 바뀔 수 있는 산업군을 중심으로 우려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3일 재계와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연설에서 “무역 장벽의 결과로 한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81%가 한국에서 생산됐고, 일본 판매 자동차는 94%가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직접 지목했다.

다만 앞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에 따라 25%의 관세를 이미 부과받은 자동차와 부품, 철강·알루미늄 등의 산업군은 추가적인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 기존에 발표했던 25%의 관세만 적용되고, 상호관세(25%)는 별도로 합산되지 않는 구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측이 ‘최악 무역장벽 국가’로 한국을 직접 지목한 점은 당분간 국내 완성차 업계에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자동차 대미수출량은 143만2713대로, 전체 수출(278만2612대)에서 51.5%를 차지했다. 현대자동차·기아의 경우 지난해 전체 수출량(217만7788대) 가운데 46.6%(101만3931대)를 미국에 수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차량(약 170만대) 중 58.8%가 국내에서 만든 차량인 것이다.

GM한국사업장의 경우 생산량에서 미국 수출 비중이 차지하는 비율이 88.5%에 달한다. 25%의 관세가 본격 시행되면 현지에서 가격 경쟁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산업연구원은 현대차·기아의 미국 신규 공장 가동과 한국GM의 수출 물량 등을 고려할 경우 ‘미국에서 25% 관세 부과 시 국내 생산분 70만~90만대 분량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미 자동차 수출 규모 역시 20.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당장 현지에서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관세를 감안해 국내 생산 차종의 수출에서 오는 이익을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현지에 제조공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방안을 마련하겠지만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요처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우려감이 뒤따른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25%의 관세율을 먼저 맞은 철강업계의 경우 지난달 대미 철강 수출액은 2억3000만 달러(약 3380억원)로, 전년 동월 대비 15.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막대한 물량이 오가는 철강 제품의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더 직접적인 타격은 2~3개월 후에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자동차 부품업계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분석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82억2200만달러(약 12조1000억원)로, 해마다 꾸준히 증가세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 관세 부과를 통해 부품업계도고통을 분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우리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절반은 현재 국내에서 생산된 부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종은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했던 만큼 이번 상호관세 대상에서는 일단 빠졌다. 하지만 향후 어떤 형태로든 ‘관세폭탄’이 떨어질 수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수입하는 반도체에 품목별 관세 부과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관세율로 25%를 제시한 바 있다.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반도체는 무관세가 원칙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에 대한 25%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당장 국내에서 생산한 반도체 가격이 올라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산업연구원은 ‘반도체에 25% 관세 부과 시 수출이 10% 안팎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뿐만 아니라 반도체 보조금 축소 압박까지 동시에 가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미 사업 전략을 놓고 고심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미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 건설을 확정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추가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최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돼 있고,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AI(인공지능)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당장 미국에 투자를 늘리기에는 여력이 충분하지 않고, 공장 준공까지 시간이 더 소요되는 만큼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관세 대응책을 묻는 질문에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구체적 내용이 없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우·김현일 기자

Print Friendly